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3륜에 대한 우리시대의 화두는 ‘법조 깎아내리기’이다. 과거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의식의 발로이겠으나, 필요한 최소한의 권위마저도 부정당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3륜 중에서도 공권력이 없는 ‘변호사 직업’에 대한 폄하는, 서운함을 넘어 울분을 자아내기도 한다. 오늘은 변호사라는 직업의 애환 몇 가지를 적어 봄으로써 서로의 위안으로 삼고자 한다.
첫째, 변호사라는 직업은 아무에게도 종속되어 있지 아니하여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직업이라고 부러워한다. 다만, 자기의 ‘소송의뢰인과 동료들과 법관들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렇다.
둘째, 변호사에게는 정년이 없으므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언제까지나 일할 수 있어서 좋겠다고 한다. 물론 규정으로 정해진 정년은 없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본인과 같은 연배의 동료, 친구 등등이 이런저런 사유로 직장을 떠나 사회활동의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면, 변호사 역시 ‘자연스럽게 은퇴’의 길을 가게 된다.
셋째, 흔히들 변호사는 돈을 많이 번다고 한다. 물론 상위 몇 퍼센트의 소수는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경우도 있겠다. 그러나 과반이 훨씬 넘는 대부분의 경우는 결코 풍족하지 못하다. 나아가 좀 더 크게 보면, 현재 변호사 수 1만2000명 정도의 우리나라 법률시장 전체 규모는 연간 2조원 내지 3조원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10대 로펌의 연간 평균 매출액은 1000억원을 넘기 어렵다. 이정도의 ‘매출액’은 웬만한 중견기업의 매출보다도 작고, 연간 2조~3조의 시장규모는 대기업,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연간 ‘순이익’보다도 훨씬 작다. 발품 팔고, 글 쓰고, 열변을 토하는 것으로는 큰돈을 벌 수가 없다. 돈 버는 데에는 물건 1개에 10원을 남기더라도 1억 개를 만들어 파는 것이 훨씬 낫다.
넷째, 변호사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권력이 없다거나 큰 수입을 못 올린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도움을 구하여 변호사를 찾아오는 의뢰인으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때이다. 흔히들 변호사를 ‘선임한다’는 말 대신에 ‘산다’고 표현한다. 많은 의뢰인들, 특히 지적수준이 낮은 의뢰인들은 ‘착수금’과 ‘성공보수금’에 대한 개념구분이 없다. 수임단계에서 기껏 두 개념을 설명하고 계약서까지 작성하였는데도,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끝나지 아니하면, ‘착수금을 반환’해 달라고 하기 일쑤다.
반면 일이 잘 끝난 경우에는 그때부터 연락을 피하거나, ‘변호사의 기여도’를 따지고 들기 시작한다.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변호사의 malpractice(위법행위)를 문제 삼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의 대부분은 의뢰인들이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사고를 거부하고, ‘이기적이고 아전인수적’인 생각에 빠져있는 경우이다. 노력해도 설득되지 않는 때가 많다.
이런 때에는 책에서 읽은 여러 말들이 생각난다. 즉 ‘인간은 그 자신에 대해 정직해 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이야기 할 때는 언제나 윤색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또는 ‘우리는 종종 자신의 판단오류로 나쁜 일이 일어나도 자신의 불행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든가 아니면 ‘삶은 우연과 필연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독 ‘우연’의 부분에 대해서는 자학적으로 받아들인다. 바라건대는, ‘우리는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다른 사람을 전혀 비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정한 치유기간이 지나면) 깨닫게 되는데, 이유는 바로 그 운명을 스스로 불러 들였기 때문’이라는 점을, 의뢰인들이 선선히 깨우쳤으면 하는 것이다.
다섯째, 제한된 경험과 짧은 경험에 선배와 동료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들로 변호사 직업의 ‘음지’를 쓰다듬어 보려 하였으나 오히려 마음이 흡족하지 않다. 차라리 ‘양지’를 부각시켜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는 것이 낫겠다. 젊은이들이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 가장 큰 공익적 동기는 ‘사회를 합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다. 변호사가 수입에만 몰두하고, 개인적 안일에 집착하는 한,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직업적 만족도도 떨어진다.
세상에는 가장 무서운 2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출세를 포기한 공무원’이고, 다른 하나는 ‘돈벌기를 포기한 변호사’이다. 여기에 우리 변호사들이 살아갈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의뢰인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면서도, 기회가 닿는 대로 공익을 위하여서도 헌신하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 사회를 (혁명이 아니라) ‘합법적인 방법으로’ 더 좋은 사회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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