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

‘그 여자 A’는 검사출신 여변호사의 시행착오를 통해 그녀들이 겪는 소소한 갈등과 건조하면서 짧은 사랑을 이해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되었습니다. 부족한 글 솜씨 덕분에 독자 여러분들께 누가 되지는 않았을까 걱정됩니다. 그동안 넓은 아량으로 ‘그 여자 A’를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점점 사건이 줄어드는 게 눈에 확 보이네.” 같이 개업한 부장님이 중얼거리신다.
“그러게요. 전관예우금지 때문에 혜택 좀 보나 했더니 웬걸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전체적으로 사건 수가 줄어서 그런 것도 있고, 2월이 변호사들 비수기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말끝을 흐리는 모습이 뭔가 심상치 않다.
“이번에 고등부장 하다가 나오시는 분들은 중앙 사건 할 수 있는 건가?”
“할 수 있다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면 좀 모순 아닌가요? 중앙에서 마지막 근무했던 부장님들이 중앙 사건을 못하는데 고등에서 근무하셨던 분들은 중앙을 비롯해서 동, 서, 남, 북 전부를 맡으실 수 있다면, 결국 지법 부장님들한테는 사건을 못하게 해놓고 고등부장님들이 지법 사건을 싹쓸이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러게. 하지만, 그래도 예컨대 서울고등 같은 경우 관할이 워낙 넓으니 만약 지법 사건까지 못하시게 하면 그 분들은 결국 아무것도 못한다는 말이 되고, 참….”
직원들과 회식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었지만, 씁쓸한 현실은 감추려 해도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저기, 이런 말 꺼내기 좀 민망하기도 한데…”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서 변호사의 전화를 받고 서울회 등산 모임에서 민 변호사와 같이 먼저 총총히 사라졌을 때의 섭섭함이 살짝 가시는 듯했는데, 어색한 표정으로 더듬거리는 서 변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왜요? 뭐 결혼이라도 해요? 왜 이렇게 쩔쩔매?”
짐짓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려고 했지만, 기다렸다는 듯 싱긋 웃는 그의 모습을 보자 무언가 뜨거운 것이 목구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처럼 불편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나 3개월 후에 결혼하기로 했어.”
“네?”
“사실 지난번 제주도 모임에서 민 변호사님을 알게 된 이후로 가끔 만나왔었는데 이번 청계산 야유회가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 축하해 줄거지?”
“아~ 축하해요. 정말로.”
“그리고, 그동안 내가 했던 국선 변호사 일은 앞으로 못할 것 같아.”
“왜요?”
“사실, 이번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야.”
“네? 정치에 관심 있는 줄은 몰랐는데.”
“그렇지? 내가 좀 그렇게 생겼지. 하하. 어쨌든 좀 잘 도와줘.”
너무도 기분이 좋다는 듯이 큰 소리로 웃고 있는 그를 보면서 도대체 내가 저 사람하고 그동안 뭘 했던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그에 대해서 뭘 알았었는지도 모르겠고, 더 이상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는 계속해서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예전부터 소위 말하는 강남 복부인이었다는 것, 테헤란로와 여의도에 가지고 있는 빌딩만도 여러 개라는 것, 자기 명의로 된 모텔도 있다는 것, 아버지가 국회의원 만들어 줄 테니 임용하지 말고 국선변호사로서 인권에 친하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놓으라고 했다는 것. 민 변호사가 어떤 권력자의 딸이라는 등…
겨우 마이너스 갚고, 엄마 아빠한테 조그만 아파트에서 전세 사실 비용을 드린 것밖에 없는데, 사건은 벌써 떨어지고,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과 특별한 이유도 없이 헤어지게 되었다. 뭔가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좋아했었는데 그 사람과는 동상이몽을 꿈꾸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뜬구름을 잡듯 착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느낌이다. 정말 부끄러웠다.
1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주었던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인생이란 이런 모습을 하고 내 곁을 맴도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칼렛 오하라의 말대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법이다. 내 태양만 찬란히 빛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제 푹 자야겠다. 다시 떠오를 나의 태양을 기대하며.

puffyo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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