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피해자문제 해법을 위해 40년 가깝도록 일본에서 활동해온 高木健一(다카키 겐이치) 변호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인으로서 어떻게 해서 이 일에 뛰어들게 됐나?

어릴 때 대학에서 학생운동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인권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1973년에 변호사가 됐을 때 사할린 강제이주한국인 손두희 씨가 나를 찾아왔다. 그의 소송을 돕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사할린 강제이주 보상문제 해결을 위해 1987년에 일본 국회의원 180여 명이 위원회를 만들었었다. 그러나 피해조사를 위한 사할린 교포 접촉 자체가 어려웠다. 모스크바에 가서 얘기를 듣고 오니 조선총련에서 “반소운동이다”, “반공운동이다”라며 나를 비난했다. 그때 내가 “가족을 만나게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 인권운동”이라고 말했다. 나를 따라다니는 비난은 여러 가지다. ‘반일 일본인’이라는 딱지가 가장 평범한 것이고 ‘일본에 손해를 끼친다’, ‘과거를 들추고 다닌다’, ‘한국 안기부로부터 돈 받는다’는 비난까지 다양하다. 1989년에 일본변호사연합회의 피폭자문제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일본 정부가 한국인 피폭자들을 일본에 데려와 치료해주도록 한 적이 있었다. 한국정부가 “우리도 치료할 수 있다, 일본에 갈 필요없다”고 거부한 것을 아사히신문에 썼다. 그랬더니 안기부에서 압력이 들어왔다. 이 때 대한변협에서 나를 변호해주고 싸워줬다. 이를 계기로 한일변호사교류가 시작됐다. 당시의 변협 사무총장이 김평우 현 협회장이다. 그래도 한국 정부는 1987년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주었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 설립에 관한 법률’ 및 기타 일제피해자 지원 관련 법안 입법 공청회에서 일제피해자들을 위해 ‘평화기금’을 만들자고 했는데 실효성이 있나.

반세기가 지난 문제다 보니 피해자 확정도 어렵다. 고인이 된 분들이 부지기수다. 가해자인 일본이 피해자들에게 한 잘못을 기억하고 역사에 기록하며 피해자에 대한 보상, 의료혜택, 주거지원 등 사업을 하도록 ‘평화기금’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해법이라고 본다. 기억·미래·책임이 독일전후보상의 개념이었다.
역사에 기록을 남기기 위한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벌써 20년 동안 그렇게 나는 ‘평화기금’을 세우자고 주장해 왔다.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한국과 일본의 젊은 변호사들이 눈앞의 일로 힘에 부쳐 하고 있는 것 같다. 한 가지 테마에 천착하면 인간, 역사, 정치, 사회를 골고루 경험하게 된다. 역사에 남을 만한 변호사 활동을 했으면 한다. 최근 일본의 보수화 경향은 걱정스럽다. 과거를 확실하게 마주볼 줄 알아야 한다. 한국이 일제피해에 대한 재단을 만드는 것은 세계사적 의의가 있는 일이라고 본다. 일본도 곧 ‘평화기금’을 만들어 과거를 반성할 줄 아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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