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송 전문가로서 얻은 명예가 가장 큰 보수”

대법원 동문 앞에 리어카를 끌고 와서 시위하는 남자를 봤다. 리어카에 흉측한 환자 사진과 함께 ‘신현호 변호사가 병원 측과 짜고 가족을 희생자로 만들었다’라고 적힌 피켓을 세워놓았다.
어둠이 밀려오고 거리에 불이 켜져도 리어카의 사나이는 서초동 부근을 흘러 다니며 한풀이를 계속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신 변호사가 많이 힘들어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변호사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버티고 있는 걸 보면 그에게 잘못이 없는 것 같았다. 피해망상이나 지독한 집착을 가진 정신병자의 테러행위가 아닐까.
10월 27일 오후 4시경 신 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칸막이를 한 박스 속에서 직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의료에 관한 자료들이 떠 있었다. 의료분쟁을 전문으로 하는 중소 로펌 특유의 분위기였다. 대표인 신 변호사 방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와 통화중이던 그가 이윽고 전화를 끊고 첫 마디를 던졌다.
“의료분쟁 전문이라고 알려지니까 전국에서 의료소송 중인 변호사들의 전화가 끊이질 않네요.”
실제로 그는 의료분쟁 분야 최고의 변호사다. 교과서도 썼고 대학 강의도 맡고 있다.
리어카 끌고 시위하는 의뢰인 사건의 내막을 듣고 싶었다.
“2005년 무렵 정형외과 수술시 감염으로 다리를 절단한 환자의 아버지가 소송을 의뢰했습니다. 그는 도끼를 들고 의사들을 찾아가 공포분위기를 조성할 정도로 험한 의뢰인이었죠. 그 사건을 맡아 몇 년간 열심히 했는데 소송이 유리하게 진행되는 듯하니까 제게 사임을 강요하더군요. 성공보수를 주기 싫었던 거죠. 결국 사임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혼자 약게 해결하려다가 소송에서 졌어요. 그러고 나니까 저를 사기죄로 고소하더군요. 불가능한 사건을 이길 것 같이 얘기하고 소송을 맡았다는 거죠. 기가 막히더라구요. 결국 무혐의 결정이 났고…그러니까 이번에는 제가 병원과 짜고 자기네를 지게 했다고 우기는 겁니다.”
전형적인 망상을 가진 의뢰인이었다.
“들은 척도 안했더니 어느 날 찾아와서 앞으로 데모를 하겠다더군요. 다음날부터 리어카에 피켓을 싣고 법원 근처를 돌아다니더라고요.”
사건의 전말이 이해가 갔다.
“정말 죽이고 싶도록 분노가 치밀어 오르더군요. 그러다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집니까? 끝까지 싸우자. 의뢰인들 사이에 고소만 하면 변호사가 돈을 돌려준다는 말이 있잖아요. 싸우기 귀찮다고 돈 주고 타협을 하게 되는데 이제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의뢰인한테 고소당해 경찰서에도 여러 번 불려갔다. “우리 사무실 식구들까지 다 고소하는 바람에 경찰서에 안 불려간 직원이 없습니다. 사무실로 쳐들어와 누워버리기도 했죠. 신고해서 경찰관이 왔지만 그냥 보고만 있다가 가버리더군요. 심지어 사무실 앞 도로에서 폭행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을 겪었고, 겪게 될 변호사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적극 대응키로 했습니다. 사무실에 CCTV를 설치해 놓고 그가 나타날 때마다 녹화를 했죠. 시위를 할 때 다가가서 ‘고생한다. 사무실에 들러서 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미소까지 지어줬지요. 그리고 저도 정식으로 고소도 했어요. 그런데 이 나라 수사기관은 제대로 조사조차 안 해주더군요.”
내 경험으로도 경찰이나 검찰은 결코 변호사 편이 아니었다. 그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궁금했다.
“저도 접근금지가처분을 신청했고, 직원들도 그를 고소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검찰은 강 건너 불 보듯 하더라구요. 그래서 머리를 썼습니다. 전 직원이 한꺼번에 고소를 해서 스무개 정도의 사건을 만들어 한 검사 앞으로 몰았습니다. 개별사건으로 가볍게 취급하려다가 사건이 수십 개가 되니까 그제야 구속영장을 신청하더라고요.”
그를 괴롭혔던 그 의뢰인은 현재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의 상처가 너무 컸다. 적당한 선에서 합의가 가능했음에도 그는 끝까지 피 흘리면서 버텼다. 너무 들인 시간과 에너지가 많았다.
“변호사 배상책임보험에 들어있기 때문에 몇 억원은 언제든지 그 작자에게 주고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생떼 쓰는 작자에게 굴복할 수 없었습니다. 만일 제가 잘못한 점이 있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배상했을 겁니다. 한데 이번 건은 제 잘못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자에게 끌려다니는 건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변호사의 마지막은 의뢰인의 욕심과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소송이 이길 때가 되면 성공보수를 안주려고 사임해 달라고 내용증명을 보내는 질 나쁜 의뢰인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 양보하면 안 됩니다. 저는 못 받은 성공보수를 10년간 소송해서 받아낸 적도 있습니다. 법원은 그럴 때 더러 보수를 깎는 경우가 있는데 당사자끼리의 약정을 존중해 줘야 합니다.”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대한변협도 일부 수임료를 돌려주라고 권고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의료소송의 개척자니까 의사들로부터 공적으로 간주된다던데 맞습니까?”
“맞습니다. 의사들 협의회에서 저를 왕따로 만들자고 논의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개의치 않습니다. 의료계의 문제점은 하나 둘이 아닙니다. 문제가 생기면 대학병원들이 진료기록부터 변조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수면제 먹이고 강간한 파렴치한 의사도 있었고, 마약사고를 일으키는 의사도 있습니다. 사무장이 의사들을 고용해 한번 올 환자를 몇 번씩 오게 처방하려고 강요하는 병원도 있죠. 그런 부정들과 싸워야 하는 게 의료분쟁 전문 변호사의 소명입니다.”
그에게 의료분쟁이란 어떤 영역인지 정의를 내려달라고 했다.
“소송분야에서 어떤 사회가 발전했다는 척도는 바로 특허, 의료, 환경소송이 어느 정도인가 보면 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의료소송이 제법 많아지고 있습니다. 소송구조도 선진화된 거죠.”
“의료소송도 결국 대형로펌이 가져가지 않을까요?”
변호사 사회도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그의 대답은 달랐다.
“의료분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료사건은 큰돈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돈을 낼 능력 있는 환자가 별로 없고, 의사들도 십만 원짜리 수술했다가 몇 억 물어주는 판에 변호사에게 돈을 주고 싶어 하지 않죠. 요컨대 대형로펌은 푼돈 벌이, 재미없어 하는 사건입니다. 재벌 건설사가 작은 공사 안 맡으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렇다고 개인변호사가 하기에는 또 벅찬 분야입니다. 소송을 수행하려면 간호사 출신도 고용해야 하고, 여러 의사들의 전문적인 도움도 받아야 하니까요. 의료분쟁이야말로 그 정도를 할 수 있는 중소 로펌의 독점적 영역입니다.”
틈새시장이란 얘기다. 그가 어떻게 의료분쟁 전문변호사가 됐는지 궁금했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곧바로 입대를 한 그는 제대를 하고 나자 막막했다. 변호사를 하긴 해야겠는데 광야에 나침반도 없이 혼자 선 느낌이었다. 3000만 원을 대출받아 서초동 일대를 돌아다녔다. 어디다 사무실을 얻어야 할지, 직원은 어떻게 뽑아야 할지 아는 게 없었다. 선배들이 말렸다. 부장판사 출신이 개업을 해도 고전하는 게 서초동인데 어떻게 연수원 출신이 사무실을 얻으려고 하느냐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 연고도 없었다.
그는 뒷골목 허름한 건물에서 법률사무소를 시작했다. 중고가구점에서 책상과 걸상을 들여왔다. 비품 중 제일 비싼 게 복사기였다. 그는 자신에게 ‘6개월 후 복사기를 새로 들여놓을 수 있으면 성공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망한 것이다’라고 속삭였다.
개업했지만 찾아오는 의뢰인은 없었다. 출근해서 신문과 법원공보를 보고 나면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갔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도 그저 많은 시간들만 공허하게 줄을 서 있었다. 무료하고 불안한 나날이었다. 잡비도 없어 현금인출기에서 카드로 돈을 빌려 썼다. 시간이 흐르면서 위기의식이 더 느껴졌다. 차라리 공무원 자리라도 얻어 들어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오후 한 남자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눈이 번쩍 띄었다. 마주 앉아 얘기를 들었다. 은행원인 여동생이 심장수술을 받은 후 피찌꺼기가 뇌동맥을 막아 식물인간이 됐다는 것이다. 의료사고! 맥이 빠졌다. 전혀 모르는 분야였다. 남자가 설명을 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솔직히 의료분야는 모르겠다’면서 수임을 거절했다. 나가던 남자가 아쉬운 듯 한마디했다.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으로 이론 구성하면 어떨까요? 모르시겠으면 제가 다 쓰고 변호사님 이름만 빌리면 안 될까요?” 그는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오히려 의사들이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는 걸 미덕으로 알고 있던 그였다.
그날 오후 무료를 달랠 겸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의료논문을 찾아보았다. 과연 의사의 설명의무에 관한 논문이 있었다. 충격이었다. 자신은 변호사지만 실력이 너무 없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일주일 후 그 남자가 또 찾아왔다. 수임을 재차 부탁했다.
“저는 막 개업한, 실력도 없는 변호사입니다. 전공도 형법이고요. 왜 이런 저한테 사건을 맡기시려고 합니까?”
그가 분노와 서러움이 섞인 목소리로 털어놓기 시작했다. “법률사무소를 30군데나 찾아다녔습니다. 그 중 반은 변호사조차 못 만나고 쫓겨났고, 나머지 반은 얘기 시작 5분도 안 돼 쫓겨났죠. 그래도 변호사님은 제 얘기를 한 시간이나 들어주셨습니다. 제가 모든 걸 다 할테니 변호사님은 이름만 빌려주시고 호흡만 맞춰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마음이 약해졌다. 한번 해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앞이 깜깜했다. 판례도 없었다.
그 무렵 척추결핵수술을 하다가 하반신마비가 된 환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신문에 보도됐다. 그는 사건기록을 구해 왔고, ‘선생님’으로 삼았다. 그리고 담당의사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의사의 어떤 과실이 있었는지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재판이 열렸다. 역시 막막했다.
재판장인 권성 부장판사는 그가 풋내기 변호사라는 것을 단번에 간파했다. 재판장은 조용한 눈길로 보면서 유도했다.
“이 사건에 관해서는 신체감정이 필요할 것 같군요. 형사기록이 법원에 와야 하고 문서제출명령신청을 하셔서 진료기록들이 모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후 진료기록에 대한 감정이 이루어져야 할 걸로 압니다. 그런 절차를 밟으려면 기일이 걸리므로 다음 기일은 추정해 놓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재판장은 변호사가 할 일들을 알아서 다 말해 주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재판부는 특별 기일을 잡고 적극적으로 심리해 주었다. 토요일에도 흉부외과 의사를 판사실로 불러 구체적으로 물어보기도 했다. 법원은 이 의료소송 사건 판결의 파괴력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신중하게 사건을 처리하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마침내 병원 측이 환자에게 2억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의사의 책임을 묻는 최초의 사건이었다. 언론에 판결내용이 크게 보도됐다. 신 변호사는 졸지에 의료사건의 새로운 판례를 이끌어낸 전문 변호사가 돼 버렸다.
사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수술 중 실수로 거즈를 몸 속에 넣고 봉합을 했다는 등 과실이 명확한 사건들도 많았다. 그 무렵 환자들이 의사들에 대해 권리주장을 하는 시대적 흐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공부가 필요했다. 보건학 석사과정에 등록해 학위를 땄다. 이어서 의료형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그는 상승하기 시작했다. 의료분쟁 사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사건이 300건을 넘은 적도 있었다. 그는 식물인간인 환자에게 존엄사를 인정하도록 법적인 토대를 만들기도 하는 등 의료사건 분야의 개척자가 됐다. 대학에 그의 강좌가 개설돼 인기를 얻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해진 외길인생이었다.
“의료소송은 짧게는 20회, 보통 30회 이상, 우리 변호사들 은어로 ‘법정에 출격’해야 간신히 한 사건이 끝납니다. 몇 년이 걸리는 거죠. 착수금 낼 능력이 있는 환자 측은 가물에 콩 나듯입니다. 그렇게 몇 년 수고 끝에 판결금이 나와야 그 일부를 성공보수로 받을 수 있는 거죠.”
“그런 의료소송으로 돈벌이가 됩니까?”
나도 그쪽을 전문으로 해 볼까 기웃거린 적이 있었다. 보건대학원에 다니기도 하고 의료분쟁 기록을 놓고 공부도 했다. 외국의 의료분쟁 소설을 열심히 읽어보기도 했다. 간간이 몇몇 사건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도저히 수지가 안 맞았다.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결과는 너무 미미했다. 공부해야 할 것도 끝이 없었다.
“저는 의료사건을 돈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마음을 비우고 특수 분야를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대했죠. 이기면 감사하고 좋고, 아니면 할 수 없고…그런 거였죠. 다만 한 가지 고집은 이 분야 전문변호사로 죽을 때까지 손에서 책은 놓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고요.”
그는 자신이 쓴 의료분쟁 교과서와 관련 서적들을 자랑스러운 듯 보여 주었다.
전문 분야 변호사로 어떤 성취를 이루었는지 물었다.
“우선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제가 만든 판례도 있고 의료소송 전문가로서 명예를 얻었습니다. 이보다 큰 보수가 없죠. 저는 변호사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직업 중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벽에 서 있는 절망한 사람들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죠. 또 저 스스로도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과연 그는 프로변호사였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