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나는 내년 10월에 개최될 예정인 로아시아 서울총회의 준비위원으로, 그 준비를 위해서 11월 11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제23회 로아시아 뉴델리총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번 회의에는 한국 측에서 백윤재 변호사, 대한변협 최정환 국제이사, 강 현 변호사가 각각 발표를 맡았고, 그 외에 문건식 변호사, 이지형 변호사, 정영숙 국제과장과 내가 참석하였다.

아시아나 항공기의 서울발 뉴델리행 직항노선이 화요일과 목요일에만 운항해 일행 중 발표자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은 9일(화)에 출발하였다. G-20 정상회의 개최가 임박해짐에 따라서 공항에서의 출국수속이 철저해졌으니 일찍 공항에 나가서 출국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연락이 있어서 일찌감치 인천공항에 나가 출국수속을 마쳤다.

우리를 태운 항공기는 약 8시간 만에 뉴델리공항에 도착하였다. 도착한 때는 현지시간으로 10일 밤 0시 50분경 이었고 뉴델리 시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공항청사 밖으로 나오니까, 비행기에서 내린 여행객들을 태워 가기 위해서 운전기사들이 안내판을 들고 빽빽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새까만 눈썹의 맑은 눈동자, 그것이 인도가 우리에게 안겨준 첫인상이었다. 차는 밤안개 속을 달려 우리를 숙소인 호텔까지 데려다 주었다.

문 변호사, 이 변호사, 정 과장과 나는 공식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주변 관광명소 등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10일 오전에 방문한 라지가트의 입구는 공원처럼 잘 꾸며져 있었는데 그곳은 마하트마 간디의 유해를 화장한 곳이다. 많은 사람의 방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후에는 올드델리의 명소인 랄 킬라(Red Fort)를 관광했다. 빨간 사암으로 1640년대에 건축된 성벽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음날인 11일 오전에는 문 변호사와 친분이 있는 인도 변호사인 Keerti Singh 씨의 안내를 받아 인도 대법원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인도 대법원청사 앞에서의 출입절차는 보안상의 이유로 매우 까다로웠다. 40여 분 만에 수속을 마치고 출입증을 발급받아 대법원청사 안으로 향하였다. 법정 안에 들어서니 3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재판부 앞에서 변호사가 서서 열심히 변론을 하고 있었다. 재판장은 Kabadia 대법원장이었다. 법정안의 법대는 그다지 높게 설치되어 있지는 않았다. 법정안에는 판례집 등이 촘촘히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가 방청하는 동안 재판부와 소송대리인 사이에 질문과 답변이 자연스럽게 오고 가고 하였다. 변론 중에 언급된 판결례를 대법관들이 판례집을 펼쳐 직접 확인하는 모습도 보았다. 법대 아래에 앉아 있는 남녀 2명의 직원은 변론 중에 언급된 판례가 수록된 판례집 등 자료집을 부지런히 찾아서 부전지를 끼워 법대 위에 올려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회의 일정

11일(목) 오후 5시 30분에 제23회 로아시아 총회가 뉴델리 Lalit호텔에서 개최되었다. 개회식에서 Lester G. Huang 로아시아 회장, Anil B. Divan 인도변호사회장, R.V. Raveendran 인도 대법관 등이 개회사를 하였다.
개회사 중에서 인도 출신의 연사가 법치주의를 논하면서 많은 수의 변호사로 인하여 법조윤리의 문제가 중요하게 되었다고 언급한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개회식 후의 리셉션 자리에서 만난 인도의 변호사들로부터 뉴델리에만 변호사의 수가 1만 명이 훨씬 넘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리셉션에서 최정환 국제이사의 소개로 Huang 로아시아 회장 등 대회 관계자와 인사를 나누었다.

이어서 열린 1차 전체회의에서 Krishan Iyer 전 인도대법관은 “Need for Redefining Rights Jurisprudence for Inclusive Growth”라는 제목하에, 빈곤지역이 많고 토지제도와 가족제도 등에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아시아에서 법치주의가 더욱 역동적으로 움직여야만 지역 내의 모든 생명을 윤택하게 보전할 수 있다는 요지의 연설을 하였다.

총회기간 동안 전체회의(plenary)가 3회, 세션(working session)이 33회 진행되었는데, 개회 다음날부터 회의는 India Habitat Centre로 장소를 옮겨 개최되었다.

12일(금)의 첫째 시간에는 소비자보호법과 로펌 매니지먼트 I 에 관한 세션이 진행되었고, 둘째 시간에서는 엔터테인먼트법, 지적재산법, 로펌 매니지먼트 II에 관한 세션이 진행되었다. 엔터테인먼트법 세션에는 최정환 변호사가 발표를 하였고, 로펌 매니지먼트 II 의 세션에는 백윤재 변호사가 발표를 하였다. 셋째 시간에는 가족법, 금융시장규제, 프랜차이징,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프리빌리지문제에 관한 세션이 진행되었고, 마지막 시간에는 가족법, 국제거래법, 금융법, 테러행위와 인권문제 등에 관한 세션이 진행되었다.

13일(토)의 첫 시간에 열린 2차 전체회의에서는 1988년 말레이시아에서 있었던 사법부위기 사례에 관하여 J.S. Verma 전 인도 대법원장의 발표와 로아시아 전 회장인 Gordon Hughes 박사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둘째 시간에는 미디어법, 지적재산법, 파산법 등에 관한 세션이 진행되었다. 셋째 시간에는 환경법, 프라이버시법, 민사조정법, 사법권의 독립과 법조사회에 관한 세션이 진행되었고, 넷째 시간에는 인권법, 전자상거래와 전자 법정, 중재판정의 집행, 의료시술 여행과 법적 분쟁에 관한 세션이 진행되었다.
마지막 날인 14일의 첫 시간에는 3차 전체회의로, ‘인권보호’를 주제로 한 GL Sanghi 기념 강연이 열렸다. 이어서 둘째 시간에는 기업인수합병, 국제거래 분쟁의 해결방안, 법률구조사업에 관한 세션이 진행되었고, 셋째 시간에는 계약법과 경쟁법의 발전 방향, 노동과 이민법, 사회기반산업의 발전을 위한 파트너십에 관한 세션이 진행되었다. 이 파트너십의 세션에는 강 현 변호사가 참석하여 발표하였다. 마지막 시간에는 ‘기업지배구조 그리고 인권법(Corporate governance and human rights law)’에 관한 세션이 각각 진행되었다.

회의 참가 소감

기업법률 관계나 로펌 경영에 관한 세션을 위주로 하여 진행되는 변호사 단체의 통상의 국제모임과 달랐다. 이번 뉴델리총회에서는 기업법률관계의 문제와 로펌경영 등에 관한 세션뿐만 아니라, 사법권의 독립, 인권문제, 재판절차에 관한 세션을 포함하여 폭넓은 주제를 가지고 회의가 진행되었다. 또한 각 세션에서 발표와 진행을 맡았던 사람 중에는 변호사 외에 라빈드라 바아트 판사 외 여러명의 인도 델리 법원(Delhi High Court) 판사들, 호주의 브라이언 프레스톤 판사, 폴 하워드 및 파스코 연방 치안판사(Magistrate)들, 마웬카이 말레이시아 판사, 시바쿠마르 인도 대학교수 등이 참여하였다. 한편 지역별로 보면, 캐나다, 일본, 호주, 미국, 영국, 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네팔, 스리랑카, 캄보디아, 독일, 스위스 출신의 법률가들이 발표와 토론에 참여하였다.

내가 흥미 있게 들었던 민사조정법 세션에서는 Howard 호주 연방 치안판사가 호주에서 시행되는 법원중재(court directed mediation) 절차를 알기 쉽게 소개하여 주었는데, 조정시작 전에 질문서(interroga tories)를 통해서 필요한 사실들을 밝혀내고, 유능한 중재인(mediator)의 활약에 힘입어 조정제도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전하였다. 또한 Meissner 변호사는 미국 클리브랜드에서 시행되고 있는 은행과 가옥담보대출자 간의 민사사건에서의 조정절차에 관하여 발표하였고, Lee Swee Seng 말레이시아 판사는 말레이시아의 경험을 소개하여 주었다. 그리고, 중재법에 관한 세션에서는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온 변호사들이 중재판정이 공공정책(public policy)을 이유로 도전 받는 일이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회의 2일째 저녁의 만찬자리에서 문 변호사가 짤막하게 멋진 춤솜씨를 선보여 참가자들을 즐겁게 하여 주었다. 그리고 정영숙 국제과장은 행사기간 동안 안내부스에서 서울총회 홍보를 위해서 애를 썼다. 강 현 변호사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귀국비행일정 때문에 부득이 마지막 날의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일요일 새벽에 귀국길에 올랐다.

회의 참가자들이 대화를 즐겨서 회의는 전반적으로 활발히 진행되었으나, 각 세션에서 다루어지는 발표 내용 등을 집행부에서 미리 자료집으로 정리하여 참석자들에게 배부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회의 첫날 등록할 때에 접수창구에서 일하던 행사요원 중 행사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어서 등록하는 데 약간 불편을 겪었다.

또한 총회기간 중 세션이 진행된 India Habitat Centre는 내가 묵고 있던 호텔로부터 꽤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다 셔틀버스의 운행 횟수도 적어서 그에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회의 기간 중 여러 번 택시를 이용하였는데, 택시를 탈 때마다 얼마의 요금으로 갈 것인지를 미리 운전기사와 흥정(bargain)해야만 하였다. 그것이 인도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하였지만, 나에게는 불편한 경험이었다.

글을 마치면서

내년 서울총회에서 어떠한 내용의 세션을 개설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은 참가 변호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회의가 되었으면 좋겠다. 금융, 기업인수합병, 중재 등 기업거래에 관련된 내용이 많이 다루어지겠지만, 그 외에 국민참여 재판이나 로스쿨 제도, 전자소송 등에 관한 세션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예를 보면, 2007년 총회와 2009년 총회에서는 judicial session이 개설되었고, 특히 2009년 총회의 세션에서는 Robert French 호주 대법원장이 “Judicial Activism: a necessary element of judging”이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전국 회원이 힘을 모아 철저히 준비하여서 내년도 로아시아 서울 총회가 성공리에 개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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