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변호사의 우수성 알리고 아시아인 동지애 다져

타이페이에서의 사흘 밤

대만(타이완)의 수도 타이페이에서 지난 6월 13일부터 사흘 밤을 보냈다. 그 사흘 밤은 제22차 아시아변호사단체 회장단(POLA, Presidents of Law Associations in Asia) 회의를 위한 것이었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대한변협의 신영무 협회장, 최정환 국제이사, 정영숙 국제과장 그리고 필자가 함께했다.

지금껏 회사에서 업무차 아시아 여러 국가를 두루 돌아다녀 본 적은 있으나 대만은 처음이었다. 첫날인 13일. 호텔 1층 한 켠에 마련된 파티 룸에서 등록과 함께 저녁 6시부터 대만 변호사협회 주최 리셉션 행사가 시작됐다.

그간 선배들의 지난한 노력으로 대한변협이 아시아 변호사단체의 맹주로 부상하고 있는 도중에 바통을 이어 받은 게 필자였다. ‘대한변협을 아시아의 맹주로!’라는 과제의 실현을 위해서 내가 당장할 수 있는 일은 각국의 리더를 만나 한국 변호사의 국제적 감각과 정신세계를 잘 알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줄곧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간 업무차 비즈니스 주체들이 주최하는 해외 콘퍼런스에는 정기적으로 참석해 왔지만, 변호사단체가 주도하는 행사와는 인연이 별로 없었다. 자, 이제 한국을 알리자. 우리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경쟁관계에 있는 대만이라는 나라의 수도에서 아시아 여러나라의 변호사들에게 한국의 변호사와 단체를 각인시키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우선 리셉션 행사를 최대한 활용하자. 행사 시작 30분 전, 나는 일찌감치 대만 자원봉사자 대학생들의 안내를 받아 행사장에 입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최 측인 대만 관계자 20여 명이 이미 행사장을 메우고 있었다. 대만변호사협회 회장 로펑윈 부부와 딸이 나를 뜨겁게 반겨 주었다. 아내, 그리고 딸까지 동원한 열의가 한눈에 들어왔다.

로 회장을 중심으로 에디 리 사무총장, 치셩 우 사무차장, 유에린 리 사무국장, 친양 린 등 수명의 이사들이 환대해 주었고, 닥마 마이뉴 유 타이페이 지방회장, 크리스톱 H. C. 장 키룽지방 변호사회 회장 등 지방회 회장들도 다수 참석해 있었다.

한국의 법률시장 현황과 미래에 대해 그들과 한참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인사를 건넨다. 돌아보니, 작년 11월 로아시아(Lawasia)가 주최한 2010년 뉴델리 콘퍼런스에서 만났던 인도변호사협회의 사무총장 야케시 아난드였다. 자그마한 체구에 검은테 안경을 두른 이지적인 인물, 뉴델리 갈라 파티의 밤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던 따뜻한 사람이다. 뉴델리에서 쌓아놓았던 정을 여기 타이페이에서 다시 나누니 우린 이미 오랜 친구였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밤, 로아시아 차기회장으로 선출된 말라디 다스, 로아시아의 영원한 사무총장 재닛 너빌과 함께 올 10월에 한국의 서울에서 개최될 로아시아 콘퍼런스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했다. 첫날 밤의 하이라이트는, 신영무 협회장의 기지가 발휘된 긴급 미팅이었다.

2시간의 리셉션 행사가 끝날 무렵 신 협회장이 싱가포르의 멩멩 웡 회장, 마이클 황 전(前) 회장, 메리 림 사무국장, 로아시아의 말라디와 재닛, 인도의 야케시, 국제변호사협회의 아키라 가와무라 회장, 페르난도 펠라에즈-피에르 전(前) 회장 등과의 즉석 미팅을 제안했고 성사됐다.

한국의 위상을 실감하는 자리였다. 또 신 협회장 특유의 제스처와 유창한 영어에 더하여 세월을 뛰어 넘는 귀여운(?) 표정으로 쟁쟁한 인사들을 모아놓고는 와인과 함께 POLA의 발전과 한국에서 오는 10월 열리게 될 로아시아 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다짐하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튿날인 6월 14일, 이제는 본격적인 콘퍼런스 세션에 돌입하는 날이다. 호텔 3층 콘퍼런스 룸에서, 1시간 30분 동안 법치주의를 주제로 한 첫 세션을 가졌다. 콘퍼런스 룸의 배치는 단상을 향해 두 개의 ㄷ(디귿)자를 그리는 형태의 자리 배열을 택했다. 즉 가운데에 위치한 ㄷ자 테이블은 각국의 회장들이 차지하고 그 ㄷ자를 에워싸는 큰 ㄷ자 테이블은 나머지 인사들이 차지하는 배열이었다. 말하자면 POLA 회의는 각국의 회장이 주체가 되어 토론을 벌이는 회의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첫 주제와 관련해 각 나라에서의 기본적 법치주의의 흠결, 정치적 상황과의 비교 등을 주로 논의했는데, 특히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콘퍼런스에 전달된 애니 램버그 IBA 사무총장의 리포트에서는 버마에서의 인권침해와 관련해 IBA가 금년도 7월까지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는 브리핑이 눈에 띄었다.
 

이윽고 첫번째 세션을 마치고 호주의 차기회장 캐서린과 사무차장 마저리, 사무총장 윌리엄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마저리는 40개국 변호사단체가 참가하는 변호사단체 사무국 최고 책임자 기구(IILACE)가 지난 1999년에 결성되어 연례적 미팅을 갖고 있으며, 올해에는 10월 18일부터 23일까지 호주 캔버라에서 법률시장의 개방화에 맞춘 효율적인 변호사 사무실의 운영, 변호사 단체의 회원 관리 및 징계에 관한 환경 변화 등을 주제로 하는 콘퍼런스를 개최키로 했다는 것이다.

POLA 등 변호사단체의 회장들을 주축으로 하는 기구 외에도 이처럼 사무국 최고 책임자들이 따로이 정기적으로 만나 왔으며 그러한 행사가 12년 전부터 라틴아메리카를 제외한 전 대륙에 걸쳐 40개국의 단체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니 너무나 놀라왔다. 우리는 그런 모임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는데!
우리도 서둘러 그들과의 교류를 시작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엄습해 왔다.

콘퍼런스 룸에 있던 일본의 유치 카이도 사무총장, 말레이시아의 토니 운여우 쏭 사무총장과 라전 데바라 사무국장을 찾아 갔다. 우리도 IILACE 에 참가해야 하고 당장에라도 아시아간 모임을 추진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더니 모두 적극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여 주었다. 뿌듯했다.

둘째날 만찬은 콘퍼런스 룸에서 개최되었는데, 내가 앉은 테이블엔 필리핀 대표들뿐이었다. 그 중 나와 형제로 부르자며 가까워진 두 사람이 아마도르 토렌티노 주니어와 호세 카브레라다. 아마도르는 남루존 지역을 대표한 필리핀협회의 장(長)이고, 호세는 비콜란디어 지역 장이었다. 여흥으로는 대만 변호사들로 구성된 연주단의 연주, 대만 전통무용 등을 즐겼으며 와인과 함께 우리는 둘째날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6월 15일 수요일 아침에는 각국의 회장들이 8시부터 조찬 미팅을 가졌고, 그 자리에서 내년도 콘퍼런스를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어 1시간 30분 동안, 세번째 세션 ‘Access to Justice’에 대해, 일본, 홍콩, 인도, 호주 등에서의 법률구조, 무료법률상담의 실태 및 변호사단체의 노력과 향후 대책 등에 관해 토론했다. 이어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한국과 일본 대표들은 오는 9월 23일부터 25일까지 개최될 한일 단체간 정기교류회의 준비를 위해 서로 주제를 선정하고 조정하는 등의 회의를 가졌다.

오후 넷째 세션 주제는 아시아 변호사들의 다국적 업무와 관련된 것이었다. 첫번째 연사로 신영무 협회장께서, 일목 요연하게 정리된 자료를 스크린으로 보여 주며, 외국법자문사법의 규율 현황과 더불어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외국법자문사와 사무소가 가져야 할 윤리, 그들에 대한 규율 등을 장단기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하며 나아가 아시아 법률시장의 통합으로의 지향 등에 관해 열변을 토하셨다.

옆에 앉아 있던 캐서린은 연신 “훌륭한 발표에다 유익한 정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홍콩의 전 회장인 후엔 웡은 호주의 로펌 한 곳이 최근 상장되었다는 점, 영국의 산업자본이 지배하는 로펌이 오는 10월경에 첫 오픈할 예정이라는 점, 이러한 변화된 환경에서 홍콩 역시 solicitor(사무 변호사) 자격을 갖지 않은 자와도 함께 파트너십을 갖는 법률사무소의 개설이 필요하며 이러한 변화는 One-Stop Shop을 지향하는 것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인도의 아닐 디반 회장은 95만 명에 이르는 변호사로 구성된 인도 법률시장이 아직까지도 외국로펌의 법률사무소 개소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불가피성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이틀간의 토론은 이렇게 마무리가 됐고, 참가자들은 모두 타이페이의 대표 건축물 101 빌딩의 정상에서 타이페이의 멋진 도시 풍광을 만끽한 후 85층에 마련된 연회장에서 클로징 파티를 가졌다. 최정환 이사의 멋들어진 율동과 목소리에 타이페이의 젊은 변호사들과 학생들이 열광하였고, 아마도르와 호세의 구수한 노랫가락은 좌중을 압도했다.

우리의 타이페이에서의 사흘 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공식적인 파티를 마치고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대표들, 그리고 전 IBA 회장 페르난도는 인근의 Brown Sugar 라는 바에 들러 우의를 다지는 시간을 더 가졌다.

한국 변호사들도 해외법률시장으로 눈 돌려야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대만국립대학의 법률대학원 학생으로 있으면서 금번 POLA 회의에 자원봉사를 했던 야은청이 클로징 파티에서 찍은 나와의 사진을 동봉한 이메일을 보내왔다. 이제 한국의 변호사들은 그 뛰어난 기질과 능력으로 해외의 다른 법률시장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는 한국의 기업들이 해외로 뻗어 나가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필리핀의 아마도르는 나와 헤어지면서 이런 말을 했다. "필리핀에 한국 기업은 물밀듯이 밀려오는데 한국 변호사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 변호사들의 능력은 익히 들어 알고 있으나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렇다. 한국의 변호사들이 아시아의 맹주가 될 날이 멀지 않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대한변호사협회의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현재 협회는 싱가포르를 뛰어 넘는 아시아에서의 중재 시장의 허브를 창출하기 위해 서울에 중재센터 개설을 목표로 서울시와 협약 체결을 준비 중이다. 오는 10월 로아시아 서울총회에서는 더욱발전된 한국의 기질을 꼭 보여줘야겠다. 대한민국의 변호사님들 다함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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