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변협의 교류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김평우 협회장을 비롯한 임직원 20명과 함께 2010년 9월 17일부터 19일까지 2박3일간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대한변협과 일본변호사연합회(약칭 일변연)의 제24회 정례교류회에 다녀왔다. 제24회 정례교류회에 참석하여 배우고 느낀 점과 있었던 일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대한변협과 일변연의 정례교류회 개요

대한민국과 일본의 재야법조대표단체인 대한변협과 일변연의 정례교류회는 1987년시작되어 서울과 동경을 번갈아 상호방문하면서 당면한 법률, 인권 분야의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여 양국 법률문화 향상을 도모함은 물론 양 협회의 친선을 통한 국가적 차원의 우호증진용 민간차원의 외교활동에도 한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교류회는 올해로 24회째를 맞이하고 있으며, 금년에는 대한변협이 일본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위와 같은 목적으로 대한변협 차원의 정례교류회 외에도 경기중앙회와 후쿠오카변호사회와 같이 여러 지방회가 일본의 변호사회(한국의 지방변호사회)와 정례교류를 하고 있고, 우리 경기북부회도 삿포로변호사회와 정례교류회를 3회째 개최한 바 있다.

일변연 소개

일본의 변호사는 1876년에 전문적인 직업으로 공인되었고, 1893년에 변호사회 명칭이 사용되고 1949년에 일본변호사연합회(일변연)가 발족되었다고 하며, 일변연 산하에는 지방재판소가 있는 지역인 50개 지역에 52개 변호사회가 있고, 1개 지방재판소 관할지역에는 1개의 변호사회가 있는 것이 보통이나 동경의 경우는 동경변호사회, 동경제1변호사회, 동경제2변호사회의 3개의 변호사회가 있다고 한다. 회원 수는 동경변호사회가 6,000명, 제1동경변호사회와 제2동경변호사회는 각 3,000명 정도라고 하며, 제2동경변호사회는 서울지방변호사회와 정례교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일변연의 회원 수는 2010년 9월 현재 26,930명으로(최고재판소자료는 2010년 4월 1일 회원이 28,828명), 이 숫자는 2000년 17,126명에서 2009년에 26,930명으로 9년만에 1만 명 정도가 증원된 것이라고 한다(로스쿨 개설 후 급격히 증가).

52개 지방회 중 회원 수로는 동경변호사회가 6,000명으로 가장 많고, 하꼬다데변호사회는 25명 정도로 가장 적으며, 그다음으로 적은 회는 독도가 자신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시마네현의 시마네변호사회로 55명 정도라고 한다.

또한 일변연 회장은 전국 회원의 직선제로 선출하며, 최다 득표자가 일단 당선되는 것이지만 전국의 52개 변호사회 중 1/3 이상의 지방회에서 최다 표를 얻지 못하면 당선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일변연 부회장은 13명인데 지방회장 또는 지방회장 경력자가 부회장으로 선출되는데 이번에 방문해보니 부회장 13명 대부분이 지방회장을 겸직하고 있었으며, 부회장은 일변연에 일주일에 4일 정도 출근하여 거의 상근하고 있으며, 사무총장, 사무차장(52명), 실장, 촉탁 등은 모두 변호사들인데 이들이 회장과 함께 일변연의 회무를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일본 최고재판소 방문

최고재판소는 재판관이 15명으로 구성되고, 현재는 법관출신이 6명, 검사 출신이 2명, 변호사출신이 4명, 외교관 출신이 1명, 행정관 출신이 1명, 교수 출신이 1명이며, 최고재판소장관(우리로 하면 대법원장)은 내각이 지명하고 천황이 임명하며, 현재는 법관 출신의 다케사키 히로노부가 맡고 있다.

최고재판소는 15명으로 구성된 전원재판부와 5명으로 구성된 소부가 3개 있으며 대법정은 전원재판부의 재판 시 사용한다고 한다. 대법정은 방문 당시에 재판은 열리지 않고 있었는데 방문객 누구라도 재판관석에 앉아볼 수 있고, 사진촬영이 허용되어 우리 일행 중 몇 사람은 장관석과 재판관석에 앉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최고재판소 방문 후에 도쿄지방재판소를 방문하였는데 기자들이 입구에 진을 치고 있어 물어보니 일본의 유명배우가 살인죄로 기소되어 재판원 재판(우리의 국민참여재판과 유사)을 받았는데 재판이 끝난 후 재판원에게 인터뷰를 하고자 그런다는 것이었다.

도쿄지방재판소의 IT 법정을 견학하면서 형사담당판사로부터 IT 법정의 현황과 각종 장비를 시연하면서 설명을 들었고, 재판원 재판절차를 설명하였는데 판사 3인 외에 국민 중 6명을 재판원으로 선발하여 9명이 재판원 재판을 하게 되고 재판원도 판사와 동등하게 죄의 성립 여부, 양형에 관하여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론이 도출되며, 다만 과반수 내에 판사 1명은 포함되어야 한다고 한다. 증인 신문석이 다른 방에 설치되어 증인이 피고인을 볼 수도 있거나 없도록 화면 조작이 가능하고(이것은 한국과 유사함) 증인이 펜으로 도면을 그릴 수도 있고, 그 그림은 바로 모니터에 표시되는 점이 이채로웠고, 우리나라에서도 도입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재판소는 지방재판소(본청 50청, 지부 203지청), 고등재판소(본청 8청, 지부9청), 최고재판소로 3심제로 되어 있고, 지방재판소와 동급으로 가정재판소(본청 50청, 지부 203청, 출장소 77청)가 있으며, 간이한 형사, 민사사건을 취급하는 간이재판소(438청)가 있고, 간이재판소의 민사사건은 공소(控訴, 우리의 항소)하면 지방재판소가 2심이 되나 형사사건은 공소하면 고등재판소가 2심이 된다.

일본의 재판관 수는 3,611명으로 최고재판소 장관 1명, 최고재판소 판사 14명, 고등재판소 장관 8명, 판사 1,782명, 판사보 1,000명, 간이판사 806명이며, 검찰관은 2,667명이라고 한다.

양국 변호사회 간의 심포지엄

한일 간 심포지엄은 10시에 시작되어 양국 회장의 인사와 기념품 증정, 참석자와 양국 변호사회의 회무 소개 후 모리 사무차장의 진행으로 10시 40분부터 주제발표가 시작되었는데 제1주제로 법조인구증가에 따른 젊은 법조들의 취업난에 대해 다카하시 리이치로 부회장(요코하마변호사회장)이 젊은 변호사들의 취업난과 지원체제에 대하여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며 발표하고 우리 측의 질의가 있었으며, 우리 측은 양삼승 부협회장이 청년변호사 고용불황 등 문제와 그 대책을 발표하여 일본 측의 질의가 이어졌다.

오후는 제2주제로 사법제도 개혁에 관하여 도치기 도시아키 부회장(동경제2변호사회장)이 일본 인권보장시스템의 구축 및 국제인권기준의 국내실시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고, 우리는 서석호 법제이사가 사법제도 개선논의와 주요현안과 쟁점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가졌으며, 제3주제로 법조양성의 현황과 과제에 대해 가네코 다케시 부회장(오사카변호사회장)이 법과대학원 교육의 성과와 과제를 발표하였고, 우리 측은 장현우 교육이사가 사법연수원 현황과 문제점을 발표하고 각기 질의응답을 하였다.

송별만찬과 마지막 일정

심포지엄을 마치고 메구로가조엔에서 송별만찬을 하게 되었으며, 전날의 점심과 만찬의 좌석과는 좌석 위치를 다르게 하여 같이 앉지 않았던 사람과 앉게 배치를 하였으며, 좌석배치도 참석자의 사진과 직책, 명패가 비치되어 있었다.

내가 앉았던 좌석 맞은 편에 앉았던 와카타비 카즈오 부회장(동경변호사회장)에게 우리 경기북부회가 삿포로변호사회와 정례교류를 하고 있다고 말해주자 삿포로변호사회 출신 부회장이 있다며 우리 자리로 데리고 왔다. 그는 무카이 변호사로 삿포로변호사회의 현 회장 후사가와, 전임 다카사끼, 그 전임 미키보다 전에 회장을 했고, 그 당시 다까사끼 변호사와 회장 경선을 하여 무카이 자신이 당선되었다고 말했으며, 경기북부회와 삿포로회 간에 있었던 추억을 나누었다.

2시간에 걸친 만찬을 마치고 일변연 측에서 안내하는 한국 술집으로 옮겨 2차를 하게 되었고, 이 자리에서는 서로 팔짱을 끼고 마시는 러브샷과 폭탄주가 횡행하였고, 특히 위철환 부협회장이 월등한 술실력으로 일변연 변호사들을 감탄케 하였으며, 노래로 흥을 돋우며 즐거운 자리를 가졌다.

2차를 끝내고 모두 헤어지게 되었는데 나는 우연히 통역을 맡았던 재일교포 변호사 4명과 장진영 대변인과 함께 술을 더 마시러 갔고, 그 자리에서 이들 변호사와 많은 대화로 교감을 나누었다.

셋째 날은 느지막하게 9시에 호텔로비에서 모여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한국인 가이드 김성수의 안내로 호텔을 출발하여 메이지신궁으로 갔다.

메이지 신궁은 일본 국민이 가장 존경한다는 메이지 천황과 그 황비를 모시는 곳으로 일본 최대의 목조 도리이(우리나라의 홍살문과 비슷함)가 있고, 신궁의 벽면에 메이지 천황의 일대기가 그림과 함께 설명한 판각이 붙어 있었다.

메이지 신궁을 나와 아사쿠사를 관람하였는데 그곳에서 향을 태우는 연기를 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고, 아사쿠사와 인접해 있는 나카미세 도오리라는 일본 전통적인 물건을 판매하는 곳을 방문하였고, 이곳은 외국인이 동경에 가면 꼭 들른다는 곳으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점심은 초밥이 싸고 맛있다는 전통시장인 츠키시 시장 내에 스시잔마이에서 먹었는데 과연 맛이 있었다. 점심 후에 긴자거리를 잠시 구경하고, 천황이 사는 황궁을 방문하였는데 황궁은 메이지유신 전까지는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이 살았고, 천황은 교토에 살았는데 메이지유신으로 막부가 몰락하면서 14대 쇼군이 물러가고 천황이 이주하여 현재까지 천황이 사는 곳이다.

황궁 밖에 해자가 둘러서 있고, 황궁 안으로 들어서면 천황의 거처와 궁내청이 있는 부분을 다시 해자가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며, 신정과 천황생일에는 천황의 거처 가까이까지 들어가 볼 수 있다고 한다.

황궁 관람을 마치고 일본 최고의 번화가 중 하나인 롯본기힐즈를 주마간산식으로 구경하다가 모리빌딩에 있는 루이스 브르조아의 거미조각상(마맘, 우리나라에도 리움미술관과 신세계에 있음) 앞에서 일행이 다 같이 촬영하고 늦은 저녁 식사에 대비하여 4시경에 일본우동을 먹으러 유명한 우동집으로 갔고, 우동을 먹은 후 하네다 공항으로 이동하여 7시 35분 아시아나 비행기에 탑승하여 9시 55분경 김포에 도착하여 정례교류회를 마쳤다.

이번 교류회를 통하여 한국과 일본의 법조현실을 되돌아보고, 급변하는 법조 내외의 문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함을 절감했고, 양국 법률문화 향상과 우호증진에 이바지했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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