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만화로 소개하는 책 꾸준히 내고파”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하는 것들이 유행하면서 인맥쌓기, 새로운 친구 사귀기가 대 유행이다. 그런 유행을 보면서 든 생각은 오래 알아온, 식구 같은 친구에게나 잘하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변협신문이 만난 사람은 변협신문의 스타이자 식구, 변협신문 2면 하단을 지켜주는 ‘변호사25시’의 작가 이영욱 변호사(사법시험 44회)다. 많은 분들을 소개하고 인터뷰하면서 정작 식구 소개가 늦었다. 전적으로 편집진의 불찰이다.

반갑습니다. 진작에 만났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변협신문에 만화를 그리신지 벌써 4년째인데요.

제 성격이 워낙 내성적이고 소심해서였죠. 자신을 드러내게 되어 있는 만화를 그리면서도 내가 드러나는 점이 가장 신경이 쓰여요. 처음에 만화를 시작한건 신림동 고시촌생활을 시작하면서였어요. 1999년에 법률저널이라고 고시생들이 보는 신문에 힘든 공부를 함께 하고 있는 우울한 청춘들을 위로하자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고시는 1년에 한 번 치는데 1주일에 한번 그린 만화로 워낙 반응이 빨리 빨리 오니까 제가 위로를 받았죠. 덕분에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고요. 변호사 2년 차일 때 당시 변협 공보이사이셨던 하창우 변호사님이 워낙 강권하셔서 변협신문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뭘 모르던 2년 차가 용기를 낸 거죠.

변협신문이라는 매체에 만화를 그리는 장단점이 있다면요.

음…단점은 협회지라 지나치게 조심하게 된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동료변호사들이 기분 나쁠 이야기는 자제하게 되고 의뢰인이 봤을 경우도 생각하게 됩니다. 차 떼고 포 떼고 소재를 골라야 하니 많이 힘들어요. 매번 마감에 쫓기다 미리 그려놓질 못하고 마감 날 아침에 스치는 생각을 기본으로 그려요. 아, 독자들이 너무 성의없다고 하면 어쩌죠? 예전에는 주중에 고민을 많이 하고 며칠씩 끙끙댔는데 그게 오래 생각한다고 좋은 게 나오지 않더라구요. 장점은 법조인들이 저를 친근하게 여긴다는 점이에요. 연예인을 보면 그들은 우릴 처음 보는데도 우린 그들을 친근하게 여기잖아요? 아무래도 제 만화를 오랫동안 봐 오셨으니 친근하게 느끼시는 것, 그게 강점인 것 같습니다. 판·검사들의 열독율이 높은 신문이라는 것도 장점입니다.

보통은 주제를 어디서 착안해 그리게 됩니까?

변호사들이 자신들이 못하는 말을 제가 만화로 대신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도 아는데, 그게 쉽지 않거든요. 저번에 변협신문 제298호(2010. 3. 1.일자)에 나갔던 ‘법정의 악마’있잖아요? 판사의 마음에 악마가 속살거려 어떤 얘기도 믿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이요, 그런 건 너무 신경이 쓰여 판사를 하고 있는 형에게 보여주며 괜찮은가 물어봤어요. 변호사 몸값 떨어진다는 내용도 동료들이나 선배들 기분이 걱정되구요. 주로 제가 법정에서 겪는 일, 사건수임하고 처리하는 제 경험에서 소재를 많이 찾구요, 변호사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게시판, 친구들과의 수다 같은데서 주로 소재를 얻어 그립니다. 요사이는 ‘연차에 따른 서면내는 시기’편이 가장 반응이 좋더군요. 제 만화에 대한 반응들을 보면서 ‘왜 좋아하지?, 사람들 좀 모르겠다’ 이런 생각해요.

형님은 글을 쓰고 이 변호사님은 만화를 그리고 해서 책까지 내셨잖아요? 공동작업이 힘들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형님은 미학과를 나오셔서 만화가로는 형님이 더 적합해 보이기도 하구요(판례해설 책의 글은 이영욱 변호사의 형인 이영창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썼다).

사실 만화는 형이 더 잘 그려요. 형이 그림을 좋아해 미학과를 갔고 저는 법학과를 갔는데요. 대학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형은 고시공부를 해 판사가 됐고 전 법조인에 별 생각이 없어 3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어요. 그러다 고시공부를 하고 만화도 그리게 됐어요. 만화로 판례를 풀어 쓰는 책은 제가 항상 해보고 싶었던 일이에요. 제가 만화로 이야기를 녹여내는 것에 굉장히 흥미를 가지고 있는데 같이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시장성이 없어 출판사도 구하기 힘들고. 고민고민 끝에 형에게 의논했더니 흔쾌히 응해줬어요. 형은 워낙 차분하고 꼼꼼해 같이 일하면서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고 판례를 만화로 소개하려니 판례를 숙지해야 해서 공부도 정말 많이 됐습니다. ‘만화로 배우는 민법판례 채권, 친족상속편’이 외에도 만화로 배우는 형법, 형사소송법, 민법(민총, 물권편)도 이미 나와 있어요.

그럼 기본법 편을 전부 만화로 판례소개하실 건가요?

네, 제 꿈은 기본법 편을 전부하고 난 다음 공정거래법 등 개별법들도 내고 일본, 러시아에도 번역해 수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형법 편부터는 출판사를 바꾸었고 각기 유명 교수님들과 공동 작업을 하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오영근 한양대 교수님과 작업한 형법은 2권에 나누어 나오는데 1권은 올 봄에 나올 겁니다.
이런 류의 책이 수지타산이 안 맞아 저번 민법판례해설이 나왔을 때는 서울중앙지법 기자실에 책을 싸들고 가서 부탁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법률서적 출판이 활발해지기 위해 책을 많이 사고 관심사도 좀 더 세분화 되면 좋겠어요. 일본 유학 중에 보니 일본은 정말 다종다기한 법학서적, 평석집, 법학관련 만화들이 있더군요. 배심재판과 관련해서만 만화가 서너종인 걸 보고 놀랐습니다. 검사, 변호사가 주인공인 만화도 꽤 인기가 있구요. 그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보니 제 책을 번역해 내도 괜찮을 것이라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하급심판례까지 평석이 나오는 문화가 부러웠습니다.

지난해 1년간 일본유학을 다녀오셨지요.

일본에 가있는 동안에도 변협신문 연재를 계속했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무래도 현업에서 떠나있다 보니 생생하지가 않았나 보더군요. 동기들이 요새가 훨씬 재밌다구, 유학중엔 밋밋했다더군요. 하하. 아무래도 실제로 고통을 당하고 법정에서 괴로워해 봐야 재밌는게 나오는 모양입니다. 변호사 커리어가 쌓여 가면서 이전과 다른 모습에 다른 생각을 하는게 스스로도 느껴집니다. 실감을 못하고 변해가기 마련인데 저는 만화가 증거로 남으니 알수가 있는거죠.

‘변호사25시’의 주인공들은 모델이 있는 건가요?

손 변호사는 제 친구인 손계룡 변호사가 모델이구요. 그 친구의 성격, 스타일을 많이 참고로 했습니다. 고 변호사와 대표변호사도 다 모델이 있는데 밝히긴 어렵구요. 대표변호사는 능청스럽고 돈을 밝히지만 미워할 수 없는 선배 변호사들의 모습입니다. 얼렁뚱땅이고 임기응변적이지만 내 모습이구나, 느끼게 하는 평범한 변호사들 모습이죠.

연재는 변협신문에만 하고 계신가요?

아뇨, 법률구조공단 소식지에도 그립니다. 2페이지 정도에 ‘구공단 변호사와 상의하세요’라는 제목인데 구조공단 상담사례 중에 재밌는 것을 보내오면 만화로 만듭니다. 2009년 대한변협 인권보고서에도 삽화를 그렸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만화로 녹이는 일에 저의 유용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권보고서처럼 의미있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도울 겁니다.

혹시 변호사 중에 만화가가 되겠다고, 배우고 싶어하는 분은 없나요?

제 만화를 보고 문자, 메시지, 전화하는 사람, 평가해주는 사람은 많은데 배우고 싶다는 사람은 없던데요. 만화처럼 피드백이 빠르면 성취감은 정말 커요. 마감 때문에 늘상 아슬아슬하지만 좋다는 말 들으면 힘이 나고 피곤하지가 않아요.

변호사들 중에 특이한 일을 하는 분임에는 틀림없겠습니다. 이렇게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하는 변호사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신다면요.

책을 보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돈도 된다고 하잖아요, 그거 맞는 말 같아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만화가 변호사 커리어의 허들, 그러니까 일종의 장애물이라고 여겼는데, 결국은 만화로 유명세를 얻었고 많은 도움을 받고 있으니 역설적이죠. 변호사 사회는 아직 전문화가 많이 되어 있지 않아요. 사건수임도 좋지만 좀 더 다양화 세분화한 영역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부정경쟁방지법에 관심도 많고 현재 박사과정 전공도 그것인데, 롤모델이 박성호 한양대 교수님이세요. 지적재산권이 전문분야이신데 개인변호사로서도 거대로펌에 절대 밀리지 않는 실력이시죠. 그렇게 자기 전문분야에서 인정받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영욱 변호사를 만나고 나오는 길에는 눈이 그쳐있었다. 비록 눈으로 덮여진 세상이지만 그 안에 뭐가 있는지를 보게 하는 눈, 법조계를 따뜻하지만 차갑게 볼 줄 아는 이영욱 변호사라는 눈을 가졌다는 생각을 하며 눈길을 조심조심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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