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로, 변호사로 살아가는 時代의 賢人

판사마다 차이가 컸다. 상반된 모습의 두 판사를 다른 법정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
한 법정에서 판사가 서류를 흔들어 대며 짜증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렇게 두껍게 쓴 서류를 나보고 다 읽으라는 겁니까?”
변호사는 주눅 들어 서 있었다. 읽기 싫으면 말 것이지, 욕하는 걸 보니 책임 지기는 싫은 모양이다. 그런 판사면 죄인들이 보내는 진정서도 제대로 읽지 않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수없이 쏟아지는 요령부득의 말과 글에 고통을 느끼는 게 판사들일 것이다.
다른 법정에서 다른 판사를 만났다. 피고인의 기나긴 넋두리를 다 들어주는 인내가 대단한 분이다. 굵은 쌍꺼풀이 진 커다란 눈과 귀는 블랙홀같이 말의 쓰레기들까지 받아들였다. 그가 박 철 판사다.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여기서 못하신 말씀이 있으시면 구치소 가셔서 글로 써 보내 주시면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투에 진정이 묻어나왔다. 그런 그가 변호사가 된 지 2년이 흘렀고, 나는 그가 근무하는 로펌을 찾아갔다. 법대가 아닌 회의실 탁자에서 만난 그는 짙은 감색 양복에 흰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20년을 법원에서 일한 그로부터 판사 세계에 대한 말을 얻고 싶었다.
“언론이나 여론을 보면 판사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변호사들의 책임이 크더군요. 상당수의 변호사가 전관예우의 영향력을 과장하거나 그걸 빌미로 의뢰인들을 속인다는 생각입니다.”
그는 사회적 이슈가 되는 전관예우 문제를 꺼내고 있었다.
“저도 전관예우 덕을 본 사람입니다. 오래 판사를 해서 재판부와 잘 통할테니 기대하고 찾아오는 의뢰인들이 많았죠. 그렇지만 솔직히 의뢰인들에게 설명해 줍니다. 판사들같이 자존심이 세고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들은 친분만 가지고는 설득하지 못한다, 진짜 필요한 건 납득시킬 수 있는 논리와 증거라고 말입니다. 그럴 경우 별 도움이 안 되겠다며 다른 곳으로 가는 의뢰인도 있고, 오히려 신뢰감이 간다면서 사건을 맡기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귀중한 재산을 내려놓고 있었다. 옳지 않은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전관출신 변호사들이 다 그와 같지는 않다. 상고를 하기 위해 대법관 출신 변호사 사무실을 다 돌아봤다는 의뢰인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모두 점잖게 말하지만 먹잇감 앞에서는 숨긴 발톱이 살짝 튀어나오더라는 것이다.
“전관예우를 바라고 찾아온 한 의뢰인 때문에 저도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뭡니까?”
“여자가 함께 살던 남자를 칼로 찌른 사건인데, 여자 가족들이 돈을 모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남자가 평소 여자를 많이 때렸습니다. 그날도 술에 취해 여자를 팼죠. 쓰러져 자다가 깨어나 또 여자를 또 때렸어요. 그러자 여자가 과도를 들고 ‘다가오지 마세요!’ 소리쳤는데도 달려들다가 제풀에 넘어져 칼에 찔려 죽었다는 겁니다.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자 검사가 항소를 했습니다. 여자의 가족들은 항소심에서 혹시 판결이 뒤집어질까 두려워 눈물겨운 돈을 모았고, 저 같은 전관 출신에게 오면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제가 그 사건을 맡으면 법원에서 가족들이 돈이 많아 무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전 ‘전 오히려 도움이 안 될거다. 국선변호사에게 의뢰하라’고 권했습니다. 몇달 후 무죄가 확정돼 가족들이 인사를 왔는데 제가 오히려 고맙더군요. 속으로는 ‘내가 무료변론을 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판사들에 대해 하실 말씀은요?”
전관을 파는 판사 출신들에게 일침을 놓는 그라면 판사들의 눈에 있는 티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판사들은 ‘지적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사들은 대부분 똑똑하고 뛰어난 분들입니다. 그래서 자칫 자기 판단을 과신하고 다른 견해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재판은 기록을 보고 하는데, 자기 생각이 잘못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이 절대라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다른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증거를 들이대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사실관계든 법률에 대한 의견이든 선입견 없이 신중히 하는 걸 저는 ‘지적 겸손함’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요즈음 법정에 가보면 젊은 판사 중에 당사자들이 제출한 서면을 열심히 읽고 말도 끝까지 경청하고, 의심스러운 점을 정확히 물어보고 해명의 기회를 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법원이 발전하고 있다는 거죠.”
그의 말은 거의 정제된 문장에 가까웠다. 이제 변호사가 됐으니 그는 변론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자기 편만 들어달라는 의뢰인이 많았다. 변호사는 그들 돈을 받고 살아가는 직업이다. 흔들릴 수밖에 없다.
“변론에서도 진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형사사건을 해보면 의뢰인들이 가장 억울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는데도 검사나 판사가 들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책임질 부분을 넘어서서 억울하게 처벌받는다는 거죠. 그 범위를 넘지 않도록 해 주는 게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변명같이 보이는 피고인의 말 속에 진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판사에게 알리는 겁니다. 변호사를 해보니까 입장이 다르면 생각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입장을 법원에 납득시켜야 하는 거죠. 중요한 건 변호사는 자기 말 속에 절대로 잘못된 말이나 거짓이 포함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판사는 전체를 믿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거짓말을 원하는 의뢰인들도 있어요. 그럴 때 왜 진실이 최선인가에 대해 납득을 시키려고 합니다. 그게 안 되면 결국 사건을 거절해야 하는 거죠.”
“변론 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그가 변호사일 하는 방법도 뭔가 다를 것 같았다.
“일단 변론요지서나 준비서면으로 변호사로서 해야 할 것들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걸 다시 압축해서 법정에서 구두변론할 자료로 다시 만듭니다. 구두변론은 짧게는 십 분, 길게는 한 시간 정도 합니다. 재판장 앞에서 어떻게 말로 빨리 이해시킬지 예행연습까지 하고 갑니다. 법정에 가면 거기 설치되어 있는 실물화상기도 적극 활용하죠.”
그의 치밀한 구두변론 준비에 깜짝 놀랐다. 법정에서 말을 많이 하면 재판부에서 싫어했다. 구두변론을 그토록 중요시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억지 논리를 전개한다든가, 핵심이 정리되지 않은 변론은 판사로서는 그걸 듣는 과정 자체가 고통입니다. 반대로 핵심이 잘 정리된 구두변론은 판사도 자연스레 집중하게 됩니다. 판사의 집중을 이끌어내는 변론은 결정적입니다. 저는 그래서 판사를 이해시키는 압축된 구두변론을 꼭 하죠.”
모든 변호사가 알아야 할 핵심을 풀어놓고 있었다. 더 정보를 얻을 필요가 있었다.
“재판장을 할 때 어떤 기준으로 피고인들의 형량을 결정했는지 말씀해 주시죠.”
“선배들이 판사는 인간을 재판하는 게 아니라 죄를 심판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옳은 말이지만 어떤 면으로는 판사들이 마음의 상처를 안 받으려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추상적 인간을 설정한 것인지도 모르죠. 그런데 실제로 재판을 해보니까 죄만 보고 판단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죄를 지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도 함께 받고 사업이나 삶의 터전이 완전히 붕괴되는 게 형벌입니다. 죄와 인간이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장판사가 된 이후에는 피고인들의 인간적인 변명을 들으려고 애썼습니다. 범죄 이전에 어떤 인생을 살아오고 위기에 처할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파악하고 그걸 재판에 반영했죠. 재판에서는 죄보다 어떤 인간이었나를 봐야 합니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재판을 했다. 범죄를 실행할 때 주저한 흔적이 있고 착한 일면이 발견되면 참작을 했다.
“12년을 감옥에서 살고 나와 몇 달 만에 강도를 하러 들어가서 모자를 살해한 사건 때입니다. 본인도 사형을 각오했는지 국선변호도 거부하고 그냥 빨리 죽이라더군요. 재판장인 저는 국가가 사형에 처할 때 본인이 요구한다고 해주는 건 아니라며 그에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경위로 그렇게 했는지를 알고 판단할 거라고 했죠. 첫 기일에도 두 번째 기일에도 강도 살인범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재판을 끝내지 않고 그래도 불러냈습니다.
세번째 기일부터 마음이 열리는지 입을 열더군요. 폭력성 있는 아버지가 엄마를 때려서 내쫓아, 오누이끼리 자랐답니다. 어느날 누나와 철길에서 놀다가 발이 끼었답니다. 기차가 오는데, 누나는 동생 발을 빼주려다가 기차에 치여 죽었답니다. 그는 ‘누나 대신 내가 죽었어야 했다’며 오열했습니다.
법정에는 피해자의 가족들이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사람들에게 대표자를 뽑아 얘기해 보라고 했습니다. 형사소송법상 피해자진술권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얘기도 듣고 싶었습니다. 가족 회의 끝에 대표자가 나와서 말하는데 범인이 사형받기를 원하지는 않는다더군요. 살인범의 얘기를 듣고 생각이 달라진 거죠. 검사가 사형을 구형했었는데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저는 특히 장기형을 선고할 때는 꼭 그 사람의 인생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인간인지를 파악하는 신중함을 국가가 보여야 합니다.”
“로펌에 계시면서 부자들을 많이 보셨죠? 그 사람들이 많은 돈을 제시하면서 무리한 일을 해달라고 유혹한 적은 없습니까?”
“판사 때는 사람들과 거리가 있었고 국가와 사회를 위한다는 사명감만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니까 우선 ‘이렇게 돈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구나’하고 놀랐습니다. 그런 부자들을 보면서 ‘내가 재산이 없기는 없구나’하는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인생입니다. 부자들이 돈의 힘으로 한계를 넘는 요구를 해왔을 때 자존심을 살리는 게 변호사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에게 변호사가 해 줄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똑같이 설명해 줘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부자 의뢰인들을 놓치기도 할 텐데요?”
“변호사를 시작할 때 선배들이 돈 생각은 하지 말고 맡은 일 자체를 즐기라고 했습니다. 일은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면서요. 판사를 할 때보다 돈은 더 벌지만 결국 물질은 운수소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 있는데 그걸 생각하지 않고 돈을 쫓아가다 보면 결국 초라해질 겁니다.”
변호사를 하면서 힘들었던 일을 물어보았다.
“의뢰인의 고통에 공감을 하면 그게 전이가 돼 너무 힘들고 괴롭습니다.”
이럴 때 변호사들이 자기 방어를 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사건을 수임받는 거지, 고통까지 함께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명분일 뿐 한계가 불분명했다.
“다시 법관으로 돌아가시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는 변호사라기보다는 훌륭한 대법관으로 존재해야 이 사회에 더 유익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판사는 다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혀 뜻밖의 대답이어서 놀라웠다.
“변호사를 하면서 판결이라는 것이 재판을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까지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를 봤습니다. 그때는 내 선고가 한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걸 알고나니 다시는 판사는 못하겠더군요.”
그는 앞으로 쏟아져 나올 후배들이 변호사의 표상으로 삼아도 충분한 인물이다.
“변호사의 의견은 의뢰인이 받는 여러 가지 조언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가 사회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말해줄 때도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직업에 대해 여전히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법조인으로의 길이 갖는 혜택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책을 쓰고 싶습니다. 초고를 잡아 놨는데, 일반인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법이야기입니다. 법의 본질을 인문학적 방법으로, 역사와 철학, 인간의 고민들까지 쓰고 싶습니다. 대기업의 횡포 아래 어쩔 수 없었던 중소기업을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대기업이 계약포기각서까지 받아내는 등 일방적으로 전횡한 사건이죠.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게 법입니다. 그런 본질들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와 말을 마칠 때가 됐다. 로펌대표인 김동건 변호사가 문가에 와서 조바심을 내고 있다. 클라이언트가 와서 기다린다는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모니터 커서가 깜박거리고 있다. 박 철 변호사를 다시 떠올렸다. 법을 다루면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와 진정성을 끊임없이 고민해온 삶이 배어나오던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시 떠올랐다.
그가 과거에 쓴 판결문 하나를 폴더에서 다시 뽑아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임대주택법에 대한 법적 해석을 판결문에 담은 것이다. 판결문의 끝에 그는 자기 마음을 이렇게 오롯이 적어 넣었다.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는 원고의 소장에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그는 마지막에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하여야 한다’고 기록해 놓았다. 모든 후배 법관들에게 던지는 잠언이었다. 법조계의 귀중한 보석을 본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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