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전세사기 2091건 조사 중… 경찰청 특별단속 결과 2251명 검거완료

사기 가담 공인중개사 '윤리성' 도마위에… "전세계약시 변호사 참여 보장을"

변협, 업무협약 통해 법률상담 지원… 무자본 투기 방지 입법 마련 목소리도

△ 대한변호사협회가 운영 중인 공공플랫폼 '나의 변호사'에서 전세사기 피해 사례 신고를 받고, 이를 통해 법률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 대한변호사협회가 운영 중인 공공플랫폼 '나의 변호사'에서 전세사기 피해 사례 신고를 받고, 이를 통해 법률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빌라왕' '건축왕' 등 전세사기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사회적 파장이 심화되고 있다. 일부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운데, 이번 사태가 빌라 거주 회피 현상으로도 이어지는 모양새다. 정부가 진상 파악에 열을 올리고 있고, 각종 기관·단체와 손잡고 여러 구제책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사기행각에 가담한 공인중개사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전세사기 수법 '천태만상'… 피해 회복은 아직 요원  

전세사기에는 다양한 수법이 병존한다. 이번 사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빌라왕'은 일단 '갭 투기' 방식을 통해 수천 곳의 빌라를 사들여 세를 놓았다. '건축왕'은 대출을 받아 빌라를 지은 다음, 전세금을 받아 다시 다른 빌라를 건축하는 행위를 반복했다. 또 매매가보다 높은 전세보증금을 요구하고, 그 수수료를 부동산과 '바지 사장'이 나눠갖는 방식도 포착됐다.

전세사기 가해자들은 공통적으로 "집값이 떨어지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들은 실제 자본 없이 전세금을 받아서 추가로 빌라를 소유하는 데만 급급했다. 일부 가해자들은 사망한 상태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고소장 접수조차 할 수 없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난 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세사기범들은)빌라에 투자한 것인데 집값이 떨어지고 세금이 오르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며 "그렇다 하더라도 수사기관에서는 (전세금을) 변제할 능력이 없으면 충분히 사기의 고의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피해 규모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전세 특성상 계약 종료 전에는 사기 여부를 알기 어렵다. 정부 기관에서 직권으로 조사하지 않는 이상 뒤늦게 피해사실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국토교통부(장관 원희룡)가 지난 1월부터 ‘전세사기 기획조사’를 실시해 현재 의심사례 9000건 중 2091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번 1차 조사는 이달 중 종료된다. 이어 올해 하반기에는 조사대상을 4만 건으로 대폭 확대하고, 조사 과정에서 전세사기가 의심되는 사건이 있으면 선제적으로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경찰청(청장 윤희근)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4월 9일까지 전국 특별단속을 통해 총 764건에 관여한 2251명을 검거했고 211명을 구속했다. 470건에 관여한 1791명에 대해서는 현재 수사 중이다. 경찰청에서 확인한 피해자는 1878명이며, 피해액은 3167억 원이다.

이처럼 피해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실지 회복은 요원하다. 인천 미추홀구청이 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심상정 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미추홀구 '건축왕'에게 피해를 입은 세대는 총 2484가구다. 이중 874세대(35.2%)만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우선변제금은 살던 집이 경매나 공매로 팔렸을 때 세입자가 은행 등 선순위 권리자보다 먼저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이미 빌라 92세대는 경매를 통해 매각됐다.


● '전세사기 가담' 공인중개사 무더기 적발… "전세계약에 변호사 참여 필요"

전세사기 사건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윤리의식이 결여된 공인중개사들에 대한 책임론도 대두됐다.

서울시가 민생침해범죄신고센터를 통해 제보 받은 깡통전세 피해 사례를 집중수사한 결과,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 6명, 중개보조원 4명 총 10명을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형사입건 했다고 지난달 25일 밝혔다. 이들은 시세를 알기 어려운 신축빌라 가격을 부풀려 전세계약을 유도하고, 그에 따른 성과보수를 나눠가졌다. 피해자 대부분은 대학 신입생, 취준생 등 부동산 계약 경험이 미숙한 청년층이었다.

자료: 서울시 보도자료
△ 자료: 4월 24일 서울시 보도자료 "`잇따르는 전세사기`…서울시, 불법행위 차단과 예방에 총력"

경찰청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 말까지 실시한 특별단속 결과, 입건된 피의자 2188명 중 414명(19%)이 공인중개사 또는 중개보조원이었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건축왕' 사건에도 공인중개사 9명과 중개보조원 9명이 공범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건축왕'에게서 월급을 받았으며, 위험한 매물인지 알면서도 전세계약을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구리시 ‘빌라왕’ 사건에 관여한 공인중개사 40여 명도 현재 경기 구리경찰서에서 사기 등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범행 과정에서 공인중개사 300여 명이 개입한 정황도 파악돼 추가로 입건될 공인중개사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우선 형법상 사기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될 수 있으며, 만약 5억 원 이상 이득을 볼 수 있는 전세사기 사건이라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경제범죄법)’에 따른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 또 공인중개사법상 '해당 중개대상물의 거래상의 중요사항에 관하여 거짓된 언행 그 밖의 방법으로 중개의뢰인의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행위’에 해당하므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서는 변호사가 필수적으로 중개서비스에 참여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법원은 지난해 “자기가 조사·확인하여 설명할 의무가 없는 사항이라도 중개의뢰인이 계약을 맺을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것이라면 그에 관해 그릇된 정보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며 “그 정보가 진실인 것처럼 그대로 전달하여 중개의뢰인이 이를 믿고 계약을 체결하도록 했다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신의를 지켜 성실하게 중개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2022다212594).

한 중견변호사는 “공인중개사법 위반 시 가볍게 벌금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전세사기 조직에 가담한 공인중개사는 영구제명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사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인지하는 사람들에게 ‘공인’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줘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정현진(변시 4회) 변협 등록 형사법 전문변호사는 "피해자들이 전세사기 가해자나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더라도 이들에게 재산이 없으면 피해 회복이 어렵고, 공인중개사가 가입한 공제조합에서도 연 1~2억 원 한도로 배상한다"며 "공인중개사에 대한 민형사 책임, 자격정지나 등록취소 등 행정처분 기준을 강화하면서 윤리교육을 필수로 이수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향후 영미권을 참조하여 법률전문가인 변호사가 중개서비스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마련한다면 전세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규(변시 3회) 법률구조재단 전세사기 지원센터 센터장은 "일부 공인중개사는 계약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으니 전세계약의 위험성을 감추기 급급하다"며 "공인중개사와는 독립되어 지정된 변호사가 전세계약의 위험성을 알려줄 수 있는 '지정변호사 확인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정욱)는 3일 성명을 내고 "미국 등 해외 선진국 사례를 참조하여 제2의 전세사기 대란을 막기 위해서는 대규모 임대사업자 대상 필수적 법률감사 제도와 변호사 날인 제도 등 예방적 법제 마련을 위한 심도 있는 논의에 하루빨리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변협, 국토부 지원받아 법률지원 실시… 국회, 피해자 지원 특별법 논의중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영훈)는 '빌라왕' 사건이 알려지자 ‘대한변협 전세사기사건 피해자지원 TF(전 ‘빌라왕 피해대책 TF’)’를 즉시 구성하고, 피해구제에 나섰다. 변호사단을 모집해 법률상담을 지원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고, 국토부와 협의를 통해 관련 예산을 지원받기로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대한변협은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태흥빌딩 7층 주택도시보증공사 서울서부지사 대회의실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장직무대행 이병훈), 서민주택금융재단(이사장 김수회), 한국심리학회(학회장 최진영), 대한법무사협회(협회장 이남철)와 ‘전세피해자 법률·심리 지원강화’ 업무협약을 맺었다.

협약에 따라 변협은 대한변협 법률구조재단 산하에 ‘대한변협 전세피해자 구조센터’를 설치했다. 센터에서는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법률상담과 소송 대리를 지원한다. 소송 시에는 당사자가 소송에 필요한 비용 절반만 부담하면 된다.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국토부 지원을 받아 충당하기로 했다.

김관기 변협 전세사기사건 피해자지원 TF위원장은 "전세사기 가해자들이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가정을 하고 다량으로 부동산을 구매해서 문제가 발생했다"며 "앞으로 법률상담과 소송을 통해 피해자를 구제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송만으로는 피해구제가 다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며 “계속해서 TF에서 피해 구제나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 필요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 김관기 위원장(오른쪽)이 21일 서울 서초동 대한변협회관 지하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지원 긴급 대책 회의’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김관기 위원장(오른쪽)이 21일 서울 서초동 대한변협회관 지하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지원 긴급 대책 회의’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더 이상 전세사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무자본 투기를 막는 입법이나 정책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주택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재식(사법시험 41회) 법무법인 에이펙스 변호사는 "수천 채를 충분한 자본없이 갭투자 방식으로 소유하는 건 기본적으로 사기의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전세사기 발생 자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자본 없이 부동산을 구입할 수 없도록 하거나 임대인 및 부동산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세사기 가해자나 공범에 대해)형사적으로 엄격하게 처벌하면서도 임대인의 세금 체납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며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에서 전세사기가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살인죄 형량을 올리더라도 살인이 발생하는 것처럼 입법적 보완만으로는 (전세사기 발생을 막기에는) 부족하다"며 "궁극적으로는 부동산정책을 안정적으로 잘 수행해야 이러한 사기 행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준섭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조직적인 전세사기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의 피해금액을 합산해서 (특정경제범죄법을 적용하는 등)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모색해봐야 한다”며 “위헌 소지가 있겠지만 전세사기 피해부동산의 소유권까지도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역전세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가액 이상의 부동산 거래의 경우 변호사의 법률 검토를 필수로 하는 방안 마련도 고심해봐야 한다"며 "이러한 경우 해당 변호사에게도 일정한 책임을 지우면 전세사기 문제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회에서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논의 중이다. 특별법은 임차권 등기를 마친 경우 등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피해자가 거주하던 주택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갔을 때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만약 피해자가 낙찰을 받으면 세금 감면 등 금융지원 혜택을 주는 방안도 함께 검토 중이다. 다만 전세 사기 피해자 요건과 보증금 반환 채권 매입 여부 등에 대해 여야의 견해 차이가 팽팽해 법안 통과에는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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