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개업하는 변호사에게 선배가 하는 말 가운데 상당히 뼈 있는 한마디는 “건강에 조심하고, 사람 잘 만나시오”라는 말이다. ‘건강 조심’은 누구에게나 당부할 수 있지만, 현직(판·검사 등)에서 일하다가, 또는 연수원 졸업하고 개업하는 신출내기 변호사들에게는 좀 특이한 뜻이 함축되어 있다.
공직 근무나 연수원 공부는 사실 ‘우물 안 개구리’, 아니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생활의 연속이다. 그러나 변호사로서 새로운 직장에 나가기 시작하면 바깥세상으로, 황야로 나가는 느낌이 든다. 필자가 개업할 당시의 느낌은, 겁도 없이 거액을 대출받아 일단 사무실을 정하고 나니 ‘이제는 함부로 인사발령 내어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낼 사람은 없겠지’ ‘승진이나 이동 없이 일하면 되겠구나’ 하고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 ‘의뢰인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사무실 경비는?’ 등이 걱정되기도 하였다.
개업 초에는 의욕이 넘치고, 게다가 의뢰인도 많이 찾아오는 경우(이에 따라 수입도 불어나는 경우) 자칫 건강을 해치기 쉽다. 그래서 건강 조심이 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사람 잘 만나시오”라는 말도 어쩌면 운명론적으로 들린다. 사실 의뢰인을 어떻게 골라가면서 만날 수 있겠는가. 법조인들은 순진하여 남의 말을 잘 믿는다. 그래서 덜컥 사건을 맡아 진행하다 보면 뭔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알게 된다. 의뢰인이 처음 사무실에 찾아올 때는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 운운하면서 존경을 표시하고 사건을 맡긴 후 나중에 일이 잘못되는 날이면 태도를 돌변하여, “무관심했다…” 등등 항의하는 것을 듣게 된다. 심지어 “무죄를 원했지 선고유예를 원하였나요?”하면서 변호사의 멱살을 잡고, 매일 아침 일찍 사무실에 찾아와 농성하는 여자도 있다. 억울하지만 듣고 참는 수밖에 없다.
필자가 경험한 사례 하나는 개업 초에 종친이라는 사람이 접근하여 “고문료도 드리겠다…” 운운하면서 사건을 맡기기 시작하여 몇 건을 처리하였다. 그러나 별로 시원하게 성공한 기억이 없다. 또 그 아들이 연루된 형사사건을 맡아서, 용서를 받으려고 합의까지 하도록 하였다. 집행유예 판결을 받자, 이제는 의뢰인이 건달 한 명을 데리고 사무실에 두어 번 찾아와서, “나를 잡아넣으려면 넣어라”라고 소리치면서 행패를 부렸다. 직원을 시켜 알아보니, “지금까지의 고문료, 수임료를 모두 돌려 달라. 합의금도 물어내라”고 벌인 짓이었다. 경찰을 부를까 하다가, 내가 지자고 맘먹고 모두 돌려주었다.
그 후 어느 주일 교회에 갔더니, 목사님 말씀이 “네가 참아라. 원하는 대로 다 하여 주어라. 게다가 용서하여 주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교회 2층 기둥 옆에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에 앉아서 그 말씀을 듣다가 감정이 격하여져 나도 모르게 “흑!” 하고 흐느꼈다. 뺨을 타고 줄줄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남과 힘으로 겨루거나 싸운 기억도 없고 감히 싸울 생각도 못하고 살아왔다. 목사님은 그 사람을 용서하여 주라고 하셨지만, 나는 지금도 맘속으로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나의 한계인가(‘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수고하고 잘 하였다’고 하늘나라에 가서나 칭찬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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