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지나고 시끌시끌한 번잡함이 가득한 학기 개강을 맞이했습니다.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느끼는 것이지만 변화 내지는 새로움이라는 것은 항상 공부와는 상치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조용히 되새김질해가며 공부를 하던 방학의 소중함때문에 방학이 지나갔음을 ‘취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개강일입니다. 그럼에도, 로스쿨 3학년이 되고 나니 한결 같이 개강을 맞이하던 무거운 마음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과,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활용하여 조금씩 뭔가 이뤄보고 싶다는 욕심도 자리합니다. 마치 개강의 부담과 함께 졸업에 대한 설렘이 공존하는, 그래서 개강을 기뻐할 수도, 마냥 방학으로 돌아가고 싶어할 수도 없는 복잡한 마음입니다.
학부 4학년 때는 진로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된 적이 없었지만, 책은 이제 그만봐도 된다는 해방감에 불투명한 앞날의 불안보다 힘들다 느꼈던 과거로부터의 해방감이 더 컸던 때였습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나서야 4학년 때 설레던 해방감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회사에서의 기본 소양을 갖추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학교에서의 성적은 객관적인 지표로 성취 수준을 알 수 있기에 그때그때 채찍질하기도 하고 자극을 받기도 하지만, 직장에서 학습을 게을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인식도 하지 않고 있다가 한 순간 상실감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기에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욱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저마다 비전을 갖고 또다시 로스쿨에 신입생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학년마다 다른 관심사와 호기심들로 강의실 복도는 시끌벅적합니다. 1학년의 경우는 어떤 강의를 들어야 하는지, 어떤 책을 준비해야 하는지, 작게는 어떤 점심을 먹어야 잘 먹었다는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지 로스쿨 생활에 관한 호기심으로 가득합니다. 2학년의 경우는 수강신청과 학점과의 상관관계를 1년간 체득하고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졸업을 위한 중장기 계획 마련에 여념이 없습니다. 또 한편으론 올 한해 자신의 관심분야에 대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어떤 교수님께 자문을 구해야 하는지, 어떤 실무실습과정을 마쳐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 역시 지대합니다.
문제의 3학년, ‘로3’들은 한결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급한 만큼 현실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로지, 변호사시험 합격의 결과를 얻기 위한 효율적인 길은 무엇일지 고민할 따름입니다. 지난 2년간 과욕으로 질러댔던 두꺼운 교재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조금이라도 얇은 책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첫 회가 치러진 변호사시험의 경향에 대하여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마음의 급박함의 정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스터디를 시작하기도 하는 등 오로지 3학년의 관심사는 눈앞에 다가온 졸업을 앞두고 시험에서의 성공을 거두는 것 뿐 입니다.
수험생으로서의 마인드만 남은 ‘로3’들에게 앞서 말한 개강의 번잡함은 썩 달갑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간간이 로스쿨 생활 및 진로에 대한 후배들의 질문에 대하여 얕은 경험으로 조언을 해줄 때면 그 때의 모든 고민들은 별것 아니라며 로스쿨생이라면 나름 다 겪는 일이라는 식으로 여유를 가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개강의 번잡스러움이 싫은 것이지 선배 스스로도 후배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왠지 모를 자신감을 느끼고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계기인 것 같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사회든 그 사람이 처한 위치가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 20살 갓 넘어 대학에 입학했을 때 제대한 복학생 형님들이 그렇게 나이들어 보였던 것도, 직장생활 6년차 때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이 한 없이 어려보였던 것도 그러한 이유였으리라 생각됩니다. 로스쿨 1학년생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학부 4년을 거친 분들임에도 로스쿨에서의 왠지 모를 어색함은 숨길 수 없는 것 같고 나이를 불문하고 3학년이 된 로3들에게는 왠지 모를 여유와 함께 실전을 앞둔 노련함 역시 가득한 것 같은 착시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미 졸업한 1기 선배들은 나름의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도 있겠지만, 지금의 로스쿨 재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질 뿐이죠. 부럽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에게 기존의 법조인 선배님들은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들 또한 한동안은 법조계에 있어서 어색함을 씻어내지 못한 이질적인 존재들로 보여지는 것도 당연할테고요.그럼에도 여느 선배들과 같이 우려보다는 기대를 보내주시고, 현실적인 어려움보다는 짐짓의 여유로움을 보여주신다면 졸업 후 이 곳에 첫발을 내딛을 로스쿨생들에게 큰 힘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동시에 로스쿨생이 발디뎌 생기는 번잡함 역시 너그러움으로 감싸 주시길 바래봅니다. 너무 큰 욕심일런지요.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