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 중에서 특히 딸아이가 자란다는 건 사교성 없는 아빠들에겐 공포에 가까운가 보다. 오죽했으면 황지우 시인도 ‘초경을 막 시작한 딸아이 / 이젠 내가 껴안아 줄 수도 없고 / 생이 끔찍해졌다’<‘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중에서>라고 하지 않았나.
요사이는 그래도 ‘딸바보 아빠’들이 많아져서 부녀관계의 묘한 긴장감과 불편함이 덜 드러난다지만, 그건 대부분 어린 딸을 둔 아버지에 국한된 이야기다. 열두 살이 넘어간 딸은 이해불가능하고 어려운 존재이다. 그리고 그때쯤의 사춘기 아이들은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폭탄으로 변하지 않는가?
그래도 한의원에 오는 부녀는 사이가 좋은 편이다. ‘같이 다니는 것’도 드문 일이니 말이다.
한 사이좋은 부녀가 떠오른다. 아버지가 치료를 받는 동안 접수실에서 재잘거리며 대기 중인 동네 어르신들의 귀염을 받았고 아버지가 나오면 심청이가 심봉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반겨주던 어린 딸은 몇 년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가 모르는 딸이 되어갔다. 그리고 아버지는 상상도 못할 비밀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환자는 딸의 모든 것을 알아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얼마 전에 온 치매 아버지와 딸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버지를 닦달하는 딸이 고와 보이지는 않았다. 이 환자는 치매가 오래되지 않아서 그런대로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반면에 운동영역으로 진행된 혈관성치매 때문에 행동에는 부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진료실에서 자세하게 들여다본 환자의 상태는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손톱을 깎지 못해서 1㎝는 되어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기본적인 위생상태가 엉망이었다. 대화를 해보니 사는 형편이나 배움이 부족한 사람들도 아닌 것 같았다. 무엇이 이 부녀의 간극을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문을 나가는 순간까지 신을 제대로 신지 못하는 아버지를 허리 굽혀 신을 신겨드리는 대신 타박만 하는 딸과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이야기를 해도 한마디 말도 받아주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저들도 한때는 정겨운 부녀였던 적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치매라는 병 때문이라면 그야말로 병이 웬수가 아닌가.
치매를 예방하는 갖가지 방법들은 나이가 들기 전에 젊어서부터 몸에 익혀 놓아야 한다.
뇌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비타민 B12와 비타민C 엽산과 오메가-3 등이 많이 함유된 현미나 잡곡밥, 견과류, 등 푸른 생선 등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현미밥을 먹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현미밥을 먹으려면 깔깔해서 먹기 어렵다. 섭취가 어려운 영양소가 우리 몸에는 더 좋은 경우가 많다. 그러기 위해선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어야 한다. 오랜 저작운동은 뇌에 혈류를 좋게 하고 소화흡수를 용이하게 한다.
섭취하고 혈관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너무 짜지 않게 먹는 것이 필요하고 잦은 두통이나 우울증이 있다면 그에 대한 치료를 철저히 하고 명상이나 호흡훈련을 하는 것이 좋다.
치료를 해보면 기본적인 체력이 있는 사람, 精(오곡의 진액이 합쳐져 만들어진 영양분으로, 정액, 골수, 뇌수를 구성하는 주요성분)이 튼튼한 사람이 하다못해 다리 삔 것도 빨리 낫는다. 치매도 그렇다. 체력이 좋아지면 치매도 훨씬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영원히 치매의 진행을 막는 것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진행 속도를 낮추려면 튼튼한 精이 필요하다.
방탕한 생활은 精의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한의학에서는 첫 번째 경계의 대상으로 삼는다. 침을 자주 뱉는 것도 좋지 않다. 신장의 정기를 말리기 때문이다. 신정이 가득차야 골수가 가득차고 골수 중에 정미로운 것이 머리로 올라가서 만들어지는 뇌수가 충만해진다. 한의학에서 보는 치매란 것은 이런 뇌수가 부족해지면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 중에 하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과의 건강한 대화가 최고다. 노인이 되어서 가지는 근본적인 우울함을 없애주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아직까지는 자식들의 배려심이 으뜸이다. 모름지기 자녀들을 다정하게 길러야 나의 노후가 편할지 모르겠다.
우리 아버지 말씀대로 ‘자식은 다 네가 키운 대로 만들어 지는 것’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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