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법규에 법정의 규격에 관한 규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 법정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법관은 신이 됩니다. 현행 재판제도가 오랜 역사의 산물이고, 지금까지 고안된 여러 방법 중 분쟁해결을 위한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제도라는 점은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 한 인간이 신이 된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기도 하고, 과연 그것이 인간의 권리구제나 인권신장을 위하여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인간이 신 또는 신적인 위치에 선다는 것은 어쩌면 신성모독일수도 있고, 그 절대성이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이 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오류가 있을 수 없고, 전지전능한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신은 한편으로 인간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로 오판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신적인 존재라는 것과 근본적으로 모순되는 개념일 수밖에 없어, 세속의 사법제도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딜레마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판단의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이를 전제로 3심 제도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법률적인 수식으로 일반국민이 법관에게 부여한 신적인 지위, 그리고 그와 같은 신에 대한 기대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가니’나 ‘부러진 화살’ 등의 문제가 비록 크게 왜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에게 그와 같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이유 중에 하나가, 신적인 존재인 법관에 대한 일반 국민의 기대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진실은 하나뿐이고 당사자들은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 재판제도 안에서 춤을 추고 기막힌 연극을 하고 있는데, 신적인 존재라는 법관만이 진실과 거짓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 우리 재판의 현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행 법제도는 신의 세계에 입증책임과 건전한 상식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여러가지 제도를 도입하여, 신에게 휴식할 수 있는 도피처를 마련하여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일반국민이 신에게 기대하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의 제국에 들어온 시민은 신에게 절대적인 진실을 갈구하는 것이지, 건전한 상식이나 입증책임 등과 같은 애매모호함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오판에 대한 결과는 너무나 엄중합니다. 진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한 당사자에게 오판은 참을 수 없는 분노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다른 한 당사자가 느끼는 오판에 대한 관념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라든가 또는 피할 수 없는 오류의 최소한이라는 변명으로 진실을 외면당한 한 인간에게 준 절망감을 위로하기에는, 재판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가 절대적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쯤에서 우리의 현재 재판제도에서 오판율이 어느 정도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항소심이나 상고심에서 파기되는 비율과는 관계없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호사들이 오랜 경험에서 느끼는 오판율은 상상 이상으로 높았으며, 그와 같은 오판율이 갖는 의미는 최소한 변호사들에게 있어 현행 재판제도는 그 신뢰성에 심각한 위기가 닥쳤다는 것으로, 그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오판은 인간인 법관에게 신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순간 낙인처럼 각인된 주홍글씨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제국에 들어온 신민이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신이 그 신민에게 최소한의 연민을 갈구하는 것과 같이 조금은 소박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사법제도에 대한 일반 국민의 심각한 불신과 조소의 이유가 법원과 일반 국민 사이에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법관이란 존재가 신이 아닌 신적인 인간이어서 최소한의 오판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최소한 그 어떤 사람에게는 오판이 없기를 바랄 것이고, 그 결과가 명백히 오판일지라도 그 과정에 있어서는 진실성이 전달된다면 조그만 위안은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신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정말로 두려운 일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신적인 존재가 되기 위하여 내면에 최고의 진정성을 담보하고 부단한 노력을 한다면, 신적인 존재는 신이 되어 있을 것이고, 그 신이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은 인류의 빛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하루빨리 사망한 신이 부활하기를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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