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업무와 사망 사이 상당인과관계 인정"

그림: 게티이미지뱅크
그림: 게티이미지뱅크

상사의 욕설과 폭언 등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살했다면, 기저질환이 있었더라도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8부(재판장 이정희)는 초등학교 교직원 A씨가 교장의 폭언 등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에서 A씨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고,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업무와 재해 발생 사이 인과관계는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해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건 아니다"라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교장이 정당한 업무지시를 하면서도 폭언, 욕설,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 A씨 외에도 여러 직원이 병원 진료를 받거나 부서 이동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A씨는 10년 이상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면서 기존 학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교육장표창 추천 대상자로 선정되는 등 인정을 받아왔지만 교장의 태도로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에게 모멸감과 자괴감을 주는 교장의 태도로 인한 스트레스 수준은 통상적인 직장 내 갈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일반적 스트레스 수준을 초과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A씨에게 기저질환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단절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A씨는 학교장에게 "행정실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논다", "일처리를 바보같이 해서 학교에 먹칠을 했다", "모든 게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등 욕설과 폭언을 듣고, 휴가 사용을 제한받는 등 스트레스가 지속되자 불면증, 우울증 등이 발병했다. 이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도 받았으나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택했다.

A씨 유족은 "A씨가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학교장에게 서면경고를 했으나 "사망의 직접적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서울시교육청도 동일 내용 민원에 대해 "스트레스가 자살에 이를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감사로 판단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답변했다.

근로복지공단에도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공단은 "A씨가 기저질환인 뇌전증으로 조울증, 우울증 등을 앓았고 경제적 요인 등으로 가족 간 갈등도 있었던 점을 볼 때 업무상 요인으로 사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에 B씨는 서울행정법원에 공단의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김보훈 변호사
김보훈 변호사

이 사건을 담당한 김보훈(변시 2회)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A씨 사망과 업무상 사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수개월간 의뢰인과 상시적으로 소통하면서, 다수 증거자료를 제출한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판결은 기저질환 등이 자살에 영향을 끼쳤더라도 업무스트레스를 사망의 주된 원인으로 볼 수 있다면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임혜령 기자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