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땡볕더위가 교차반복되는 이즈음, 식욕이 없다. 왕년에 시도 때도 없이 밀어닥쳤던 허기가 새삼 그리워지는 이때, 이런 메시지라도 받는다면 어떨까. “가마솥에서 개 한 마리가 팔팔 끓고 있네. 텃밭에는 고추와 깻잎, 감자와 고구마, 게다가 부추, 질경이, 민들레 등속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물웅덩이에는 개구리 천지야. 튀김용 기름도 준비 중임. 어딘지 알지? 총알같이 달려올 것.” 혹 이런 메시지는? “기가 막힌 잔치국수집 알아냈음. 대멸치와 뒤포리를 푹 삶은 육수에 탄력있는 면발, 그리고 다양한 고명이 일품임. 페이스북에 위치 링크해놓았음. 기다리고 있겠음.” 상상만 해도 침이 돌고 엉덩이가 들썩거리지만, 아쉽게도 이런 즐거운 메시지가 나에게 올 리는 없다. 아주 가끔 격이 떨어지는 비슷한 메시지가 온 적은 있지만.
지금처럼 식욕이 없을 때, 그리고 진수성찬과 산해진미가 역겨워질 때면 나에게는 섬광처럼 떠오르는 먹거리가 있다. 그것을 먹기 위해서라면 위치검색과 예약과 두툼한 지갑이 필요 없다. 그저 길거리를 헛헛하게 지나다니다 보면 문득문득 눈에 띄는 곳에서 그 먹거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대로변에도 있고 뒷골목에도 있다. 편의점에도 있고 포장마차에도 있고 허름한 음식점에도 있고 호프집에도 있고 그럴듯한 인테리어를 갖춘 고급 이자카야집에도 있다. 바로 오뎅이다.
오뎅은 일본말이고 어묵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제는 오뎅 자체가 우리말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굳이 구분하자면 ‘어묵’은 생선의 살을 뼈째 으깨어 소금, 칡가루, 조미료 등을 넣고 익혀서 응고시킨 것을 말하고, ‘오뎅’은 어묵, 유부, 무, 곤약 등을 꼬챙이에 꿰어 장국에 익힌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묵은 오뎅을 만드는 재료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에서 유래한 오뎅을 대신하는 말로 꼬치 혹은 꼬치안주가 제시되기도 하지만, 내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절대 그것이 오뎅의 어감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난 어묵도 꼬치도 아닌, 오뎅이다.
오뎅은 가난했던 내 청춘의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바둑 두고 당구 치고 마이티 치다가 돈 잃고 슬프고 배고파 주머니를 뒤져보니 버스회수권 1장과 오뎅 한 꼬치 사먹을 동전만 남아 있는 것을 알았을 때, 문득 고개 들고 바라보면 바로 옆에는 운명처럼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휘장을 들쳐 올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일순 풍기는 구수한 냄새. 오뎅을 입에 물고 씹을 때 혀의 오미, 즉 달고 짜고 시고 쓰고 매운 맛을 한꺼번에 자극하는 그 풍요로운 미각. 무엇보다 허기진 배를 맘껏 채울 수 있는 무한리필의 오뎅국물. 그러다가 버스 막차시간이 다가온 것을 깨닫고 황급히 포장마차를 나설 때의 주저함과 안타까움.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그 시절의 소박한 행복이 이제는 부럽기만 하다.
또한 오뎅은 한때 스쳐 지나갔던 사랑의 아쉬웠던 회한 같은 것을 떠오르게도 한다. 동료들과 복사본 불온서적을 돌려 읽으며 시대의 아픔을 치기어린 마음으로 나누던 유신시절, 연애도 사치라고 여겨졌던 암울했던 긴급조치의 시절, 막걸리엔 짬뽕국물, 소주엔 오뎅 한 조각이 최고의 안주였던 그 시절이라고 젊음 하나로 버텼던 나에게 청춘의 낭만이 없었을까.
그러나 그 막바지에, 칸델라등으로 불을 밝힌 포장마차 안에서 군입대를 앞둔 남자와 그의 연인은 소줏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것이 대세였던 당시이기 때문에, 우리는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다는 예감 한조각씩을 마음 속에 감추고 있었다. 호기롭게 닭똥집, 꼼장어, 메추리구이 등을 안주로 시켜먹어도, 역시 마지막 입가심 안주는 오뎅이었다. 술기운에 쓰리고 망가진 속을 달래는 데는 제격이었다. 오뎅 한 점 입에 물고는, 잘 가 몸조심하고, 그래 편지 할 거지, 뭐 이런 정도의 이야기로 그날을 쿨하게 마무리했던가. 앞날에 대한 전망이 보이지 않아 아무런 기약도 하지 못한 채 우리는 헤어졌던가. 확실한 마무리 없이 흐지부지 끝난 철부지 사랑의 풀죽은 뒷모습이 오뎅국물같이 달콤쌉쌀하게 추억된다.
나이 들어서도 오뎅을 밝히는 내 모습을 보고 아내는 주책이라고 한다. 오뎅국물 또한 조미료로 맛을 낸 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러면 나는 강변한다. 요즈음 오뎅국물은 가쓰오부시 육수에 무, 다시마, 북어머리, 양파, 파뿌리, 고추 등을 넣고 푹 끓인 뒤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 건강식품이라고. 물론 확신 없이 하는 소리다. 그리고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오뎅에는 당신이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이 있다고.
오늘처럼 글쓰느라 야근하는 날이면, 귀가길에 편의점에 들러 인스턴트 오뎅이라도 사가지고 집에 가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야지 하는 생각에 입안 가득 단 맛이 돈다. 세월이 가도 변함없이 그리워지고 정이 깊어지는 것은 부부 사이 같다고나 할까. 어쨌든 난 이래서 오뎅이 좋다. 가끔씩은 아주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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