매일 아침 출근길이 가볍고 빨리 일이 하고 싶어 미치겠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고(故) 정주영 회장은 평생 소풍가는 마음으로 회사 가는 일을 즐겼다니 행복의 달인이라고 할 만하다.
헌데 우리 일반인들의 삶은 그와 많이 동떨어진 것 같다. 월요일 아침부터 페이스북에 가득한 ‘회사 가기 싫다’는 아우성들을 보니 말이다. 직장 초년기에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이라도, 매달 다박다박 통장 잔고 불어나는 재미라도 있었건만 한해 두해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면서 느는 것은 꾀뿐이요, 월급 빼곤 다 오른 물가에 월급은 들어옴과 동시에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진다. 술자리에서 상사 뒷담화를 통해 진정한 공감을 경험하는 우리가 마지막에 꼭 하는 한마디. “나중에 카페 하나 차려놓고 취미로 일할래.”
그런 우리에게도 변화의 희망은 있다. 어느 생물학자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우리 인생은 이모작 시대가 될 거란다. 2020년 초고령 사회가 되면 평균 수명이 80세를 훌쩍 넘어 바야흐로 인생 90의 시대가 된다. 50~60대 정년 이후에도 40년에 가까운 노후가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다.
그 기나긴 세월을 놀고 먹기엔 우리의 국민연금은 너무 말랐고, 젊은 세대의 부양능력 역시 턱없이 부족하단다. 한마디로 정년 이후에도 자기 밥벌이는 자기가 해야 하는 제2의 인생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울하기 그지없는 전망이지만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까짓것 인생 두 번 사는 기회라고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밖에. 첫 번째 인생은 멋모르고 휘둘리며 보냈다면, 두 번째 인생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둘러보면 이미 인생을 두 번 살고 있는 사람들도 꽤 많다. 미국 유명잡지 오프라 매거진 ‘O’의 편집장 에이미 그로스는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냈다. 월간지 제작에 수십 년을 몸담아 오면서 최고의 명성과 권력을 거머쥔 그녀가 자진해서 그 모든 특권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그동안 취미로 해온 참선 수행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새 직업으로 삼았다. 45년간 월간지 제작 주기에 맞춰 살다보니 일에 대한 흥분과 설렘을 잃어 서글펐다는 그녀는 순전히 즐거움을 위해 글을 읽을 수 있고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삶을 살고 싶었노라고 말한다. 명상 연구가로서 새 인생을 살면서도 베테랑 기자 출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명상 관련 저술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가까이 보자면 내 남편도 인생 이모작을 충실히 준비하는 사람 중 하나다. 낮엔 소심한 직장인이지만 퇴근 후엔 집에 설치된 간이 작업 부스에서 작곡에 몰두하는 예술가다. 이미 30대 후반 나이에 디지털 싱글 몇 장이 주요 경력의 전부라면 직업 뮤지션으로서의 꿈은 일찌감치 접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의 꿈은 야무지게도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것이라니 음악에 대한 진지함만은 누구 못지않다. 취미로나 할 일에 저렇게 열을 올리는 모습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남편이 요즘엔 달리 보인다. 느리지만 끊임없이 준비해 온 만큼 두 번째 인생을 나보다 훨씬 멋지게 살아갈 것 같아 사실 부럽다. 술이 좀 들어갔다 싶으면 ‘난 꿈이 있었는데…’ 라며 접어버린 꿈을 주접스레 곱씹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앞으로 10년 혹은 20년 후 어떤 일을 하게 될지 확신하긴 어렵다. 하지만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두 번째 인생을 어떻게 살지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면 이리저리 부지런히 기웃거려야 한다. 생경한 전문서적도 뒤적여보고, 전공 이외의 분야를 골라 대학원 등록도 해봄직하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수십 년간 잠자고 있던 놀라운 재능이 번쩍 눈을 뜰지 누가 알랴.
인생 이모작의 성공 기준은 보수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다. ‘자식들 때문에 오늘도 참는’ 일이 아니라 ‘내 멋에 겨워 하는’ 일과 함께인지 여부다. 소풍가는 기분으로 출근할 수 있는 일, 최소 임금만 받고도 기꺼이 날밤을 새울 수 있는 일이 딱이다. 맨밥에 김치만 먹더라도, 20평 아파트에 월세로 사는 한이 있어도 죽는 날까지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그런 일, 죽기 전에 해봐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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