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우리나라에서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가 개봉됐다. 영화에서 나비족은 생명의 나무를 모시며 그 아래에서 기원의식을 가지기도 하고 기도를 하거나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그들이 숭배하는 나무에게 인사를 드리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소원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에 대해 모두와 공감한다. 이때 이러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는 것이 주술이다.
‘주술’은 명사로서 그 사전적 의미는 “불행이나 재해를 막으려고 주문을 외거나 술법을 부리는 일 또는 그 술법”이라고 정의된다. 주술의 의미는 때로는 부정적으로, 때로는 긍정적으로 쓰인다. 시대 상황과 여건에 따라 주술의 의미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술에는 항상 현재보다는 미래의 희망을 내포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구석기 시대의 동물사냥 그림들은 그러한 것을 어느 정도 반증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들이 범접할 수 없는 크기의 동물을 잡고 싶었고 그것이 그 당시에는 가지기 어려운 꿈이었기에, 주술 의식의 일환으로 동굴에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로스쿨에도 주술이 존재한다. 잡기 어렵지만 잡을 수 있는 희망의 주술이 많이 있다. 또한 주술의 형태는 개개인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주술의 목적은 비슷비슷하다. 사회봉사, 국가발전, 인류평화와 공영에 이바지 등등 좋은 말은 다 목적이 될 수 있다. 개인의 파산이나 인류의 멸망을 부르짖으며 그것을 염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나 가지는 이런 공통된 목표 말고 개인적으로는 높은 지위를 얻거나, 재산을 많이 모으거나 등의 목적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로스쿨에서 주술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로스쿨생들은 열람실 책상에 앉아 각자가 정한 목적을 위해 매일 법서를 탐구 및 공부하고, 인내심으로 본인과 싸우고, 옆사람과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름대로 각자의 주술을 읊조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때로는 주술의 목적에 함몰되어 왜 공부하는지를 잊어버리고 목적만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 버린 친구들도 종종 볼 수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것이 문제가 된다면 이 어찌 로스쿨만의 문제라 할 수 있겠는가?! 어느 집단이든 목적에 함몰되어 인생을 버리는 문제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로스쿨생들은 목적과 수단을 구분하며, 자신의 희망을 위해 매일 주술을 외우고 땀을 흘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에게는 각자가 가진 꿈이요 희망이 있고, 또 집단이 가진 꿈이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사회가 바라보는 시각과 기대 등을 함께 공감하고 있다는 이유도 있다.
혹자는 나의 이런 말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을 듯싶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또는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지 무슨 대의가 있어 로스쿨에 다니고 있겠느냐 싶은 그런 생각들 말이다.
나 역시 그러한 생각을 가진 동기 및 선후배들이 로스쿨에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다만 로스쿨의 희망을 이야기하려 할 때는 그러한 부분과 교집합이 있는 좋은 목표들을 부각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로스쿨에는 자신이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무변촌에 들어가서 개업을 하겠다는 친구부터, 억울한 사법피해자들을 구제하려는 친구, 법 이외의 전공분야에서 법적 무지로 인해 피해를 입는 피해자들을 도와주려는 친구, 기존 변호사들의 불친절한 태도 또는 전문가적 내용에서 변호사의 무지에 실망하고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 입학한 경우 등 많고 많은 친구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물론 생계에 뛰어들게 되고 높은 현실의 벽을 마주하면 당연히 인생의 노선을 수정하거나 초심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사법체계에서 어느 누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최초부터 공부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즉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시작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로스쿨에도, 기존 사법체계에도, 대한민국에도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긍정적인 부분이라 할 것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면, 나비족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의 모든 것과 교감하고, 공감하고, 그들의 일부로 살아간다. 판도라의 행성으로 간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 하고, 주변과 단절하여 그들의 생각만으로 살아가는 것과 대조적이다. 로스쿨은 애초부터 주변과 교감하려하는 법조인을 양성하려 도입되었다. 기득권을 가지고 우월한 지위에서가 아닌 주변의 일부로서 주변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위치에서 법을 이용하여 분쟁을 현명하게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로스쿨에서 주술의 목적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것이다. 결국 로스쿨에서 외치는 주술은 기존의 사법체계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고, 기존의 사법체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한결 나은 방향으로 대한민국의 사법시스템이 도약하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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