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내용도 없는 책을 몇 권 쓰고 보니 가끔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아무래도 법에 관련된 내용이라서 대학생 혹은 일반인 상대 강연이 대부분이다. 쉽게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사건을 중심으로 그때그때 시사적인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보면 두 시간쯤은 금방 간다. 강연이 끝나고 나오는 질문에 답변을 하다보면 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되는 때도 있어서 나름 도움이 되고 재미도 있다. 그러나 중학생을 상대로 하는 강연은 정말 힘이 든다.
처음 중학교에 가서 강연을 하게 된 것은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수도권 도시의 한 중학교 선생님이 전화를 하셔서,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데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에 있는 학교라서 그런지 학부모 중에 변호사를 찾기 어렵다고 말씀을 하셨다. 강연료를 많이 줄 수는 없지만 봉사하는 마음으로 와서 아이들에게 얘기를 좀 해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아이 가진 부모로서 애들한테 도움이 된다는데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변호사가 사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강의안도 만들고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농담도 준비했다. 그러나 막상 100여명쯤 되는 중학생을 앞에 놓고 2시간 얘기를 해보니 다른 강연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힘이 들었다.
대학생이나 일반인들은 강사의 설명이 조금 지겨울 때에도 예의상 경청을 해준다. 고등학생만 되어도 나름대로의 예의를 지키려는 노력은 한다. 그러나 중학생들은 정말 냉정하기 짝이 없다. 3분 전에 농담을 듣고 깔깔대다가도 잠깐만 재미가 없으면 그대로 꾸벅꾸벅 존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 끊임없이 강의의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보통 일이 아니다. 고등학생만 같아도 흥미진진한(?) 사건 얘기를 해줄 수 있는데, 중학생들을 상대로는 조금만 잔인한 사건도 얘기하기가 꺼려져서 더 힘들다.
그렇다고 애들이 원래부터 심통 사납거나 강연을 들을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재미있는 대목에서는 신나게 호응도 하고, 끝날 때면 손을 들고 열심히 질문도 한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청하는 아이들도 많다. 그러니 강의 도중에 조는 건 순전히 강사가 말을 재미없게 하기 때문이다. 어찌 등에 식은 땀이 흐르지 않을 수 있을까.
강연을 다니다보면 경험이 많은 유명 강사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혹시 중학생들 상대로 재미있게 강연을 하는 비결을 묻는데 하나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어떤 분들은 잠시만 지루하면 여지없이 고개를 떨구는 놈들한테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던 경험을 얘기하면서 멋쩍은 웃음을 짓기도 한다. 이구동성으로 가장 어려운 청중은 중학생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일도 자주 하면 익숙해지는 법. 처음 강연을 청한 중학교 선생님이 눈치 없이 다른 학교 선생님들께 모 변호사는 청하면 불평하지 않고 강연을 한다고 소문을 내는 통에 그 후 중학교에서 수십 번 강연을 했더니 이제는 조금 나아졌다. 아무리 중학생 상대 강연이라도 ‘동시에 모든 청중이 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때는 없다. 잠깐 꾸벅대는 놈들이 있어도 얼마 후에 또 열심히 들을 것을 알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는다. 때로는 고함을 쳐서 자는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재미있어도 한다. 나름 중학생 강의의 베테랑이 된 것이다.
가끔 법정에 들어가면 내 나름으로는 열심히 변론을 하는데 잘 안 들어주는 (느낌이 드는) 재판부가 있다.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그래도 처음 중학생 상대 강연을 할 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중학생도 웃겼는데, 조금만 요령껏 변론을 하면 저 부장님도 귀 기울이게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한다. 이래저래 취미 비슷하게 시작한 중학생 강연은 강사에게도 큰 도움을 준다. 역시 언제나 가르치면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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