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패를 당하고 당황하는 사람들 옆에서 사소한 것이라도 증거를 찾아 어떻게든 구제해 주는 게 진짜 변호사”

변호사가 받는 돈 안에는 어떤 비용이 들어있을까? 치열하게 공부했던 젊은 날에 대한 보상과 노동의 대가가 들어있을 것이다. 김경철 변호사는 그 안에 다른 원가를 집어넣고 있다. 의뢰인으로부터 행패를 당하는 값. 판사들에게 욕을 먹거나 소송의 상대방 측으로부터 모멸감을 느낀 데 대한 위자료도 들어있다고 한다. 그러니 더러 곤혹을 당해도 푸시킨의 시처럼 슬퍼하거나 화내지 말라는 것이다. 우연히 그 말을 전해 듣고는 ‘아 그렇구나’하고 깨달은 적이 있었다.

김경철 변호사는 현대판 은자다. 삶이 호수같이 조용하다. 남과 별로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다. 어느 겨울 점심 무렵 음식점 구석에서 뚝배기에 담긴 설렁탕을 혼자 먹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는 초당 같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30여 년의 세월을 변호사의 길만을 걸어왔다. 겉모습과는 달리 그는 법조타운 안의 재력가로 통한다. 은행에서 그의 예금고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그가 돈을 빼버리면 지점운영이 휘청거릴 정도라는 얘기가 돌았다. 그의 사무실에는 끊임없이 사건이 많다고 한다.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 삼십 년이 넘어도 그의 사무실에 사건이 마르는 날이 없다. 잠시 반짝하는 전관변호사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뭔가 깊은 속에서 나오는 진액같은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검사직무대리를 할 때니까 거의 30년 전이다. 지도검사와 나는 그와 중국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의 접대인 셈이다. 음식이 남았다. 그는 남은 것들을 포장해서 가지고 갔다. 당시 그는 연수생이었던 내게 아까운 음식을 체면 때문에 놔두고 가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무섭도록 실용적이다. 판사들은 뒤에서 그를 칭찬했다. 다른 변호사들은 뜻대로 사건이 안 되면 불평을 하거나 얼굴에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 역력히 드러나는데, 그는 잘못 돼도 표정한번 찡그리지 않고 오히려 찾아와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프로 변호사가 틀림없었다. 그 많은 사건을 하면서도 그의 사무실에서는 의뢰인과의 싸움하는 소리가 난 적이 없다고 한다.
태양이 바늘 끝 같이 따가운 2011년 7월 1일 오전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변호사로 득도한 과정이 궁금했다.
“나는 아무것도 말해 줄 게 없어요. 별다른 삶의 모색도 해보지 않고 능력도 실력도 없어요.”
인사치레나 위선적인 겸손이 아니었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 못하듯 그는 자신의 소박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무작정 그를 찾아갔다. 그는 혼자서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등 뒤의 큰 벽을 채운 격자 모양의 서류 칸마다 누런 기록봉투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소파에 그와 마주 앉았다. 그는 ‘도대체 내가 뭘 말해 줄 수 있는걸까?’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야 말로 내용이 풍부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란 직업은 인생에서 어떤 거였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이미 6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나이였다. 평생 한 일에 대해 얼마쯤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때도 됐다.
“변호사 자격은 나한테는 좋았던 게 틀림없어요. 변론을 한다는 게 그 자체로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낭패를 당하고 당황하는 사람들 옆에서 사소한 것이라도 증거를 어떻게든 찾아서 구제해 주는 거지. 나는 변호사라는 일 자체가 좋아요.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니까 사건이 점점 줄어드는 거야. 그러다 얼마 전에 오랜만에 형사사건을 맡았죠. 법정에 가서 변론을 하는 순간 ‘내가 변호사구나’ 하는 기쁨이 다시 오더라고요. 지금 내 나이에 누가 형사변론을 해? 다들 손을 놓고 있지.”
“그 많은 사건들을 어떻게 해오셨어요?”
내가 물었다. 젊은 변호사를 고용해 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죠. 토요일이고 일요일이고 밤늦게까지 일에 파묻혔어요. 내일은 무슨 준비서면을 써야 하고 모레는 어떤 변론요지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계획서를 만들어 놓고 한 줄 한 줄 숙제를 하듯 지워가는 게 재미있었죠. 소송 상대방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이쪽이 철저히 준비서면을 쓰는 거죠. 같은 변호사라도 상대방 변호사의 잘 쓴 서면들을 보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거든. 내가 다 직접해요.”

“일 말고 다른 취미는 없으세요?”
내가 물었다.
“골프를 조금 해 봤는데 재미가 없더라구요. 시간도 아깝고. 특별히 즐기는 게 없어요. 요즈음은 손자를 데리고 노는 게 좋아요. 이 녀석이 팽이를 좋아해서 내가 사준 게 두 박스쯤 되나? 하여튼 난 이 변호사 일이 취미이기도 해. 좋아요.”
그는 양손으로 팽이줄을 잡아 당기는 흉내를 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정말 변호사일이 좋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의뢰인들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닌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쓰러지는 변호사도 있었다.

“제 경우는 의뢰인의 탐욕이나 집착 때문에 힘든 경우도 많았고 그들로부터 받은 괴로움이 상처가 되기도 했는데 선배님의 경우는 어땠어요?”
내가 물었다. 그라고 다를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맞아요. 송사를 벌이는 사람치고 좋은 사람은 사실 드물었던 것 같아요. 원고 중에는 그냥 참고 넘어가도 될 걸 굳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이 봤고 피고도 대부분은 돈 떼먹고 버티는 사람들 아니겠어요? 다들 선량한 사람들이 아니죠. 요즘 보면 무식하고 돈만 많은 놈들은 변호사보고 ‘이것도 못해? 빨리 오라고 해’ 하면서 머슴 부리듯 명령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죠. 이런 때 우리는 고도의 법률지식으로 무장해서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해요. 법률을 쉽게 설명해서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시켜야 합니다. 이론이 왔다갔다해도 안 돼요. 그래야 상대방에게 짓밟히지 않습니다. 건방을 떨던 사람들도 ‘아 역시 전문가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죠.”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얼굴에 뭔가 떠오르는 표정이 돌았다. 잠시 후 계속했다.
“참 내 얘기를 하나 하죠. 사기범을 변호했는데 집행유예를 받기 위해서는 도중에 합의가 필요했어요. 돈이 없다고 해서 내가 우선 돈을 꿔줬죠. 석방이 되고 나를 찾아왔는데 공소장하고 판결문을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이 ‘변호사님 공소장의 범죄사실하고 판결문의 범죄사실이 같은데 도대체 무슨 변론을 해 준 겁니까? 바뀐 게 없잖아요?’하더라구요. 변호사 선임비는 물론이고 내가 꿔 준 합의금까지 안 주려고 하는 짓이지. 그래서 잘먹고 잘 살아라 하고 보낸 적이 있어요.”
그는 원한을 강물에 흘려보내는 대범한 성격이 틀림없었다. 그래야 변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같이 바위에 새기는 소인배 하고는 달랐다. 그가 계속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의뢰인 중에 똑똑한 체 하고 수시로 따지고 묻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들 사건은 잘 안 돼요. 변호사가 에너지를 사건 자체에 쏟아야 하는데 당사자에게 뺏겨서 그런 것 같아요. 애정이 식으면 일이 안되는 거예요. 하여튼 약정서에 특약사항을 분명히 해 놔야 돼요. 그래야 말이 없어. 믿는 사이가 더 당하기 쉬워.”
변호사의 노하우를 그는 풀어놓고 있었다. 세상은 변호사들을 욕하지만 정작 법률사무소를 찾아온 탐욕스런 인물들이 더 비난받아야 했다. 그건 그들의 내면을 본 변호사들만이 알 수 있다.
화제를 돌려 그의 솔직한 개인사를 들어보고 싶었다. “왜 변호사가 되고 그렇게 악착같이 일을 하셨어요?”
그는 판사를 일찌감치 그만두었다.
“어려서부터 형편이 어려운 집 아들이었어요. 주변도 가난하고. 그게 변호사가 된 동기라고 할까? 지방에서 단독판사를 할 땐데 저녁 6시가 됐는데도 아직 50건이 남아있는 거예요. 방청석에는 당사자들이 꽉 차 있고 그래서 내가 기일을 연기신청하시면 그렇게 해 드리겠다고 하는데 한 사람도 손을 들어 다음에 하자는 사람이 없었어요. 밤11시까지 재판을 하고 쉬지 않고 판결문 100건을 쓰기도 했죠. 판사만큼 일을 하면 변호사로 잘 살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그래서 변호사를 개업한 면도 있어요. 그런데 막상 해 보니까 변호사는 더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이더라구요. 따지고 보면 의뢰인들이 돈을 주고 산 사람인데 그게 맞죠.”
“그렇게 힘들게 번 돈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돈은 다른 변호사보다 많이 번 셈인데 재테크를 할 능력이 없으니까 불리지는 못했어요. 나도 가난한 집 출신인데 형제들 집 한 채씩 해 줬어요. 그리고 죽을 때까지 나 자신이 밥 걱정 안할 정도죠.”
“개인적으로 돈을 얼마나 씁니까?”
“글쎄요, 돈은 담배값하고 기름값 이외에는 들 게 없어요. 내 허리도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으니까 새로 양복을 살 필요도 없었구요. 오래 전에 산 게 섬유가 헤져도 입을 때까지는 입고 살아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내시고 싶습니까?”
내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사회에서 감투를 쓴 적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었어요. 나는 이 변호사 일이 재미있어요. 내가 변호사를 할 수 있는 때까지 할 거예요. 육체적으로는 기억력이나 조직적인 사고능력이 있을 때까지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한 이 일을 하는거죠. 그렇지만 이제 많이는 안 남았다고 생각해요. 이러다 병들면 일을 그만둬야죠. 나이 상으로 죽음도 가까워졌죠. 그것도 거부하지 말고 담담히 받아들여야겠죠.”
그는 죽음까지도 남의 얘기같이 담담히 언급했다. 이미 그는 법전에 없는 법을 보고 인간의 영혼을 건드리는 예술같은 변론의 경지에 올랐을 것 같았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