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남쪽에 위치한 남호주의 주도인 아델라이드를 지난 10월 18일부터 22일까지 나흘간 방문했다. 하지만 인천공항에서 시드니를 거쳐 아델라이드까지 12시간을 이동했으니 실제로 머문 시간은 사흘이 채 되질 않았다.

나는 왜 그 먼 곳을 가야 했을까?

지난 6월 변협신문에 내가 기고한 글에 그 이유가 있다. 6월 13~16일 타이페이에서 열린 제22차 아시아변호사단체 회장단(POLA) 회의에 참가했을 때 호주변호사협회의 마저리 니콜 사무차장 겸 국제이사와 윌리엄 그란트 사무총장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우리는 1999년에 40개 변호사단체가 참가하는 ‘변호사단체 사무국 최고책임자 기구(IILACE)’가 결성돼 매년 연례회의를 갖고 있으며, 올해는 호주에서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한변협도 그들과 교류를 시작해 체계적인 정보를 교환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일본의 유치 가이도 사무총장, 말레이시아의 토니 운여우 쏭 사무총장과 라전 데바라 사무국장에게 제의해 함께 IILACE에 참가하기로 결의했다는 사실을 회원 여러분께 보고드린 적이 있다. 우리는 13년 동안 그런 회의가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것이다.

이번 여행은 바로 이런 결의를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대한변협으로서는 처음으로 참가하는 것이고 향후 계속 참여할 것인 지를 판단해야 하는 만큼 동행 없이 나 혼자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 역시 본업이 있는 변호사로서 주중에 나흘을 비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일종의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장도에 올랐다.

아델라이드는 한국보다 1시간 30분이 빠르고 시드니에 비해 아주 소박하면서도 잘 정돈된 아름다운 도시였다. 국제공항도 신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우 깨끗했으며 도심지와 주변 해안도 그렇게 붐비지 않아 여유를 갖고 살기에 적절한 규모를 갖춘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도착 첫날인 19일의 IILACE 연례회의 행사는 12시 오찬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내가 아델라이드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를 넘겼고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예정된 오찬 시간도 훨씬 지난 뒤였다.
모든 회의는 시내 중심에 위치한 시벨플레이포드 호텔 2층 콘퍼런스룸에서 진행됐다. 아주 고급스러운 호텔은 아니었지만 품격 있고 정갈한 맛과 정취, 편안함을 느낄 만했다.

오후 1시 15분 시작된 첫 회의는 회원들에 대한 관리업무 방식의 변화를 주제로 이미 진행 중이었다. 회의장 입구에서 서둘러 등록 절차를 마친 후 이름표를 받아 들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실내를 꽉 메운 자리 한가운데 유일한 빈 자리를 찾아가 앉고 보니 왼쪽에는 호주의 빅토리아주 변호사회의 사무총장 마이클 브렛 영, 오른쪽에는 윌리엄 그란트 사무총장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윌리엄이야 지난 타이페이 POLA 회의와 얼마 전 서울 로아시아 회의를 통해 이미 친한 사이였으나 마이클은 첫 만남이었다. 늘씬한 키의 마이클 총장은 부부가 함께 동반했다고 하며 친절하게 호주의 국내 사정과 변호사 단체의 상황까지 건네며 말을 건네었다.

첫 세션의 쉬는 시간에 IILACE 부회장인 잰 마틴 남호주 변호사회 사무총장을 처음 만났다. 50대 중반의 단아한 여성 변호사였다. 그녀는 IILACE에 참가하고 있는 주요 인사들과 사흘 동안의 일정에 대해 간략하면서도 친절하게 브리핑해 주었다.

첫날 두번째 세션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非변호사의 로펌 일부 지분 소유 또는 지배)에 관한 토론이었다.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잰 마틴 부회장이 갑자기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오늘 한국에서 처음으로 IILACE에 참가했으니 소감을 얘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워낙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우선 IILACE 행사 참가가 영광이며, 지난달 대한변호사협회가 로아시아 행사를 성황리에 치렀다는 사실과, 이 자리는 한국이 참가하는 처음 자리인 만큼 많은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를 한국에 알릴 터이니 조심하시라는 취지로 말해 좌중이 크게 웃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회의는 캐나다변호사협회의 사무총장이자 전 IILACE 회장 존 호일스, 그리고 영국의 잉글랜드 및 웨일즈 변호사회 사무총장인 데스 허드슨과 마이클 브렛이 주제 발표를 맡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현재 및 미래의 법률시장과 변호사들에 미치는 영향, 우리 변호사들이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성공적으로 적응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다.

두 세션이 끝난 후 우리는 글레넬 마리나로 이동해 석양의 바다 위의 선상파티에 참석하기로 했다.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남아공에서 온 마카낫사 사무총장과 나란히 앉게 됐다. 짐바브웨 출신인 그녀는 자기 이름이 너무 기니, 그냥 ‘마카’라고만 불러달라고 했다. 정장 차림으로 나보다도 키가 커 보이는 젊은 흑인 여성변호사였다.

이번 연례 총회에 아프리카 여성변호사 몇 분이 더 있었는데 그중 말라위변호사협회의 폴라 캐타노 사무총장은 딸 하나를 키우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매력적인 싱글맘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오전 9시에 시작된 둘째날 회의는 1시간 동안 회원들에 대한 ‘연수교육’을 주제로 그 변화와 미래 및 개선방향 등에 관하여 논의하였다.

두번째 세션에서는 美 워싱턴주 변호사회의 폴라 리틀우드, 마이클 브렛, 알란 파인블릿트, 그리고 캐나다 마니토바주 변호사회의 사무총장 등이 변호사 윤리에 관해 발표했다.

폴라 리틀우드는 IILACE 관련 각종 회의 자료 정리 등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분이었다. 그녀는 나를 잰 마틴 IILACE 부회장, IILACE의 회장이자 아일랜드변호사협회의 사무총장인 켄 머피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게 한 뒤 사진 한 컷을 찍어 주었다.

둘째날 오후 세션의 하이라이트는 변호사단체의 운영을 위한 가장 적절한 실무는 무엇일까를 주제로 다루는 세션이었다. 존 호일스, 코드 브루그만 독일변호사협회의 사무총장, 폴 칼린 美 메릴랜드주 변호사회 사무총장 등이 토론했는데, 핵심은 ‘특정한 상품을 만들거나 수익을 창출하는 단체가 아닌 변호사 단체의 사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인가, 또 그 사무원들에 대한 동기부여와 보상은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였다.

둘째날 저녁행사는 남호주정부 케빈 스카스 지사 내외가 자신의 공관에 초청해 베푼 리셉션과 남호주 박물관에 딸린 레스토랑에서 가진 만찬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호주변호사협회의 회장인 알렉스 워드가 힘있고 위트 있는 만찬 연설로 좌중을 압도했다. 알렉스 회장 역시 타이페이와 서울에서 이미 만난 적이 있는 분이다.

만찬 자리에서 홍콩사무변호사(solicitor)협회 사무총장인 하이디 추와 홍콩법정변호사(barrister)협회의 사무총장인 도라 챈과 같은 테이블에서 만찬을 즐겼다. 특히 홍콩사무변호사협회와 대한변협은 지난달 로아시아 행사 때 양 단체간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활발한 교류를 약속했던 바, 양해각서에 따른 상호 방문을 내년 중에 반드시 결행하기로 다짐했다.

특히 그날은 코드 브루그만 사무총장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대륙법으로서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양국법 제도의 현실과 법률시장의 개방에 따른 독일의 과거와 현재 등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얘기 도중 나보다도 나이가 어린 그가 변호사가 되기 전 10년 가까이 내가 미국 연수 시절을 보냈던 필라델피아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우리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듯이 얘기 꽃을 피웠다.

마지막날 오전에는 회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정책에 관하여 논의하는 세션을 가졌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변호사회의 사무총장 마이클 티드볼, 하이디 추 사무총장, 나미비아변호사협회 이사인 리타 스타인맨 등이 토론에 참가해 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결국 회원들과 끊임없는 의사소통이 절실하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IILACE 행사는 또 다른 세션으로 22일 오전까지 계속되는 것이었으나, 나는 비행스케줄상 21일 오후에 시드니를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켄 머피 회장과 잰 마틴 부회장에게 작별을 고하고 내년도 10월에 개최될 홍콩 연례총회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3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돌아오는 길에 한국을 떠나면서 목표로 했던 주제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IILACE 연례회의는 대한변협이 처음 참가한 행사로 많은 정보를 접하긴 했으나, 아시아 국가로는 홍콩과 싱가포르만이 참가하고 있는 행사에 과연 계속 참가해야 되는지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행사 중에 잰 마틴 부회장이 내게 들려준 “아시아에서 한국이 리더가 될 수 있지 않느냐. 내년도 홍콩 연차 총회에 일본과 말레이시아 외에도 아시아의 다른 새로운 단체 2곳이 이미 참가하겠다는 확약을 하였다. 그러니 꼭 참석해 달라”는 말이 기억난다.

앞으로 1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 있으니, 그 동안 특히 다른 아시아국가 변호사 단체들과 행사 참여 문제에 대해 좀 더 진솔한 논의를 해 보자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 결론은 협회의 상임이사회에 그대로 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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