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영국 런던으로 일주일간 휴가를 다녀왔다. 영국으로 건너가서 호수가 펼쳐진 공원에 누워서 책도 읽고 맨발로 잔디밭을 걸어보기도 했다. 저녁에는 템즈강 바람을 만끽하기도 하고 뮤지컬을 보면서 환호성도 질렀다. 한국에 있으면서는 미처 해볼 생각을 못했던 것들을 영국에서는 원없이 하고 돌아왔다.
작년에 여행지를 영국으로 정한 것은 무작위로 선정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그 바탕에는 몇 년 전에 읽었던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라는 책 때문이었다. 내용이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여유로움과 자부심 같은 것이 어렴풋이 떠올라 영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영국에서 돌아온 뒤 쭉 영국에 대한 친밀감을 갖고 있던 차에 올 봄에는 우연히 영국의 한 교수가 펴냈다는 ‘세계행복지도’ 관련 기사를 보게 됐다. 그 행복지도에서 1위를 차지한 나라는 덴마크였다. 그래서 올 여름에는 덴마크로 휴가를 떠날 계획을 즉흥적으로 세워버렸다.
나름대로 ‘행복’이라는 테마를 세워놓고 여행을 다닌다고 합리화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행복’을 찾으러 다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그 중에는 법조라는 삭막한(?) 공간을 출입하는 영향도 있으리라 본다.
2년 전쯤 아직 법조를 출입하기 전이었는데, 헌법재판소에서 진행하는 헌법재판보도 연수를 들은 적이 있다. 법은 그저 생소하기만 하고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그때 헌법재판소에서 나눠준 자그마한 헌법 책에서 헌법을 마주하고는 꽤나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던 헌법 책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학창시절에 봤던 구절이었을 텐데 유난히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헌법에는 분명히 ‘행복’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심지어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돼 있다.
헌법 제10조를 본 뒤 우리나라 헌법의 ‘낭만성’에 감동했었다. 연수기간 3일 동안 들락거렸던 헌재 건물이 왠지 모르게 여유 있고 운치 있게 느껴졌던 것이 다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감동 받았던 헌법, 하지만 이후 법원과 검찰을 출입하면서 헌법책을 다시 열어볼 기회는 없었다.
어느 새 헌법의 낭만성(!)과 따스함은 잊어버린 채 무시무시한 형법의 칼을 들고 재단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법원에 있을 때 역시 추상 같은 법조문에 따라 원고와 피고, 피고인들을 바라봤을 뿐이었다.
언젠가 어느 분이 우리나라 헌법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좋은 헌법인데 하위법에서 그 좋은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과연 법관의 재량 속에 행복은 깃들여 있는 것인지, 검사의 불기소처분에도 행복은 함께 하는 것인지, 그리고 내가 쓰는 기사 속에도 행복은 들어있는 것인지.
법조 출입처 중에서 그나마 포근함과 따스함을 제법 느낄 수 있는 곳은 법무부인 것 같다. 공교롭게도 법무부의 슬로건은 ‘행복해지는 법’이다! 얼마 전 취재차 방문했던 범죄피해자지원을 위한 사회적 기업 ‘스마일 화원’에서도 행복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을 소개해준 센터 사무처장님은 피해자들에게 김치를 조금씩 돌렸는데 피해자들에게서 고맙다는 문자가 수십 통이나 왔다며 기뻐했다. 범죄로 불의의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센터 사람들을 보면 행복감이 전해진다.
범죄피해자 심리치료센터인 ‘스마일 센터’에서 제빵치료를 받는 할머니도 자기가 만든 반죽이 노란 빵이 돼 구워져 나온 것을 보고 마냥 즐거워했었다. 이 할머니는 범죄피해로 인해 가족을 잃고 한동안 웃음을 잃고 지냈었다. 그런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챙겨주는 게 진정한 법의 정신일텐데.
오늘도 검찰청에서는 누군가를 소환조사하고 압수수색을 나가고 법원에서는 판결이 계속될 것이다. 삭막하고 건조한 하위법을 다루는 곳이지만 최상위법의 정신인 ‘행복’을 녹여내는 건 어떨까. 지난 일요일 제헌절, 태극기도 못 달고 지나갔지만 헌법의 그 ‘행복함’을 되새겨 볼 겸 헌법책을 다시 꺼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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