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의와 첫 인연

내가 변호사가 된 첫 해, 처음으로 주어진 일주일간의 여름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뉴욕에서 변호사들을 위한 국제회의가 열린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집에서 푹 쉬면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거나 휴양지로 여행을 갈 수도 있었지만, 변호사들이 참석하는 국제회의는 어떤 것일까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휴가기간을 이용해 study trip을 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분위기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거리낌 없이 다가와 먼저 말을 건네는 외국변호사들의 사교성에 이내 동화돼 어느 순간 그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 경험한 국제회의는 나에게 한국 말고도 개척해야 할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첫 관문인 셈이었다.

더 큰 무대인 IBA로

이후 나는 세계적으로 변호사들의 가장 큰 모임이라는 IBA 총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매해 전 세계에서 4천 명 이상의 변호사들이 참석한다는 IBA 총회는 한마디로 정보교환이나 네트워크를 하는 데 있어서 ‘big party’와 같았다.

낮에는 committee별로 마련된 다양한 세션에 참석하면서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의 최근 동향을 파악하며 정보를 습득하고 주제에 대하여 자유롭게 토론을 하는 아카데믹한 분위기이지만, 밤에는 그야말로 최대 사교의 장이 펼쳐진다. 회의에 참석한 변호사들은 각종 로펌 및 committee가 주최하는 수많은 리셉션과 디너에, 하룻밤에 보통 3곳 이상 장소를 옮겨 다니며 다양한 국적의 변호사들과 교류를 하곤 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 사람들이 어떤 관심사를 갖고 있고 그들이 한국변호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가면서 점차 내 나름의 세상을 보는 시야를 더욱 넓히게 된 것 같다.

나이, 성별, 인종을 넘어선 교류

이번 밴쿠버에서 열린 IBA 회의 참석은 나에게는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출산을 하고 딱 한 달이 된 시점에 국내도 아니고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한다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지만, 나는 회의 참석을 하면서 얻어가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했기에 주저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년 만에 회의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 한 이탈리아 변호사는 우리가 1년 전에 나누었던 이야기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서로 관심사가 같거나 인상적인 만남과 대화가 이루어진 경우에는 회의가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이메일 등을 통해서 계속 소식을 전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이루어진 인적 교류는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얻어가는 최신 자료보다도 더 큰 자산이 된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IBA에 참석하는 변호사들은 시니어 변호사들부터 젊은 변호사들까지 아주 다양하다. 아무래도 같은 연차의 젊은 변호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associate 변호사로서 갖는 고민도 비슷하고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이번에 같은 세션에 참석하면서 알게 된 시애틀에서 온 변호사 조나단도 나와 같은 연차의 변호사였는데, 쉬는 시간에 서로 자료도 교환하고 정보도 나누면서 격려를 주고 받았다.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도 나와 같은 처지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변호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왠지 마음 한 켠이 든든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내년 3월에 서울에서 열리는 IBA Arbitration Day Conference 때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면서 서로 인사를 하였다.

Young Lawyers’ Night out

IBA에는 아주 다양한 분야의 committee가 있는데 public interest 분야와 legal practice 분야로 나누어진다. 그 중에서도 Young Lawyers’ Committee의 경우, 1년 동안 각종 probono와 공익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모범이 되었다고 생각되는 젊은 변호사를 추천하여 회의 기간에 시상식을 갖는다. 그리고 Young Lawyers’ committee에서는 ‘로펌에서 살아남는 법’ 혹은 소위 ‘사다리 잘 타는 법’ 등 아주 실용적인 주제에 대해서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또 매해 회의 기간의 목요일 밤에는 항상 개최지에서 가장 큰 나이트클럽을 통째로 빌려 Young Lawyers’ Night out 행사를 여는데, 여행지에서 그곳의 밤 문화를 즐겨보는 것도 아주 큰 즐거움이 된다.

작년 개최지인 마드리드에서는 정원이 딸린 오래된 저택을 디스코텍으로 개조한 곳에서 Young Lawyers’ 행사를 했다. 그곳에 오신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연세가 지긋하신 시니어 변호사들이 청바지에 셔츠를 입고 편안한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밴쿠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이런 장면을 보려면 아직 한참 멀었겠지?” 옆에 있던 일본인 변호사가 한 마디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한국변호사, 국제무대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런던에 본부가 있는 IBA는 지금까지는 유럽이 중심이 되었지만, 최근 차기 IBA 회장에 일본변호사가 지명될 정도로 아시아계 변호사들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한국변호사들의 활약은 확연히 눈에 띈다. 예전에는 우리 변호사들이 IBA 회의에 단순히 참석하는 수준이었지만, 점차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변호사들이 늘어나면서 각종 세션에 moderator나 speaker로 등장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IBA 집행부 진출도 머지않은 이야기가 되었다.

사실 한국의 경제적 위상에 비하여 한국에 대한 정보나 이미지 개선은 많이 부족했던 게 현실이다. 변호사업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작년부터 대한변호사협회가 IBA에 적극 참여하면서 ‘Korean Night’ 행사를 주최하기 시작하였는데, 이에 대한 외국변호사들의 관심은 대단하였다. 작년에는 주 스페인 한국대사관저에서, 올해는 밴쿠버에 있는 Fasken Martineau 로펌에서 Korean Night 행사를 가졌는데, 한국 음식과 한국 음악 그리고 한복을 입은 도우미까지… 협회장님을 비롯하여 국제이사님, 그리고 밴쿠버에서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변호사들이 그야말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래서 일까? 이제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상당한 호감을 갖고 보는 듯하다. 다시 한번 지면을 통해서나마 이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싶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교감하며 자극 받은 에너지로 100% 충전된 기분이다. 나의 탐험은 계속될 것이다. 내년 두바이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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