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양동이로 퍼붓듯이 쏟아지던 7월 초순이었다. 나는 영등포구치소에서 특수 강도범과 만나고 있었다. 그는 이미 같은 류의 전과가 많은 선수급이었다. 살인범이나 강도들을 많이 만나왔다. 그럴 때마다 예상이 틀리는 점은 상상 속의 험한 인상과 현실의 얼굴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역시 학교 선생님 같은 선량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나는 인생막장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많이 맡아왔다. 변호사들이 사건이 없다고 해도 그런 건 넘쳤다. 다만 나름대로의 사건을 받는 기준이 생겼다. 고교동창인 변호사한테서 좋은 사람과 나쁜 놈을 구별하는 재미있는 감별법을 배웠다. 말 중에 단 한마디라도 피해자에 대한 언급이 있으면 그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변호사님은 어떤 기준으로 사건을 맡으십니까?”
특수강도가 내게 물었다. 일단 대화해 보고 사건을 맡을 것인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변호만 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지 오래됐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가난을 각오하고 한 나의 결심이었다.
“사람냄새가 나느냐 하는 거죠.”
내가 대답했다. 고개를 갸웃하는 그에게 설명했다.
“감옥 안에서 배고파 하는 이웃에게 굳어버린 빵조각 하나라도 쑥 입에 물리고 가는 인간들이 더러 있잖아요? 그런 숨은 향기가 있다면 흉악범이라도 상관없어요. 당신은 어떤 향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 합니까?”
내가 물었다. 비로소 그가 뭔가 알 듯한 표정을 지었다. 향기는 말로 표현되어 지는 게 아니었다. 그의 말을 요구한 게 아니다.
“범죄사실에 대해서 얘기해 볼래요?”
내가 다시 물었다. 그의 입에서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이라도 나오나를 감별하기 위한 것이다.
“부암동 부잣집에 강도하러 들어갔어요. 안방에 부부가 있었는데 그걸 제압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순간 나는 그의 ‘제압’이라는 용어가 가슴에 걸렸다.
“제압이라니요? 강도가 무슨 국가를 지키는 일이라도 됩니까? 상대방을 제압하다니? 상대방이 악일 때 제압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내가 말했다. 그는 아무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 분들 죽었죠?”
내가 직감적으로 물었다.
“저희가 죽인 건 아니고 몇 달 후에 그렇게 됐습니다.”
나는 그로부터 피해자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한조각도 얻을 수 없었다. 오히려 부자들 가진 걸 좀 나누어 쓰자는 데 어떠냐는 의식이었다. 범죄라는 병균에 감염된 오염된 영혼 같았다.
그는 나에게 정상적인 변호비를 내겠다면서 법정에 서서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애정이 없으면서 돈 때문에 법정에 가면을 쓰고 선다면 당신의 행위와 비슷할 거라고 했다. 그의 단단한 껍질 안쪽의 부드러운 부분을 찾고 싶었다. 어떤 범죄인이라도 바이올린 현보다 더 가냘픈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물었다. “어떤 게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하세요?”
“저한테 일곱 살짜리와 다섯 살짜리 아들이 있어요. 저번에 면회를 왔는데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면서 자랑하더라구요. 예쁜 아들을 만지고 안아줄 수 없는 내 신세가 슬펐어요. 이런 인생도 지긋지긋하고 저주스럽습니다.”
이미 그는 스스로 답을 찾은 사람이었다. 솔로몬은 땀 흘려 번 돈으로 가족들과 저녁에 모여 등불 아래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게 최고의 행복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돈을 받고 그만큼 해 줄 말이나 글이 없었다. 그래서 사양했다. 그와 얘기를 끝내고 구치소 밖으로 나오니 해가 반짝 떠 있었다. 촉촉한 아스팔트길을 공치고 돌아가는 길, 그것도 또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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