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이 정한 경제민주화 이뤄진 세상 꿈꾼다


문재인 변호사가 쓴 ‘운명’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는 1952년 거제도 시골집 한 칸 셋방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노무자였고 어머니는 계란행상이었다. 그는 경남고등학교와 경희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유신 반대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판사에 임용되지 못하고 변호사가 됐다. 그의 환경을 보면서 조선조의 김삿갓이나 홍경래가 떠올랐다. 정의에 민감하고 세상에 저항적인 운명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김앤장 같은 고급로펌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가 추구한 변호사상은 서민들 속에서 억울한 사람을 돕고 보람을 찾는 그런 모습이었다. 부산 부민동 법원 후문 쪽 허름한 건물에서 우연히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 합동법률사무소를 개설했다. 두 사람은 깨끗한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노동사건이 많았다. 부산에 몰려있던 신발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은 사회에 희생된 아픔 그 자체였다. 6만~7만원의 월급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작업장 내에서는 욕과 성희롱이 일상이었다.
문재인과 노무현 두 변호사가 처음부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을 찾아오는 사건을 피하지 않았고 그들의 말에 공감하면서 열심히 변론했다. 처참한 현실들을 보면서 두 변호사의 인생이 달라졌다. 그들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졌다. 반칙과 특권, 거짓과 기만 그리고 폭력과 횡포가 없는 사회, 상식이 통하고 원칙이 지켜지고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는 나라, 국민 모두가 당당하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돈 대신 이념이 생겼다. 그들은 돈 버는 변호사가 되기를 거절했다. 노무현 변호사가 법률사무소를 벗어나 정치인이 됐다. 그의 야망에 변호사 사무실은 너무 좁았는지도 모른다.
문재인은 그대로 변호사로 남았다. 인권변호사인 그에게는 항상 일이 넘쳤다. 늘 일보따리를 집에 가져가서 새벽까지 재판준비를 했다. 노무현 변호사가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은 문재인 변호사에게 청와대에서 함께 일하자고 했다. 문 변호사는 고민했다. 권력을 비판하는 일만 해왔던 그로서는 국정운영경험이나 행정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리를 맡기로 했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가 맡기로 한 민정수석비서관에게는 관사나 아파트가 없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저축한 돈으로 평창동에 조그마한 연립주택을 얻었다. 직접 차를 운전하고 다니고 대중음식점에 가서 다른 사람과 같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사람들은 민정수석이 수행원 없이 혼자 다니는 것도, 심지어 휴일에 등산가서 시민들과 맞닥뜨리는 것조차 특별한 일인양 여겼다.
민정수석비서실은 검사 출신들이 일을 도맡아 해왔다. 문 변호사에게 검찰은 개혁의 대상이었다. 그는 대검 중수부가 정치검찰을 만드는 가장 큰 작용을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민정수석실에 있던 검찰과의 핫라인인 공용전화회선을 끊었다. 검찰이 편의를 제공해 오던 청와대 업무차량도 돌려보냈다. 민정수석비서실을 검찰개혁에 뜻을 같이 할 다른 법조인들로 구성했다.
그는 개혁적 인사들이 일거에 내각과 청와대의 대세를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예술부 장관으로 전 세계에 신선한 모습을 보여준 앙드레 말로처럼 그런 장관을 발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황지우 시인과 이창동 감독이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장관직을 사양했다. 예술작품에 대한 의욕이 더 컸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고영구 변호사를 국정원장에 임명했다.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장관으로 추천했다. 파격적인 내각이었다. 몇몇 기득권층이 특권을 누리던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는 노무현 정권의 조용한 보조자를 하다가 비서실장을 끝으로 청와대에서 물러나왔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저축해 놓은 돈을 그동안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형편상 다시 변호사 일을 해야 했다. 양산에 작은 집을 하나 마련해 정착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로 검찰조사를 받는 가운데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문 변호사는 침착하게 대통령의 모든 장례행사를 마쳤다. 그걸 계기로 추모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 혹은 실망감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점차 ‘노무현적 가치’, 즉 서민적이고 탈권위적인 정치리더로서의 인간 노무현 그리고 양김 이후 첫 대통령으로 평등과 자주를 지향했던 시대정신 노무현이 집중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그의 친구이자 분신이기도 한 문재인 변호사가 차기 유력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고 있었다.
2012년 2월 29일 부산의 사상역 4번 출구 앞에서 택시를 내렸다. 자그마한 빌딩이 보이고 문재인 변호사의 부드러운 얼굴이 박힌 대형 현수막이 건물의 윗부분에 걸려 있었다. 문재인 후보의 선거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빌딩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다. 구석에 아무런 간판도 없는 유리문이 보이고 그 뒤로 기다란 책상 양쪽에 30~40대 남자들 대여섯 명이 모니터를 보면서 앉아 있는 게 보였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서 꺼내 시간을 보냈다. 12시 30분, 약속시간보다 30분쯤 먼저 도착했다. 부산에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길에 그에게 불쑥 전화를 걸었다.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시간을 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기대하지 않았다. 일분일초가 타들어가는 시간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외로 그는 시간을 내겠다고 했다. 인생 60년 가까이 살아오면 대충 목소리나 어조에서도 인품을 감지할 수 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정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가에 앉은 삼십대 쯤의 검은 점퍼를 입은 남자에게 말했다.
“문재인 변호사를 만나 뵈러 왔습니다. 엄상익 변호사라고 합니다. 약속시간보다 먼저 왔어요. 기다리겠습니다.”
“그러세요? 저를 따라 오시죠.”
검은 점퍼를 입은 남자가 일어나 뒤쪽에 있는 작은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중앙에 기다란 책상과 그 양쪽에 검은 플라스틱 의자가 놓인 담백한 방이었다. 벽에는 ‘총선 D-42’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가방에서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제목의 책을 꺼냈다. 윤여준 전 장관이 최근에 낸 책이었다. 문재인을 알기 위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노무현의 통치력에 관한 부분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노무현은 서민적이고 탈권위적인 정치리더로 ‘인간 노무현’ 그리고 양김 이후 첫 대통령으로 평등과 자주를 지향했던 ‘시대정신 노무현’이라고 평가되어있었다.
“아직 점심 안하셨지예?”
이십 대쯤의 여성선거운동원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인스턴트커피가 담긴 종이컵과 건빵이 담긴 작은 접시를 가져다 앞에 놓았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내가 대답했다. 의외로 친절하다. 선거사무실들은 대개 처음 오는 외부인을 경계했다.
“점심은 드셨어예?”
그녀가 점심시간에 온 나를 보고 물었다. 그 시간에 들어왔으니까 아직 먹지 않은 걸 알고 묻는 것 같았다.
“나중에 먹어도 돼요.”
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도 부산 인심이 매끄러운 서울보다는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밖에 나갔다가 잠시 후 김밥이 담긴 작은 접시를 가지고 들어왔다.
“이거 먼저 들어보세요.”
반들거리는 기름 위에 깨가 붙어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나는 계속 책을 보고 기다렸다. 일어나 나가던 남자 선거 운동원들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점심시간이라 우리는 밖으로 나갑니다.”
선거운동원들이 그 정도 마음을 열고 진정성을 가졌다면 문재인 후보의 당선은 틀림없을 것 같았다. 내가 다시 책에 시선을 던지고 있는데 인기척이 났다.
“오셨습니까? 저 문재인입니다.”
샛노란 재킷에 헝클어진 백발의 문재인 후보가 앞에 서 있었다.
“제 방으로 가시죠.”
그가 앞장서 먼저 나갔다. 나는 책과 돋보기를 주섬주섬 가방 속에 넣고 옆에 있는 그의 방으로 따라가 그와 마주 앉았다.
“저는 엄상익 변호사라고 합니다.”
내가 자신을 소개했다.
“알고 있습니다. 변협신문에 소설 ‘환상살인’을 연재하신 분 아닙니까? 선거운동을 하기 전까지는 사무실에 대한변협신문이 오면 꼼꼼히 읽었습니다.”
그가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이렇게 찾아 왔는데요. 저에게 얼마정도 시간을 내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물었다.
“잠시 후 6층에서 주민들과의 대화가 있습니다. 그걸 늦추면 30분 정도는 시간을 빼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나는 조금 전에 혼자 있으면서 생각해 두었던 몇 개의 질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쓴 ‘운명’이라는 책을 통해 그의 성장과정이나 사회경험은 이미 읽었다.
“문재인 후보는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까?”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간절한 소망이 피 속에 흘러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교수들에게 일시적으로 과외를 해서 얻은 지식이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포장지 같은 가짜여서도 안 된다. 고통과 경험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나라에 대한 애정이어야 맞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자본주의에서 뒤처지는 사람, 못 배운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사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때 복지국가의 길로 나아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해보니까 재정이나 세금으로는 그걸 다 해결할 수가 없더군요. 복지에 앞서 시장에서의 불평등구조가 완화되어야 합니다.”
“시장구조를 변화시킨다는 말로 들리는데 압축하면 뭐로 표현하시겠습니까?”
“한마디로 경제민주화입니다.”
이미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나 정강이나 정책을 경제민주화로 잡고 있었다. 겉으로 여당과 야당의 차이가 없었다.
“새로운 국가운영의 모델을 사회주의로까지 생각하는 겁니까?”
“거기까지는 아니고 우리 헌법 제119조에서 말하는 경제민주화 정도까지로 저는 잡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그 조문이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고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
“북한을 어떻게 보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평화통일의 대상이고 교류와 협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남북관계가 험악해져서는 안 됩니다. 참여정부 때 저는 남북한 간 평화가 정착됐다고 봤습니다. 그런 평화를 현 정부가 까먹었습니다. 사실상 평화정착의 단계를 넘어서 경제협력의 단계까지 갔어야 한다고 봅니다. 남도 북도 경제성장에 서로 도움이 되는 그런 관계를 설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북한을 거쳐야만 시베리아나 중국의 철도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시베리아의 석유나 천연가스가 북한을 통과해서 우리에게 오게 해야 합니다. 남이나 북이나 상대방 존재가 성장 동력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참여정부 때 그런 것들이 거의 다 목전에 온 듯했습니다. 그런데 10·4 공동선언을 다 이행하지 못해 없던 일이 되어버린 거죠.”
“북한정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주민과 정권을 어느 정도 구별해서 판단하는가를 알고 싶었다.
“저는 북한을 대할 때 북한주민을 중심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북한정권은 주민들의 의식주도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도 미흡합니다. 3대 세습도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등을 돌릴 수만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참여정부 당시 해결하지 못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뭡니까?”
“과거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우리 재야는 체제위협세력으로 간주됐습니다. 기득권세력과 공존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진 거죠. 미래가 지금처럼 대결구도로 가서는 안 됩니다. 민주주의가 고도화되면 통합하고 화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혁과 통합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걸 위해 한나라당 당사도 방문하고 사람들을 청와대로도 초청했었습니다. 국회를 방문해서 시정연설도 했는데 그런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어요. 도대체 손뼉이 맞지 않는 겁니다. 한나라당은 아예 노무현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한나라당 의원들이 단 한명도 일어나지를 않았습니다. 화합이나 통합이 말로만 되는 건 아닙니다. 다음 정권 때는 꼭 이루어 내야 합니다.”
성찰적인 보수와 진보가 합쳐서 새로운 국가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참여정부에 이어서 계속 개혁하고 싶은 건 어떤 분야입니까?”
“검찰과 언론을 개혁하고 싶습니다. 검찰과 언론은 과거 독재정권과 야합을 하고 그 대가로 특권을 얻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특권들을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참여정부 때는 저희가 검찰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은 선출되지 않은 개인에 의해 특권이 세습됩니다. 언론자유는 보장하되 개인기업인 만큼 스스로 개혁을 하게 해야죠.”
“참여정부와는 차별화된 문재인만의 통치이념이라면 어떤 겁니까?”
“경제민주화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요?”
“빈부의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들을 포함한 경제 권력의 타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산업화 민주화를 거친 다음 수순은 재벌권력의 타파를 의미하는 게 경제민주화입니까?”
“포함됩니다.”
시간이 넘어 운동원이 와서 옆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물으실 게 있으시면 휴대전화로 하세요. 대답해 드릴게요.”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이제는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참여정부를 넘어서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성공은 성공대로, 좌절은 좌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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