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문화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그 어느 상보다 매우 의미 있는 큰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법률문화상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상으로서, 법률계에서 최고 권위의 상이기 때문에 더 없이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동시에 큰 부담을 안겨주는 상이죠.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법학연구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북한법 및 통일법에 관한 저의 연구에 주목하여 연구성과를 인정해주신 심사위원들께 마음깊이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이 상은 북한법 및 통일법 연구를 통하여 법제도적 차원에서 통일준비의 밑거름이 되라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북한법 및 통일법에 대한 더욱 심층적이고 폭넓은 연구를 통해 이러한 기대에 부응해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40년간 선도적으로 북한법·통일법을 연구하셨습니다.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저의 대학 시절은 5·16군사쿠데타를 통해 제3공화국이 출범할 때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군사쿠데타 세력이 4·19민주혁명으로 수립된 민주헌정질서를 붕괴시키고 헌법을 개정, 1963년 군사정권을 공식으로 출범시키는 과정을 보고 당시 법대생들은 내면적으로 저항의식을 가지게 됐죠. 제3공화국 정권은 군사정권의 취약한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시작한 한일회담을 졸속으로 추진하여 경제협력자금을 일본으로부터 끌어왔습니다. 그 당시 대학생들은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적극 반대했고, 한일협정 비준반대 투쟁 등 이른바 6·3학생운동을 벌였으며 저는 리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구속되어 재판을 받게 됐고, 학교에서는 징계당하고, 타의로 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등 많은 시련을 겪었죠. 이러한 시련은 뒤에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군 생활 중 최전방 수색중대에 배치되어 철책선 근무, 야간 잠복근무를 하면서 분단의 현장에서 분단의 아픔을 피부로 느끼며 분단은 꼭 극복돼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복학 후 분단극복 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게 됐으며, 1969년 3월 설치된 통일부(당시 ‘국토통일원’)가 통일문제 현상 논문 모집을 했는데, 그 때 ‘국토통일의 기반조성 방안’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써서 1970년 최우수 논문상을 탔습니다. 이런 대학시절을 보내면서 분단 극복은 우리 민족의 최대과제라는 생각을 굳게 가지게 되었고, 법학도로서 북한법 및 통일법 연구를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학문생활을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북한법, 통일법을 연구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자료가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의지는 강했지만 고통스러웠습니다. 선행연구가 전무한 상태여서 황무지를 개척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다 1969년 국토통일원이 설치된 후에는 정부가 관련 자료수집을 하게 됐고 통일부 산하에 북한자료센터도 설치·운영함으로써 관련 자료를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북한 원전자료는 특수한 자료이기 때문에 인가증을 받아서 극히 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 쉽지 않았어요. 특히 북한의 법 관련 자료는 전무한 편이었지요. 현재는 제한적이지만 정부를 통해 입수한 자료를 연구자들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과거에 비해 연구하기가 한결 수월해졌죠. 과거에 비해 연구환경이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우리 법제도의 뒷받침이 전혀 없어 연구에 어려움도 많이 겪었습니다. 국가보안법 등 법제도적인 제약이 많았고, 과거보다 완화되기는 했지만 지금도 내면적인 제약요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법제연구센터 소장을 역임하던 때에는 변협과 함께 ‘통일법 조찬포럼’을 개최해 좋은 반응을 얻으셨습니다.

대한변협 통일문제연구위원회는 국민대 북한법제연구센터와 함께 법조인도 통일시대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여 ‘통일시대를 대비한 법률가 포럼’을 매월 개최하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 1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총 37회 ‘통일법 조찬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조찬포럼의 참석은 누구나 할 수 있으므로 점차적으로 참가자 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와 더불어 북한법 분야로 주제를 국한하지 않고 북한의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 등 비법률적인 이슈를 연구하자는 취지로 2006년부터는 격월로 ‘통일정책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2010년 5월까지 총 21회 개최한 ‘통일정책세미나’는 통일법연구위원회가 세미나를 단독으로 운영하고 있으나 간접적으로 주제 선정, 발표자 추천 등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법조인들이 각자의 업무로 바빠 민족문제인 분단극복의 과제에 대해 관심을 별로 가지지 못하고 이해가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이런 포럼이나 세미나를 계기로 남북관계, 통일정책 분야에 점차 관심을 가지게 되어 보람을 느낍니다. 또한 참석자로부터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평을 받아 앞으로도 계속하여 더욱 좋은 프로그램으로 운영해 나갈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북한법연구회 회장, 한국법학교수회 북한법연구특위원장 등으로 활동하셨는데 그 활동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 주시죠.

북한법연구회는 1993년 ‘남북한의 통일과업에 대비하고 법학발전에도 이바지하자’는 취지로 설립됐습니다. 저도 창립멤버로 시작해 2001년부터 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회원은 창립 초기에는 10명 정도였으나, 현재는 법학교수가 대부분이고 변호사, 현직 판·검사 등 6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북한법연구회는 북한법, 남북관계법, 통일법 등에 관한 연구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현재 월례발표회가 156회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7월 29일에는 장철익 판사가 ‘북한주민이 제기한 소송’이란 주제로 현안이슈를 다뤘고, 지난 8월 26일에는 임성택 변호사가 ‘북한에서의 행정구제절차(신소·청원)’를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이런 이슈들은 구체적이고 각론적인 의제여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법연구회는 중국과 몽골 등 체제전환 국가들과 지속적으로 세미나를 열어 이들 국가의 체제전환 전후의 법질서와 원리를 비교하여 장차 북한법체제에 주는 시사점을 도출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미국과도 ‘한국통일과 법’이라는 주제로 2006년 하와이대 로스쿨에서 학술회의를 열었고 앞으로도 이런 학술회의를 계속해 나가고자 합니다.
또한 북한법연구회는 2년마다 ‘최신 북한법령집’을 발간하고, 연간으로 전문학술지인 ‘북한법 연구’를 출판함으로써 북한법 및 통일법 연구자의 저변확대와 이 분야의 학문적 연구기반 확충에 힘써왔습니다. 그리고 대북경협사업체에 대한 법률적 자문, 북한법 연구자들에게 북한법 관련자료 제공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2010 최신 북한법령집’ 발간 작업 중에 있습니다.
한국법학교수회 북한법연구특별위원회는 한국 법학교수들이 통일시대에 대비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2001년 당시 한국법학교수회 회장이었던 송상현 서울법대 교수(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의 제안으로 설치되었습니다. 송 회장님이 저에게 그 위원장을 맡도록 하여 지금까지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위원장으로서 법학교수들이 북한법 연구에 참여하도록 북한법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등 모멘텀을 마련해 나가고 있으며 통일마인드를 가지도록 돕고 있습니다.

국민대학교 대학원의 북한법전공 석·박사 과정이 통일법 연구의 기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1999년 ‘BK21 북한법제 및 통일법제 연구사업’을 국민대 법대가 정부로부터 지정받아 3년간 수행했습니다. 북한법제와 통일법제에 관한 조사·연구와 동시에 이 분야에서의 전문인력양성을 위해 2001년 북한법제연구센터와 대학원 법학과 학위과정(석사, 박사) 과정이 개설됐어요. 국민대 일반대학원 법학과에서는 북한법 강좌를 1999년부터 개설, 시행해 왔고 2000년에는 북한법전공을 신설했는데, 현재 북한법 강좌로 35개 과목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일반대학원 법학과 석·박사과정에 북한법전공을 개설하여 통일시대에 대비한 법률가 양성에 적극 노력하고 있지요. 국민대는 국내 법과대학 중에서 유일하게 북한법과 관련해 특화된 법학교육을 실시하고 있죠. 또한 학부과정에서도 연계강좌가 개설되어 있는데 ‘통일과 법’, ‘북한법의 이해’, ‘남북교류와 법’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후배 법률가에게 조언해 주신다면?

법률가들도 통일지향적인 관점에서 남북관계, 통일문제에 접근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특히 법률가들이 법 해석할 때 냉전시대의 논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7년 평화통일조항을 신설(제4조)하고 대통령의 평화통일을 위한 성실의무(제66조 제3항)를 비롯한 여러 통일 관련 조항들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현행헌법은 통일과 관련한 헌법질서에서 남북한의 분단국가상황을 전제로 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국가적·국민적 과제로 여김과 동시에 평화적 통일지향을 우리 헌법의 주요 이념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이제 이러한 우리 헌법질서 내에서 남북관계나 통일문제에 대한 접근에는 냉전시대의 형식논리에서 벗어나 남북통일이란 미래지향의 헌법적 가치질서를 존중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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