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이가 꼴찌 안 하면 소영엄마가 한턱내는 거예요.’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하이라이트인 달리기가 있을 때면 나오던 이야기다. 5학년 때는 성적표에 체육이 ‘가’라고 된 걸 보고 울어서 성적표가 구불구불해진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여섯 살에 학교를 가 두 살이나 많은 오빠 언니들하고 경쟁한것이나 마찬가지였고, 평발이었으니 그럴 수 있었을텐데 부모님도 날 그렇게 위로해주시지 않고 그냥 괜찮다고만 하셨을 뿐이다. 난 전혀 괜찮지 않았는데 말이다.
한 번은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발레를 배우러 가자고 해서 따라간 적도 있었는데, 발레복을 입고 있는 친구들의 예쁜 몸매 날씬한 다리를 보고 내 몸매를 보니 차마 들어갈 수조차 없어 엄마 손을 뿌리치고 냅다 도망 나온 일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40여 년을 다이어트를 했으면 했지 운동이란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며 공부는 펑퍼짐한 엉덩이로 한다고 위로를 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타고난 체력은 나쁘지 않은 탓인지 어찌어찌 탈없이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를 셋이나 낳고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기계를 돌리다 보니 어느덧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려 짜증과 우울한 기분이 가시지를 않아 매사에 의욕이 없는데다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해결하다 보니 늘어나는 뱃살이 보이기는 하는데 살을 뺄 이유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내고 있었다.
이렇게 징징대고 게을러져가는 부인의 모습이 도저히 보기 힘들었는지 남편이 모처럼 큰 맘 먹고 아파트 상가 지하 헬스클럽 1년 회원권을 끊어와 같이 다니자고 했다. 오해하지 마시라. 호텔 회원권이 아니라 상가 지하 회원권이라 1년 해도 50만원이다. 일시불로 하니 할인폭도 크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 남편은 좀처럼 선심을 쓰지 않는 약간(?) 구두쇠라 그렇게 표현한 것임을 알려드린다. 물론 그동안 나도 몇 번 시도는 했었다.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어보기도 하고 골프 연습장 쿠폰을 끊어보기도 하고 요가를 끊어보기도 했지만 늘 한 번, 두 번 가고 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못가다 돈을 날려버리고 말았던 나. 이 불편한 진실. 남편이 끊어준 건데 또 그런 사태가 생길 것 같아 미리 미안해지기까지 하였다.
십 년을 살았으니 아내를 아는 남편이 이번에는 조금 다른 꾀를 냈다. 나에게 딸을 운동시킬 숙제를 준 것이다. 큰아이가 나를 닮아 먹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 운동하기를 싫어해서 과체중이 되었는데, 평발 증세가 과체중으로 점점 더 심해져 가는 것 같으니 운동을 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아이를 일찍 재워야하니 새벽밖에 운동할 시간이 없어 어렵다고 핑계를 대자 자기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아도 좋으니 새벽에 같이 운동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진짜 문제는 달콤한 아침잠을 어떻게 포기하느냐였다.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에도 포기못했던 아침잠인데 말이다. 자신이 없어서 망설여졌다. 그런데 남편의 꾀가 통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마인드가 작동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운동을 시작하고 나니 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엄청난 근육질 복근을 자랑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운동이라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기 위하여 하기 싫은 마음이 들어도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그동안 열등감에 시달려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낸 세월이 너무 아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려고 하면 특히 추운 겨울이나 비가 오는 날은 괴롭다. 하지만 운동을 하고 난 후 가뿐함과 상쾌함을 상상하며 일단 이를 악물고 일어나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신기하게도 지방덩어리 내 몸 안에서 있을 것 같지 않던 근육이 ‘저 여기 있었어요’하며 서서히 살아나는 것을 느끼는 기쁨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치료에 의존하지 않고 운동으로 허리 통증과 무릎 통증을 견뎌낸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도 크다. 특히 운동을 못하는 나와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덤으로 왔다. 옆에서 아이가 운동을 하며 예쁜 몸매로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도 왠지 좋은 부모가 된 것 같아 뿌듯하다. 가끔 남편이 ‘누구 덕분이야’라고 큰 소리를 쳐 조금 얄미울 때만 빼고는 운동습관이 가져다 준 기쁨과 행복의 크기는 느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운동을 시작하고 나니 아이들 스케줄의 우선 순위도 바뀌었다. 운동시간, 놀이시간을 먼저 정하고 나서 남는 시간에 공부스케줄을 잡도록 된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일주일에 몇 번은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된다는 것, 고생하고 있는 자신의 몸을 위로할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고 엄마가 몸으로 보여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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