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 24일 '로 대 웨이드' 판결 뒤집고 "낙태 금지, 수정헌법 14조 침해 아냐"

닉 고서치, 에이미 코니 배럿 등 보수 성향 대법관 포진... 인적 구성 변화가 큰 영향 끼쳐

헌재는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진보 성향 다수 6기 헌재 판결 경향 이어질 듯

미국 연방대법원 전경 (출처 : pxhere) 
미국 연방대법원 전경 (출처 : pxhere)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 6개월까지 여성의 낙태 권리를 보장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50여 년만에 공식 폐기했다. 이에 따라 낙태권 존폐 결정은 각 주(州)의 정부 및 의회의 재량으로 넘어가게 됐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일각에서는 "인권 후퇴"라고 비판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 구성이 이같은 판결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임신 중절 금지는 사생활의 권리 침해"... '로 대 웨이드' 판결 반 세기만 뒤집혀

미국 대법원의 가장 중요한 판결 중 하나인 '로 대 웨이드' 판결의 시작은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텍사스주의 노마 맥코비는 성폭력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며 낙태 수술을 요구하다 거부당하자 임신 중절을 금지한 텍사스주법의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미국의 대부분 주는 여성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아닌 한 낙태를 금지하고 있었다. '로 대 웨이드'는 맥코비의 가명인 '제인 로'와 담당 검사였던 '헨리 웨이드'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미국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이끌어낸 노마 맥코비(왼쪽). 출처 : 위키피디아 
미국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이끌어낸 노마 맥코비(왼쪽). 출처 : 위키피디아 

이 사건은 주 법원을 거쳐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다. 연방대법원은 1973년 1월 22일 7 대 2로 "낙태를 처벌하는 법률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며 "태아가 산모의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이 가능한 시기에 이르기 전, 여성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임신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로 인해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한 미국의 모든 주의 법률들이 폐지됐다. 이 판결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중 하나로서 낙태할 권리를 법으로 규정한 기념비적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생명권 우대(pro-life) 진영과 여성의 선택권 우대(pro-choice) 진영의 끝없는 논쟁 대상이 됐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24일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법의 위헌법률심판에서 '5 대 4' 의견으로 합헌 판단을 내렸다. 이로 인해 여성의 낙태 권리가 미국 수정헌법 14조상 사생활 보호 권리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반 세기만에 뒤집혔다. 

대법원은 "헌법은 낙태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으며 헌법의 어떤 조항도 그런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며 "낙태를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은 그들이 선출한 대표에게 반환된다"고 판시했다. 

특히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서 "로 판결은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잘못됐다. 우리는 이 견해를 우리가 시작한 곳에서 끝낸다. 낙태는 심각한 도덕적 문제를 제기한다"며 "헌법은 각 주의 시민들이 낙태를 규제하거나 금지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스티븐 브라이어 등 진보성향 대법관들은 소수 의견에서 "다수 의견은 '낙태 정책 결정을 주 정부에 돌려줌으로써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면 피임이나 동성결혼에 대한 권리는 무엇인가. 법원이 그러한 권리들도 없애는 게 '양심적으로 중립적'이 되는 것이냐"며 반박했다. 이어 "헌법적 보호를 근본적으로 상실한 수백만의 미국 여성을 위해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판결 이후 미국 전역에서 찬반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판결에 따라 향후 주별로 낙태 관련 입법과 정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긴급 대국민 연설을 통해 "국가와 법원에 슬픈 날"이라며 "주법으로 낙태가 불법이었던 1800년대로 돌아갔다.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 놓았다"고 비판했다.


●지난 정부서 '보수 성향' 대법관 연달아 3명 임명... '보수 우위' 지형이 영향 분석

약 50년 만에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게 된 것은 보수 성향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 사법부 이념 지형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전체 9명의 연방대법관 중 6명의 대법관이 보수 성향으로 평가된다. 존 로버스 대법원장을 비롯해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얼리토,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반면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진보 성향으로 평가 받는다. 

이번 판결에서 보수 대법관 중 비교적 온건파로 분류되며,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진하던 건강보험개혁법인 '오바마케어' 등 보수와 진보의 견해가 팽팽하게 맞서는 사안에서 연이어 진보 진영의 손을 들어주며 '이변'을 만들어 낸 존 로버츠 대법관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이 임신중단권 무효화에 찬성했다. 

판결 직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 세대 만의 가장 큰 승리"라며 "이날 결정은 내가 약속한 모든 것을 이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입장을 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이 깨진 것은 자신의 공이라고 주장한 이유는 2018년 연방대법원에서 보수와 진보 사이 '균형추' 역할을 해온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퇴임한 후 닉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등 현직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을 잇따라 임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2020년 9월 '진보의 아이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사망한 후, 트럼프 전 대통령이 후임으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을 임명하려던 것을 진보 진영에서 막지 못한 것이 '패착'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임명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임기는 약 4개월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당시 민주당이 후임 대법관 인사를 차기 대통령에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상원 소수당이었던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임명 강행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미국 연방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 인준만 받으면 건강 등의 이유로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한 평생 동안 일할 수 있는 종신직이다. 이에 연방대법원의 '보수 우위' 구성이 당분간 이어져 낙태권 이외 동성혼 및 피임 등과 관련한 기존 대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헌재도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진보 우위' 6기 헌재 구성 영향 2023년까지 이어질 듯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9년 4월 11일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1항 자기낙태죄와 낙태시술을 한 의료진을 처벌하는 같은 법 제270조 1항 의사낙태죄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 A씨가 낸 헌법소원 사건(2017헌바127)에서 재판관 4(헌법불합치)대 3(단순위헌)대 2(합헌)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우리나라 헌재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수정헌법 제14조 '사생활의 권리'를 든 것과 마찬가지로 임신한 여성에게 출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설시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헌법 제10조에서 파생되는 개인의 '자기결정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간이 자신의 생활영역에서 인격의 발현과 삶의 방식에 관한 근본적인 결정을 자율적으로 내릴 수 있는 권리"라며 "이 같은 자기결정권에는 여성이 그의 존엄한 인격권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자신의 생활영역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고, 여기에는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임신상태로 유지해 출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도록 정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반대의견에서 "태아가 모체의 일부라 하더라도 임신한 여성에게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소멸시킬 권리, 즉 낙태할 권리가 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인정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생명권은 그 특성상 일부 제한을 상정할 수 없고 생명권에 대한 제한은 곧 생명권의 완전한 박탈을 의미한다"며 "태아의 생명 보호의 중요성과 생명권 침해의 특수한 성격을 고려할 때, 원칙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면서 불가피한 경우에만 '모자보건법'을 통해 낙태를 허용한 입법자의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의 중요성은 태아의 성장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없다"며 "인간이면 누구나 동등하게 생명 보호의 주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아의 성장 상태와 관계 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했다.

1953년 형법 제정 때 낙태죄가 포함된지 66년 만에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2012년 낙태죄 합헌 결정 이후 7년 만에 달라진 헌재 인적 구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제6기 헌재 인적구성을 살펴보면 유남석 헌재소장과 이영진·이석태·이은애·김기영·이종석 재판관은 모두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됐다. 

유남석 헌재소장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김기영 재판관도 진보 성향 판사로 분류된다. 이석태 재판관 역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 참여연대 공동대표, 세월호특별조사위원장 등을 거쳤고 이은애 재판관은 인사청문회 등에서 낙태죄에 대해 '위헌' 취지의 의견을 밝힌 적이 있어 헌재 결정 이전부터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확률이 크다고 관측했다. 

실제 당시 이종석 재판관을 제외하고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해 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이 헌법불합치 의견을,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이 단순위헌 의견을 냈다. 

법조계는 '보수 우위'의 미국 연방대법원과 달리 오는 2023년까지 이어질 우리나라 6기 헌재 재판부의 상당수가 진보 성향이라는 점에서 한층 더 진보적 관점에서 사건들을 심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남가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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