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사이트·명함까지 도용… 변협 홈페이지 등에서 '더블체크' 필수

"변호사·법무법인 사칭 범죄는 변호사법 위반… 업무방해죄로 처벌 가능"

#A씨는 한 구인·구직 홈페이지를 통해 법무법인(로펌)에서 서류 전달 업무를 할 직원을 구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A씨는 곧바로 이력서와 주민등록증을 팩스로 제출하고, C법무법인이 알려준 주소로 가서 서류에 서명을 받아 우편으로 발송했다.

#B씨는 '변호사 업무 보조'를 할 사람을 뽑는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에 응하자 법무법인 무영 사무장이라고 표기된 본인의 명함을 보내준 후, 링크를 통해 입사지원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이후 근태관리도 링크를 통해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 피해자 제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카카오톡 내용
△ 피해자 제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카카오톡 내용

평범한 로펌의 채용 절차로 보이는 위 사례들은 사실 법무법인 사무장을 사칭한 사람이 꾸민 일이었다. 이 사건의 사칭범은 해당 법무법인에 근무한 적도 없고, 법무법인도 구인을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도용 명함에 사용한 로고도 변호사 로고가 아닌 법무사 로고로 확인됐다. 

로펌 채용을 사칭하는 범죄는 점점 교묘해지고, 대담해지는 추세다. 이번 사건에서도 사칭범은 실제 존재하는 법무법인 명의를 도용해 명함을 제작해 피해자들을 속였다. 명함 주소도 실제 법무법인 무영의 주소를 기재했다. 홈페이지에서는 사무장의 이름이나 사진 등은 드러나지 않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구인·구직 홈페이지에도 법무법인 명의로 구인 글을 게시하는 대담한 면모도 보였다. 해당 사이트 관리자는 법무법인 사업자등록증을 확인하는 등 절차를 거쳤으나, 문제 없이 등록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법무법인에 사칭 사실이 전해져 구인글을 올리지 못하게 되자 다른 구직 사이트를 이용하거나 구직자들에게 직접 연락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사칭범은 계속해서 번호를 바꿔가며 피해자들과 접촉했다. 법조신문 취재진이 해당 번호로 연락을 취했지만 현재 '당분간 수신이 불가한 번호'이거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라는 자동 답변만 받았다. 이어 명함에 기재된 이메일 주소로 연락을 취했지만 역시 답변은 없었다.

△ 법무법인 무영의 홈페이지 공지 내용
△ 법무법인 무영의 홈페이지 공지 내용

결국 피해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법무법인 무영은 곧바로 홈페이지에 "대한변호사협회 또는 서울지방변호사회 구인공고 외의 방법으로는 구성원을 모집하지 않는다"는 공지를 띄웠다.

무영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의도치 않게 범죄에 가담하게 되어 공범, 혹은 방조범이 될 수 있다"며 "사칭범들에게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추가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동안 변호사·법무법인을 사칭하는 사례는 심심치 않게 발생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온라인에서의 업무 지시가 일상화된 환경이 조성되자 이러한 범죄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난해 법률사무소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이 구인구직 플랫폼을 통해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해 보이스피싱 현금 전달책으로 이용한 사건도 있었다. 당시 보이스피싱 조직은 실제 존재하는 법무법인 홈페이지를 그대로 베낀 사이트를 만들고 소속 변호사 사진과 프로필까지 도용해 의심을 피했다. 

올해 4월에도 구인구직 홈페이지를 통해 구직자에게 "법률사무소 비서로 채용하고 싶다"며 접근한 보이스피싱 조직이 경찰에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당시 보이스피싱 조직은 사무실 위치는 알려주지 않고 메신저로만 소통하고, 카페 등에서 대기하다가 수임료를 받아오면 건당 금액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 대한변협은 지난해 6월 '변호사를 사칭한 신종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 사례 및 주의 안내' 공문을 발송했다. 당시 비(非)변호사가 본인 카카오톡 프로필과 배경 사진에 특정 변호사의 프로필과 법률사무소 간판 사진을 게시하고, 피해자를 상대로 변호사 선임료나 합의금을 편취한 사례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변호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죄 등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5건 접수됐다.

이러한 변호사·법무법인 사칭 범죄는 변호사법 위반 행위이며, 업무방해죄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정구승 형사법 전문변호사
정구승 형사법 전문변호사

정구승(변시 7회) 변호사(형사법 전문)는 "변호사가 아니면서 금품·향응 등을 받을 것을 약속하고 법률사무를 취급했다면 변호사법 제109조에 따라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며 "법률사무를 하지 않았더라도 변호사가 아니면서 법률사무소 표시를 했으므로 변호사법 제112조 제3호에 따라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구인·구직 홈페이지에 허위사실을 올려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를 했으므로 고발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변호사법 위반과 업무방해죄에 모두 해당하므로 병합될 경우 강력한 처벌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주현 형사법 전문변호사
천주현 형사법 전문변호사

천주현(사시 48회) 변호사(형사법 전문)도 "법무법인 명칭을 허위로 표시한 자는 변호사법 제112조 제3호 또는 제6호에 따라 벌금과 징역을 받을 수 있다"며 "만약 실질적인 피해가 없었더라도 법무법인 명의로 구인공고를 올려서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부분은 법무법인에 대한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구인·구직 홈페이지에도 법무법인 사업자등록증을 이용해 구인글을 등록함으로써 위계로 업무를 방해했다고 볼 수 있다"며 "법무법인에는 피해자들이 관련 항의를 계속하는 등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고, 구인구직 홈페이지에도 평판과 명예를 훼손시킬 수도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경우 사칭범에게 변호사법 위반 등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모두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손해액이 현재 불분명한 경우라도 민사소송법상 법관이 자유로이 손해액을 설정할 수 있다"고 했다.

△ 대한변협 '나의 변호사' 홈페이지 화면
△ 대한변협 '나의 변호사' 홈페이지 화면

사칭 범죄를 피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더블 체크(재확인)'다. 법무법인 홈페이지는 구인·구직 홈페이지 등에 기재된 주소가 아니라, 실제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서 파악한 홈페이지에 접속해 주소, 전화번호 등을 재확인해야 한다. 변호사 이름과 사진 등은 대한변호사협회 홈페이지(koreanbar.or.kr)-변호사 검색 또는 나의변호사(klaw.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변호사의 경우에는 구직 시 변협 채용정보 홈페이지(career.koreanbar.or.kr)를 활용할 수 있다. 변협은 법무법인 등에는 사업자등록증을, 국회의원실에는 국회의원 당선증을, 사업자등록증이 없는 단체에는 고유번호증 등을 필수로 요구한다. 또한 변협은 모든 채용 공고 내용을 확인하고, 적합성을 판단해서 게재 여부를 판단한다. 구직자는 법무법인 명칭 등을 검색하면 이전 구인 내용도 모두 확인이 가능하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법무법인을 사칭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관 홍보도 필요하지만 사실관계를 한번 더 확인하려는 당사자의 노력도 요구된다"고 말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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