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자식 간에 공통된 관심사 중의 하나가 ‘유산(遺産)’이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되도록 많이 잘(?)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고 자식들은 이왕이면 부모로부터 많이 받기를 기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 역시 언제 죽을지 단 1분 후의 미래도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면서 내 자식에게 무엇을, 어떻게 남겨주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왕이면 가장 ‘위대한 유산’을 남겨주고 싶다. 그것이 만약 ‘재물’이라면 어떻게든 안 죽고 오래 살면서 재산을 모으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위대한 유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서, 재물에 별 집착 없고 오래 살고 싶은 마음만 있는 나 같은 부모들도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부모가 죽어야만 물려받게 되는 재물보다는 부모가 죽기도 전에 미리 물려받을 수 있는 유산. 그리고 부모가 평생을 걸쳐 얼마나 대단한 재산을 물려주었는지를 부모가 죽은 후에 또는 자식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 중에 깨닫게 만드는 유산이야말로 진정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위대한 유산이다. 그것은 바로 부모가 가진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전수해주는 것이다.
이 위대한 유산을 ‘교육’이라는 단어로 정의하고 싶지 않다. 우리사회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제공하는 교육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더 강하다. 누가 더 빨리 한글을 읽고 영어를 말 할 줄 아느냐와 같이 열등감과 자기불안에 사로잡힌 부모들의 유치한 속도 전쟁에 빠져서,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영유아기의 아이와 풍부한 스킨십, 애정표현, 안정된 정서 교류와 산뜻한 대화의 즐거움을 뒷전으로 흘려보내고, 지식 습득, 영재 교육, 조기 유학, 대학 진학과 자격증 획득에 전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것이 ‘교육’이라고 한다면, 이는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위대한 유산과는 다른 개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유태인식 교육법으로 대표적인 것에 ‘대화법’이 있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유태인들은 자식의 내면과 성향, 재능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섬세한 보살핌은 부족하지만 하루 중 일정 시간을 반드시 자식과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보내는 것을 철칙으로 삼는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로 하는 말은 ‘~하라, ~하지마라’ 가 아니라, ‘왜’로 시작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너와는 다른 생각과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등등.
아이로 하여금 ‘사고’를 통해 입력과 출력을 반복하고 이것을 습관화하도록 하면 아이의 내면과 사고의 폭이 깊어지고 이렇게 형성된 탄탄한 사고와 습관을 가진 아이는 어떤 문제에 부닥쳐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말로 사람을 다룰 줄 아는 기술을 갖게 된다. 물론 한창 바쁠 30대, 40대 직장인부모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평생 수십억, 수백억을 벌어서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유산을 물려주는 일이 쉬울 리는 없다.
스승과 제자처럼 말과 말을 주고받고 서로가 가진 사고의 오류를 짚어가며, 삶이 무엇인지, 삶이 어떠해야하는지, 인생에 필요한 처세술, 세상이 얼마나 넓고 높은지를 논하면서 제자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하고 같이 늙어가는 것이야말로 오직 부모만이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위대한 유산이고 가장 높은 수준의 도제식 교육이다.

행복하게도, 변호사는 도제식 교육 방식으로 제자에게 많은 것을 전수하기에 특히 적합한 직업군이다.
변호사는 어떤 현상의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의문점과 문제점을 찾아내고 변별(辨別)과 판단을 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수단을 모색하고, 본능적으로 공격과 방어를 신속, 정확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어딜 가나 일을 책임지거나 주도해야 하는 위치에 있을 때가 많고, 수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 타협과 전쟁을 반복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의사, 교수 등과 같은 직업인들에 비해서 더 크고 다양하고 리얼한 세계, 인간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 승리하는 기술, 일을 구상하고 처리하고 끝을 맺는 전 과정에 있어서 필요한 내공과 외면을 갖추는 법 등을 제자에게 법정에서의 변론과 같은 흔히 볼 수 없는 말솜씨로 아주 잘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이다.
정 힘들면 자식을 의뢰인이라고 생각하거나 노년 대비 보험, 또는 수십 억을 벌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즐겁다. 다만 시종일관 이런 마음 자세라면 눈치 9단의 어린 제자가 스승의 권위에 의문을 품고, 예상치 못한 깜찍한 말로 반격해오는 수가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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