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갈등 심화... 임금피크제 유지 vs 폐지 주장 '팽팽'

"사안별 유·무효 달라질 것... 판단기준 개별 확인해야"

국내 로펌들 TF 구성, 세미나 개최 등 대응책 마련 분주

그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그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 후폭풍이 거세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을 연장해주는 제도다. 고용 탄력성을 높이면서도 직업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취지에서 탄생했다. 종류에 따라 크게 '정년연장형'과 '정년유지형'으로 나뉜다. 

그런데 지난 5월 대법원이 "연령을 기준으로 한 차별적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시하자 산업계와 노동계가 판시 내용을 놓고 서로 엇갈린 해석을 내놓으면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하반기 노사 양측의 임금협상을 앞두고 임금피크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자, 각 로펌들도 정밀한 판결 분석을 바탕으로 상세한 대응전략이 담긴 세미나를 잇따라 개최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임금피크제 유무효 판단기준 나와… 노사 분쟁 확산 조짐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노태악)는 5월 26일 "구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제1항에 따라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며 "이 때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는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달리 처우할 때도 방법이나 정도가 적정하지 않은 경우"라고 판시했다(2017다292343).

△ 대법원이 제시한 임금피크제 유무효 판단 기준
△ 대법원이 제시한 임금피크제 유무효 판단 기준

임금피크제 유무효 판단 기준으로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 도입 본래 목적을 위해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을 사용했는지 여부 등이 제시됐다.

하지만 판결 이후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노사 갈등은 오히려 더 커지는 모양새다. 

삼성, SK하이닉스와 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 노조들이 임금 협상에서 임금피크제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국민은행 노조는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 40%가 이전과 같은 업무를 하면서 임금만 삭감됐다"고 강조하며 사측과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법률원은 "임금피크제는 특정 연령이 되면 본인 의사와 관계 없이 특정 부서로 강제 발령을 하거나 업무는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임금을 줄이는 ‘근로자 퇴출용 제도’"라며 "대부분 노동자는 업무량을 줄이는 대신 임금을 삭감하는 걸 원치 않는데도, 강제 무급휴직이나 다름 없는 주4일 근무나 전직준비 휴가 등을 법원이 왜 보상조치로 보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노총)은 "사측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펼칠 것으로 예상되나, (대법원 판결은) 정년유지형과 정년연장형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며 "임금피크제는 '노동조건의 불이익한 변경'에 해당하므로 단체교섭 시 엄격한 절차적 요건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기업 측은 임금피크제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원칙적으로 고령자고용법상 연령차별에 해당하지 않으며,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도 기존 취업규칙 등 규정상 정년을 보장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면 그 자체로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도 "산업 생산성 제고,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효율적인 방책으로서 임금피크제 개선, 확대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에서 시행한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2021년 6월 말 기준)' 결과, 국내에서 정년제를 운영하는 사업체는 34만 7422개이며, 이 중 22%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300인 이상 사업체 가운데는 52%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상태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는 7월 중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를 구성하고, 고령자 계속고용 보장을 위한 임금피크제 개선 등에 대한 입법 과제와 정책 과제를 연구·수행하기로 했다.


● "개별 사안에 따라 유무효 갈릴 것"… 핵심 판단 기준은?

법조계에서는 각 로펌들이 대법원 판결을 둘러싼 해석과 전망을 담은 세미나를 연이어 개최했다. 세미나에서는 "임금피크제 유무효는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고, 하급심에서 유무효가 엇갈린 판결이 다수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주류를 이뤘다.

김대연 변호사
김대연 변호사

법무법인 화우 김대연(변시 1회) 변호사는 지난달 28일 열린 세미나에서 "대상조치 유무나 적정성을 판단할 때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이 법원에서 임금피크제 유무효 판단 시 가장 치열한 분쟁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고용상 차별은 비단 비용 증가의 문제뿐만 아니라 ESG나 대외적 신인도와 같은 파급효과가 큰 이슈에 해당한다"며 "기업이 임금피크제 분쟁 동향을 주시하면서 면밀하게 법리적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업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건 바로 직무 내용 관련 부분"이라며 "대법원이 '동일노동가치' 판단 기준으로 제시한 기술, 노력, 책임, 작업환경과 관련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을 준비하는 등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상민 변호사
김상민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김상민(사시 47회) 변호사는 지난달 21일 열린 웨비나에서 실체적 적법성과 절차적 적법성을 모두 검토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업들이 도입한 임금피크제가 법적으로 유효 판단을 받을 수 있을지는 도입 목적의 타당성, 임금 삭감 정도 및 대상조치의 적정성 등을 면밀하게 점검해봐야 한다""점검 후에는 △임금 삭감률 축소 △근무시간 단계별 감소 △직무 전환배치 △신규 채용규모 확대 △퇴직 대비 교육 등 보장책 마련 등 리스크 낮추기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임금피크제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개별 근로계약이 존재한다면 그 조건이 우선 적용되는지를 살피는 '유리 조건 우선의 원칙'이 판단 기준으로 떠올랐다"며 "근로계약서에 임금액이 명시돼 있고, 취업규칙 변경과 연동되는 규정이나 임금피크제 조건이 없다면 적법절차를 거쳐 취업규칙이 변경됐더라도 임금피크제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절차적 흠결이 없도록 변경 내용을 주지할 수 있는 공고, 집단적 의견 교환 방식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만약 절차적 흠결이 있다면 현행을 유지하면서 분쟁을 대비하거나 노사 합의 등을 통해 개선을 시도하는 방안을 고심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상태 변호사
정상태 변호사

법무법인 바른의 정상태(사시 45회) 변호사는 "법원에서는 불이익의 정도, 대상조치 유무가 가중치 있는 판단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며, 그 중에서도 ‘근로자에 대한 불이익 정도’가 가장 중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임금피크제 적용기간, 임금 삭감액 등 근로자에게 입힌 불이익의 정도, 그리고 임금 삭감 시 정년연장조치, 업무재배치 등 업무경감, 근로시간 단축, 재취업 교육 시행 등 적정한 조치를 도입했는지가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법의 가장 큰 원칙이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이고 대법원 판례도 이 원칙을 적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55세를 기준으로 임금을 삭감한다면, 대신 근로시간이나 업무량을 줄이는 등 대상조치를 마련해야 하는데 이 때 위의 원칙에 위반되는 경우 차별적이고 합리적 이유가 없다는 논리가 적용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법원이 계속해서 판결을 통해 경각심을 주고 있는데도 (대법원 판단 기준을 지키지 않은 임금피크제) 문제가 지속이 된다면 미필적 고의로 보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줄소송 예고… 로펌들, TF 구성 등 발빠른 행보 '주목'

로펌들은 세미나 개최 뿐 아니라 뉴스레터 발행, 임금피크제 관련 TF 구성 등 보다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임금피크제 관련 질의와 자문 요청이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화우(대표변호사 정진수)는 임금피크제TF(팀장 박상훈 대표변호사) 구성했으며, 이를 △노동그룹 △기업자문그룹 △송무그룹 △금융그룹으로 나눠 업무를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금융계 자문과 소송이 급격히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금융그룹’을 별도로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회장 최진식)를 대상으로 한 컨설팅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중견연 회원사에는 자문 등에 대한 할인 혜택을 제공될 예정이다.

박상훈(사시 26회) 대표변호사는 “현재 시행하고 있는 임금피크제에 대한 유무효에 대한 기업의 문의가 가장 많다”며 “유무효 판단에는 업무량을 줄이면서 업무 관련 책임을 줄이는 등 ‘대상조치 유무’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금피크제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개선점을 모색함으로써 소송 제기 이전에 법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 중”이라며 “중견연 회원사를 대상으로 한 컨설팅은 이러한 제도 개선을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법무법인(유한) 태평양(대표변호사 서동우)은 임금피크제 전담팀(팀장 이욱래 변호사)을 구성하고, 임금피크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언론 기고 활동을 전개 중이다. 또한 관련 기업 질의 등에 대해 광범위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욱래(사시 32회) 변호사는 "기업들이 이미 로펌들이 실시한 웨비나 등을 통해 (임금피크제 판결 관련) 내용을 숙지하고 있다"며 "따라서 최근 기업마다의 특유한 사정을 전제로 유효성, 향후 대응방안 등을 주로 질의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차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엄격해질 수 있으므로 기업의 임금피크제 운영에 있어 나이, 성별, 학력 등에서 차별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살피는 종합적인 컨설팅을 제공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바른(대표변호사 박재필)도 임금피크제 대응을 전담하는 임금피크제TF(팀장 정상태 변호사)를 출범했다. TF는 자문팀과 송무팀으로 나뉘어 활동할 예정이다. 자문팀은 회사의 임금피크제 내용 및 대법원 판결 기준에 부합하는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분석해 법적 정당성을 갖추는 업무를 주로 다루며, 송무팀은 근로자 및 노동조합 중심으로 제기되는 소송에 대한 대응을 맡는다.

정상태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정년 연장을 했으니 임금 삭감을 해도 된다’에서 ‘임금삭감 하려면 업무 내용과 목표도 줄여야 한다’로 인식이 바뀌어가고 있다”며 “다만 기업 측에서는 소송 전에는 명확하게 임금피크제 유무효 판단을 할 수 없고, 섣불리 임금체계 등 관련 제도를 개정하면 ‘이전에 문제가 있었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 변화를 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미 물밑에서 소송이 많이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금융권과 대기업 사무직 쪽 소송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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