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출입 기자로 등록했을 때 사법부의 수장은 최종영 전 대법원장이었다. 그리고 이용훈 전 대법원장을 거쳐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한 지 벌써 5개월이 지났다.
언론사 선배들은 늘 대법원장은 큰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역사가 사법부의 모습을 기억할 때 대법원장의 이름 석자가 가장 앞에 붙기 때문일거다.
최 전 대법원장이 취임할 때 나는 기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이 전 대법원장은 내정된 당일 자택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큰 그림을 미리 그려두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또 우여곡절 끝에 사법부 수장에 오른 양 대법원장 역시 사법부가 가야할 방향에 대한 큰 그림은 늘 마음속에 그려두고 있었다.
그동안 대법원장들의 정책과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에 대해 알려진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대법원장들의 큰 그림은 소통을 기반으로 한다. 국민과의 소통, 그래서 얻게 된 신뢰, 그것이 바로 사법부의 독립에 가장 큰 버팀목이란 판단이다. 이런 대법원장의 생각이 과연 다른 판사들과 다를까?
그렇지 않다. 대법원장이나 시골에서 고추값에 대한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판사나 모두 사법부가 가야할 방향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천 방법에서 대법원장들은 서로 다른 방식을 택한다.
얼마 전 법조에 뼈를 묻을 것 같은(?) 타사 선배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다. 그는 법원행정처의 한 인사가 지난달 여러 곳의 지방법원에서 열린 판사회의를 두고 “한 번 맞고 지나가면 된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판사들의 말과 행동을 소중히 여긴다면서 그들의 말을 경청할 생각보다는 맷집으로 충격을 흡수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판사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들의 의견은 비주류에, 소수 의견이니 맞고 지나가면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정책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분이 내부와도 소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대법원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와 방안을 제시하는 인사의 발언은 곧 대법원장의 생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위험한 생각이다.
비주류의 얘기도 귀담아 듣고 판단을 위한 근거로 삼을 수 있어야 진정한 법관이라고 어느 대법관은 말했다.
양 대법원장도 사석이나 공석에서 늘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회 어떤 곳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존경받는 법조인이 판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소통은 보도자료를 잘 만들고, 선제적 대응으로 법원의 입장을 잘 전달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또 법원별로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회의를 열며 경쟁하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서로의 대화가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인 소통에 대한 다른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소통을 주제로 행사가 열렸다.
절차와 행사 일정을 외치던 법원 측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방청석에선 고성이 나왔다.
그래도 행사 후 다과 자리에서 만난 한 부장판사의 일은 미담으로 기억된다.
그는 토론회가 끝난 뒤 다과회 자리에서 한 아주머니의 말을 귀담아들어주고 있었다.
다과회에 참석한 판사들이 법원장 주변에 모일 때 그 부장판사는 방청석에서 소리를 지르던 아주머니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에게 정말 그 아주머니의 말을 귀담아 들었는지 물어보자 “아주 사소한 행정적인 문제가 있어 해결해 주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에게 적어도 일단 일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 정도는 해주어야 오해가 없다는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오는 12월 전역하는 김태평(탤런트 현빈) 병장이 입대하기 전 여심을 흔들었던 드라마 ‘시크릿가든’에 30대 백화점 사장 ‘김주원’으로 나와 자주 사용했던 대사가 있다.
“이게 최선입니까?”
김주원은 고졸출신 40대 임원으로 입지전적인 창업주의 오른팔 박봉호 상무의 틀에 박힌 기획안에 대해 최선인지를 묻곤 했다.
그러면 임원은 당황해서 “그게… 다시 검토해보겠습니다”를 연발했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법원이 역사가 호평할 만큼 최선의 방안으로 노력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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