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정치적 발언, 법관 중립성 해치지 않아”

그곳은 유수의 대학 동문 모임이었다. 신임 대법관을 비롯한 동문들의 성공적 행보를 축하하는 축제의 자리였다. 지난 5일 저녁 반포동 JW 메리어트 호텔에 모인 ‘코리안 하버드 로 클럽’ 회원들은 건배사로 ‘하버드를 사랑한다’고 외치며 자축했다.
그런데 이처럼 기뻐할 일 많은 자리에서도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바로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최초로 美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 교수가 된 석지영 교수(38)였다. 이날 이영애 자유선진당 의원과 김평우 전 대한변협 협회장을 비롯한 많은 참석자들은 석지영 교수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모였다.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난 석 교수는 6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예일대에서 영문학과 불문학을 전공하고 영국 정부가 주는 마셜장학금을 받아 옥스퍼드대에서 불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하버드 법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로스쿨 졸업 후 대법관의 로클럭과 뉴욕 맨하탄 검찰청 검사를 거쳐 2010년에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 교수로 임용됐다. 한때 발레리나를 꿈꾸기도 했으며 줄리어드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바 있는 이색적인 전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석 교수는 “나는 한국의 딸”이라는 문구로 강연을 시작하며 이민 초기시절과 가족사 및 개인적 배경, 그리고 자신을 이끌어 준 멘토, 발레와 문학, 패션, 법학 등에 다양한 주제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했다.

한미 FTA 연구 위한 사법부내
태스크포스 설치 문제 없다

이어 열린 기자간담회 분위기는 강연과는 사뭇 달랐다. 기자들은 석 교수에게 자칫 민감할 수도 있는 국내 정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최근 한 판사가 한미 FTA 연구를 위한 사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를 설치하자고 주장해 논란이 된 것에 대한 의견을 묻자, 석 교수는 조심스러워하면서도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판사가 법적 규범을 지키며 특정 주제를 연구 분석하기 위한 기구라면 그 자체로는 논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실제 미국에서는 수시로 연구 목적으로 태스크포스를 설치하곤 한다는 것.
민감한 질문은 계속됐다. 한미 FTA에 관한 또 다른 논란으로, 어느 판사가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와 관련해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 구설에 오른 일이 있었다. 그 판사가 관련 사건을 맡는 것이 적절하겠냐는 논란도 불거졌다, 그러자 대법원은 판사들더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석 교수는 “판사가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이 법관의 중립성을 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판사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법관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시민들이 기대하는 모습이 있겠지만, 이들이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가능한 일이고 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관이 특정 사건에 대해 중립성을 해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일반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이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곧 중립성을 해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면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했다. 판사의 중립성은 여러 법체계에서 종종 논의되는 부분이지만 법관도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판사 재량 있어야 상황에 맞는
판결 가능해

일관되지 않은 양형기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칙도 중요하지만, 판사의 재량이 있어야 각 상황에 맞는 판결이 가능하다”며 규칙과 재량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각각의 사안에 대해 사실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법관에게 재량을 주어야 형량이 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이는 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인 만큼 미국에서도 법관의 재량에 대해 여러 단계의 실험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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