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법의 지배’로 경제위기 극복 모색할 때

이 글은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개최된 POLA 회의에 청년변호사로 참석한 오현주 변호사가 회의에 참석하여 느낀 점과 주요 단체장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법의 지배’-모든 국가 공통의 과제

이 글이 “세계 경제위기와 법의 지배-Global Economic Crisis and the Rule of Law”라는 주제 아래 7월 2일부터 4일까지 웨스턴조선호텔에서 개최된 제20회 아시아변호사협회회장 회의(Presidents of Law Associations in Asia Conference 2009, 약칭 “POLA 2009”)에서 보여준 아시아지역 변호사협회장들의 진지한 열정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석자들은 끊임없이 타국의 법률과 변호사회 활동에 대해 질문하고 자신의 경험과 모국의 제도를 성의를 다하여 소개하였다. 이분들이 POLA 행사의 만찬 도중 한국의 복분자주를 드셔서였을까. 그런 지치지 않는 열의가 ‘변호사다움’을 대표하는 덕목인 듯 보일 정도였다.

여러 국가 변호사들이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여 또 다른 경제위기를 막자”(김평우 대한변호사협회장의 환영사), “법의 지배가 실질적으로 확립될 때에만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이 보장된다”(이용훈 대법원장의 축사), “새로운 시대에 ‘행위규범’으로서의 법률을 발전시켜 법률가들이 인류공동체의 행복에 기여하자”(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의 축사)는 대목을 삼삼오오 대화에서 공명하는 장면이 다소 신기하게 보일 만큼, 각국 변호사들의 반응은 주최국에 대한 의례 이상의 반향이었다.

이 대목이 아부로 들리는가? 전혀 아니다. 호주의 한 변호사에 의하면 “진정한 법의 지배라는 과제는 모든 국가에게 공통된 목표라서 어느 국가에서 오더라도 이 주제는 낯설 수가 없는 것”이라 한다. 우문에 현답이다.

행사에 앞서서는, 참석한 변호사들도 “‘아시아의 문화와 법률에 맞는’ 위기대응방안을 법률가들이 능동적으로 설계하자”(한국 윤용석 변호사)는 소망을 피력했고, 멋진 풍모로 사석에서 ‘술탄’이란 별명을 선사받은 말레이시아의 Deveraj 변호사는 “우리가 지금 위기의 끝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법의 지배를 수호하여야 하는 변호사들의 책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다짐을 밝혔다.

고난에 처한 타국 변호사에게 격려를

물론 각국 발제의 기조가 모두 같지만은 않았다. “투명한 법제와 법의 지배가 확립되어야 외국의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라거나, “당과 정부가 법의 지배를 잘 구현하고 있어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타격은 제한적이다”, “우리는 2차대전 이전부터 법의 지배를 구현하고 있다”와 같은 발제도 있었지만(어느 나라들일까? 맞춰 보시라), 참석자 중에는 아직 변호사협회의 공식홈페이지도 없고 POLA 회의에도 처음 참석한 국가의 대표로서 모든 것이 새로운 변호사들이나, 모국의 “법의 지배”가 고난에 처하여 진심어린 응원의 박수를 수차례나 받은 변호사들도 있었다.

특히, 군사쿠데타 이후 과도정부가 헌법을 파기하고 헌법상의 기관장들과 법관, 공무원들을 대량 해고한 상태에 있는 피지의 Naidu 변호사는, 지난 4월 정부의 위헌적인 법관해고에 항의하다 검거되기도 하였다. 과도정부는 변호사들에게 “(과도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장래에) 정할 모든 규정까지 준수하겠다”는 서약을 요구하고(피지의 Legal Practitioners Act), 변호사회의 변호사 교육권한을 박탈한 데다 변호사회 자체도 해산하여 “Social Club”으로 격하시켰으며, 미성년자를 공석인 주요 공직에 앉히는 등 법의 지배를 짓밟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신념에 찬 원로변호사인 Naidu 변호사는 물론, 거구의 재롱둥이 Nandan 변호사와 같은 청년 변호사들이 ‘법의 지배’라는 대의를 따르고 있어, 언젠가 헌정이 회복될 날이 올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버마(왜 ‘미얀마’가 아니라 ‘버마’인지는 무료하실 때 한번 웹서핑을 해보시라)의 Htoo 변호사는, 군부지배하의 고국 내에서 활동할 수조차 없어 태국으로 고국의 법대 졸업생을 불러 변호사 교육을 한 후 반군지역으로 보내는 수고를 몇 년째 해오고 있다고 한다. 버마 군부가 최근 태국 내에서 그에 대한 납치까지 시도하여, 그는 이번 POLA 회의 이후 태국이 아닌 또 다른 국가로 길을 떠나야 한다. 지금쯤 그는 목적지의 입국심사대를 무사히 통과하였을까.

그는 나에게 무엇이 진정한 법의 지배인가를 역설하기 위해, 군부가 즐겨 내세우는 헌법조항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 여러분도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No proceeding should be instituted against the said Counsil or any member thereof or any member of the Government in respect of any act done in the execution of their respective duties.”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는 엄연히 다르다. 그는 “이런 정권과 협력하는 국가가 있다면 법률의 수호자인 여러분이 말려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정치적 혼란상태에 있는 네팔은, 과도헌법이 정한 시한인 2010년 5월까지 새 헌법 제정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헌정 중단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네팔의 Mainali 변호사는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결코 짧지만은 않다”며 희망을 놓지 않았고, 동행한 Saranga Subedi 변호사는 자신의 이름이 한국말에서 갖는 의미를 알고는 그 희망을 더욱 아름답게 느낀다고 하였다.

법의 지배 없이 진정한 발전 요원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거나 혹은 법의 이름 아래 폭력이나 부패가 자행되면, 변호사가 설 자리도 없음은 자명하다. 네팔에서는 승소판결을 얻어도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니 국민이 법을 무용지물이라 여겨 변호사들이 교사나 트럭기사로 전업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며, 버마의 경우 피고인을 법원 경내에서 법정까지 데려오거나 재판의 순서를 정하기 위하여도 일일이 뇌물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부패의 완전한 청산이야말로 논리적으로 단순명쾌하면서도 사회의 심층까지 그 효과가 침투하는, 국가 발전의 열쇠이며 ‘법의 지배’의 실현이라고 믿는다. IBA의 Ramberg 변호사가 자신의 모국인 Sweden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겠지만 법관을 (대법원이 아닌) 정부가 임명하는 Sweden의 제도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단순한 절차적인 문제에 불과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절차 또한 투명하고 공정하기 때문이다”라고 소개한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태국의 Krairit 변호사는, 엄청난 부정부패를 자행하고도 두바이에서 쇼핑을 즐기는 탁신 전 총리를 거론하면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위한 묵념을 제안하였다. (물론 모든 정치인들이 그렇다고 단언할 수야 없겠지만) 그는, “정치인들은 (법률가들이 고민하는) 윤리나 Conflict of Interest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따라서 변호사들이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말레이시아의 Kesavan 변호사는 “변호사들은 대중을 교육할 책임”도 있다고 강조하였다.

정치 안정돼도 변호사 과제는 무궁무진

이번 회의에서의 활약상을 전하면서 성실하신 싱가포르의 Hwang 변호사와 호기심천국 Chua 변호사도 빼놓을 수 없다. 변호사가 고객에 대한 충실의무를 위반하여 자격을 박탈당한 이후 ‘무보수 공익활동만 하겠다’고 자격의 회복을 신청하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외국 변호사나 비법률가들에게 변호사가 지급하는 소개료를 어떻게 규율할 것인지와 같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질문을 많이 내놓았고, 휴식시간에도 우리 변호사들에게 우리 변호사법과 변호사회의 세세한 내용과 현황을 물어왔다.

홍콩변호사회의 경우, 원로 변호사들이 최근 개업변호사에게 사무실 운영을 위한 멘토링 활동을 하도록 장려하고 있으며, 수임 기회 발굴을 위해 러시아나 대만 등지로의 단체 변호사 출장을 주선한다고 한다. 또한 2년마다 국민을 대상으로 법률박람회를 개최하는데 재작년의 ‘가족법’ 주제에 이어 오는 10월 박람회의 주제는 ‘개인부채’ 문제라고 한다. 정치적으로 안정된 국가에서도 변호사, 그리고 변호사회의 과제는 무궁무진하다.

발제 도중, 변호사가 고객의 금전을 수령하거나 결제에 관여하는 경우 그 금전 및 이자는 어떻게 취급하여야 할 것인지, 돈세탁의 의심이 있는 고객의 거래에 대한 변호사의 신고의무와 고객에 대한 비밀유지의무 간의 경계를 각국 법률이 어떻게 정하고 있는지, 법관평가제는 어떻게 시행하고 있는지 등의 이슈에 대하여는, 회의장 곳곳에서 쇄도하는 자발적인 소개와 뒤이은 질문들로 열기가 대단했다.

사실 이런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시간이 좀 더 길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회의장 전체가 보이는 좌석에서 흐뭇하게 지켜보시던 문인구 전 대한변협회장님(20년 전 POLA의 창설을 주도하셨고 8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셔서 POLA의 역사를 들려주셨다. 존칭을 쓰지 않을 수 없다)의 말씀처럼, “20년 전 8개 국가의 변호사회로 출발하여 이제 23개국 변호사회와 3개 국제기구가 참여하는 수준으로 성장한 것으로도 엄청난 발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갈 길 멀지만 벗들과 함께

어여쁘게 장성한 두 따님을 두신 인도의 Anand 변호사는 내게, ‘부인이 정당한 사유 없는 이혼을 거절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인도야말로 여성을 위한 나라’라고 열변을 토하기도 하였다. 물론 나는 호응해 드렸다. 웃지 마시라. 어느 나라나 긴 길 위의 어느 지점엔가 서 있지 않는가. 우리도 갈 길이 멀고 바쁘다.

행사 후 만찬에서 이진강 대한변협회장께서 영어로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를 이 행사의 소감이라 말씀하실 때, 나와 내 옆 좌석에 앉은 홍콩의 Pang 변호사는 한자로 뒤이은 자구를 번갈아 적어 보이며 서로에게 화답하였다. 좋은 벗들이 이렇게 많으니 POLA와 ‘법의 지배’ 정신은 날로 강건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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