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난시대다. 그들 눈에 ‘다 큰’ 경찰은 “한판 붙자”며 대문을 빵빵 걷어차고 있고, ‘꼼수’를 외쳐대는 인터넷 방송은 “놀아 달라”며 사사건건 시비다. 또 한 쪽에선 집권을 확신하는 야당이 “(검찰의) DNA까지 바꿔놓겠다”고 공언하고 있고, 옆집 법원은 예나 지금이나 “우린 노는 물이 다르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무슨 미운 털이 박혔는지 검찰 기사는 간혹 나오는 미담에도 악플이 반일만큼 여론이 매섭다.
취재 도중 만나는 검사들의 한숨도 늘었다. 최근 검·경 갈등과 관련해선 “아들이 대든다고 아버지가 내치면 되겠느냐”는 근엄론부터 “우리 조직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라는 회의론, “때려잡을…” 류의 격앙론, “이럴 줄 알았다, 드디어 올 게 왔다”는 운명론까지 그 반응도 다양하다.
각기 다른 말이지만 그 속에는 일관되게 ‘위기의식’이 흐르고 있다. 작년 6월부터 검찰을 출입한 연식 9개월의 법조 기자가 검찰 조직을 어찌 다 안다고 하겠느냐만 사방에 적을 둔 그들의 ‘위기의식’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막상 요즘 검찰 내부 분위기를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눈에 띈다. 검사들은 목소리 높여 살 길을 도모해야 한다는데,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검찰 수사관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한 쪽은 ‘조직의 존폐가 걸린 문제’라는데 다른 한 쪽은 ‘강 건너 불 구경’이다.
“국가수사국? 생기면 좋지. 지금처럼 검사가 다 할 필요 있나” “대검 중수부로 가고 싶다는 사람 많아. 가서 좀 적응하다가 폐지되면 또 쉬고. 편하지 않겠어?”
검찰 수사관들이 홧김에 내뱉은 말일 수도 있겠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들 개개인이 검찰 조직에 느끼는 소외감과 서운함이 최근 조직 위기와 맞물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지난 연말 대검은 ‘형사부 검사실 업무분장 매뉴얼’을 내놓았다. 검사가 공소장, 불기소장은 물론 범죄인지서, 보도자료 등 각종 서류의 초안 작성을 수사관에게 모두 맡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전국 각지의 일선 수사관들은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e-pros)에 매뉴얼을 성토하는 글을 수십 개씩 올리며 즉각 반발했다.
한 수사관은 “참담한 심정이다. 앞으로 검찰 가족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했고, 또 다른 수사관은 “차라리 물 먹는 것, 화장실 가는 것까지 매뉴얼에 넣어라”는 댓글을 남겼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수사관은 “한상대 총장이 내세운 검사 직접조사에 대해 검사들 불만이 높아지니 주요 업무를 수사관들에게 떠넘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매뉴얼에는 검찰 실무관 업무에 ‘방문 변호인 등에 대한 음료 제공 등 비서업무’라는 문구까지 포함돼 일선 실무관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한 실무관은 “우리가 커피 타는 기계는 아닌데, 알아서 해오던 일을 문구로 규정해 굴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검찰 수사관 직제에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1995년 검찰사무직·보건복지부·경찰·군 출신 경력자들을 뽑아 신설한 ‘마약수사직’이 대표적인 예다. 작년 창원지검 프로축구 사건에 이어 최근 대구지검 프로스포츠 사건 첩보를 인지하면서 강력부 수사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은 실제 대부분의 강력범죄를 수사하면서도 마약범죄가 아니면 실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정원 259명에 현재 14명이 초과된 상태다. 한 마약 수사관은 “인사 적체로 40대 중후반이 돼야 7급으로 승진할 수 있고, 일반 검찰사무직과는 달리 ‘특별승진’도 없다”며 “승진이 안 되다보니 사기가 떨어지고 검찰 내에서 소외감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처우가 열악한데 소속 부서에서 기사라도 나오면 가장 먼저 의심받는 이 또한 수사관이다. 최근 서울중앙지검의 모 부장검사는 직원들이 들을까봐 지시사항을 쓴 쪽지를 직접 검사들에게 건네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물론 검사들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젊은 검사가 나이 든 수사관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갈등이 생길 수 있고, 수사 정보가 흘러나갔을 때는 기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직원을 의심할 수도 있다. 다만 문제는 바탕에 깔린 ‘불신’이다.
한 특수부 수사관은 “많은 검사들이 우리 사정을 들어주고 이해하려 하기보다 업무시간에 노는 건 아닌지, 외부에 수사 정보를 흘리고 다니지 않는지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다른 형사부 수사관도 “그저 ‘검찰’이라는 자부심을 공유하면서 동료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말뿐이라도 “검찰 직원들의 처우와 사기에 신경을 써 달라”던 어느 국회의원의 발언이 와 닿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전국의 검사 수는 1800여명이고, 수사관은 그 세 배쯤인 5500여명이다. 그런데 지금의 검찰 조직은 ‘이원화’를 넘어 ‘이분화’ 돼있다. 가족조차 힘을 실어주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그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검찰은 외우(外憂)를 마주하기 전에 내환(內患)·내홍(內訌)부터 다스려야 한다. 검찰 조직이 바람직한 방향을 고민하고 변해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함께’여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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