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이다. 우연히 형사사건 재판하러 갔다가 어느 피고인이 법정 구속되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 부장판사님은 요즘 세상의 화두인 ‘소통’에 대하여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으로 정평난 분이었다. 피고인에게 당신이 왜 구속되어야 하는지를 준엄하게 설명하신다.
그때 나는 직감적으로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다를까 승복하지 못하고 판사의 구속이유에 대하여 반박을 한다. 법정 정리들에 의하여 구속집행 되면서 그 짧은 시간에 판사에게 입에 못담을 욕까지 해댄다. 풀어줄 때는 꾸짖더라도 잡아들일 때는 판결문에 쓸 내용 이외에 토를 달지 말았어야 옳았다.
재판은 거의 양쪽 당사자가 있다. 형사에서는 검사와 피고인 그리고 그를 돕는 변호인, 민사에서는 원고와 피고. 한쪽의 불만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요즘 서로 양보하는 조정·화해가 강조된다. 재미난 것은 나도 변호사지만, 대체로 선고 후 변호사들은 이기면 훌륭한 판사이고, 지면 판사자질이 없는 놈이라고 한다. 하물며 당사자들은 더 심할 것이다.
그런데 잘나가는 변호사가 아닌 나는 간혹 예외는 있지만 재판에 지고 나면, ‘내가 너무 내 의뢰인 편에 경도되었구나’ ‘달리 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나의 경우는 좀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송무변호사는 쌈닭 체질이어야 하는데 나는 쌈닭 체질이 아닌 것 같다.
자꾸 변죽을 울리는 말로 칼럼을 시작하는 것은 법조계에도 부는 ‘소통’ 바람에 대하여 이의가 있어서이다. 검찰은 친절한 검찰, 소통하는 검찰이 화두여서인지 연예인을 명예검사로 임명하기도 하고, 검찰답지 않은 친절한 메일을 보내 나에게 웃음을 준다. 영화 2편에 상처받은 법원은 아예 ‘소통 2012 국민 속으로’를 주제로 행사까지 하였다. 한데 사법피해자들 때문에 행사진행이 힘들었나 보다.
검찰은 수사기관이다. 악을 응징하는 기관이다. 소통이 필요하다면 피해자랑 소통하여 악을 응징하면 된다. 악역이 아름다운 직업이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심판을 잘 보면 된다. 누군가랑 소통하려고 하면 공정한 심판을 못 보는 것 아닌가! 소통을 하려면 국민과 할 것이 아니라 조직내부 소통이 필요한 것 같다. 검찰이나 법원이나 소장 법조인과 중견 법조인의 갈등과 의견차가 적지 않아 보인다.
영국연수 갔을 때 법정을 방문한 소감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높은 법대, 판사들의 가발, 붉은 법복! 내가 거기서 느낀 것은 결국 법의 권위는 결국 거리감과 힘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괜히 법원과 검찰이 착하고 친절한 척할 필요 없다. 공정하고 준엄하여 나중에 존경받는 직업이다. 그래서 외로울 수 있는 직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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