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림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김지림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넷플릭스에서 세계 1위를 하며 인기몰이를 한 한국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을 뒤늦게 보았다. 고등학교 과학실에서 시작한 좀비바이러스가 학교뿐만 아니라 시 전체로 퍼져나가자 학교에 고립된 몇몇 학생들이 힘을 합쳐 생존해 나가는 처절한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아마 전체 에피소드 중 시청자들의 탄식을 가장 많이 자아낸 장면은 학교옥상씬 일테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겨우 옥상에 도착한 학생들은 SOS신호를 만들고 어른들의 구조를 기다렸지만, 정작 도착한 구조대는 필요한 자료만을 확보한 뒤 학생들을 구조하지 않고 떠난다. “살려달라”는 애처로운 요구마저 거절당한 학생들의 망연자실한 모습에서 나는 작년에 만났던 학생들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신을 가지고 비건(육류, 해산물, 유제품 등 동물성 식품의 섭취를 일체 하지 않는 채식주의)으로 살아가는 학생들이 있다. 이 학생들은 동물에 대한 착취를 거부한다거나 육류 섭취를 줄여 기후 위기에 대응한다는 등 각자 신념하에 채식을 하면서 신념과 행동이 일치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재학 중인 학교의 급식은 선택의 여지없이 육류 위주로만 구성되어 있기에 매일 맨밥과 야채 반찬 하나 정도의 부실한 식사를 하거나 곡물 에너지바 하나로 식사를 대신하는 일이 허다하다. ‘유별나다’는 편견과 ‘부모가 시켜서 하는 거 아니야?’라는 의심어린 시선은 덤이다. 이에 작년 6월 초·중·고등학생 당사자와 부모를 포함한 6명을 대리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전국 6개 학교 및 5개 시도교육감 그리고 교육부장관을 대상으로 비건학생들이 채식급식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진정을 제기하게 되었다.

우리는 진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지난 3개월 동안 받은 급식 식단표를 분석했다. 매 끼니 식단이 육고기나 생선 반찬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본인의 양심에 따라 섭취할 수 있는 급식메뉴는 왼쪽 사진과 같았다. 열량 측면에서 심각하게 부족하며 장기간 이어질 경우 신체의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비건 학생들이 초·중·고 도합 12년 간 이런 급식을 제공받으면서 학교 교육을 받는 것은 학생들의 건강권, 자기결정권, 평등권, 양심의 자유,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각 학교는 비건 학생을 위한 채식선택급식을 제공하고 각 교육청과 교육부는 각 학교가 채식선택급식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초에 각 교육청들이 이미 채식급식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며 현재의 상황은 ‘향후 급식체계 개선을 위한 과도기적 단계’라는 이유로 진정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21진정0391000)

△ 진정인 학생이 직접 촬영한 (비건이 먹을 수 있는 음식만을 받은) 식단
△ 진정인 학생이 직접 촬영한 (비건이 먹을 수 있는 음식만을 받은) 식단

각 교육청들이 하고 있다는 노력은 다름 아닌 ‘채식의 날’이라는 이름의 월 1회(혹은 주 1회) 채식 제공 프로그램이다. 석식을 포함해서 생각하면 월 40회(주 10회) 제공되는 급식 중 단 1회 제공되는 채식 식사가 비건학생들에게 적절한 영양을 공급할리 만무하다. 심지어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런 채식의 날 식단마저도 노골적인 육류반찬만 제외할 뿐 멸치 다시마, 젓갈 등을 사용한 국과 반찬은 그대로 나와 정작 비건학생들은 이 조차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진정을 제기하였는데 “과도기니까 조금만 기다려”라는 답이라니.

다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진정을 기각하면서도, 채식주의 아동이 그에 맞는 음식을 영양학적으로 고려하여 적절한 양만큼 제공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원하는 학생이 ‘상시’ 채식급식을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을 운영하는 곳은 전국에서 울산교육청 한 곳에 불과하다. 이런 정책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비록 소수라 하더라도 생명 존중, 환경보호라는 공익적 신념을 위해 채식하는 학생들이 존중받는 분위기,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오고 갈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그려지지 않는가?

학교에서 채식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호소. 이것은 태평한 어른들을 대신해서 지구를 생각하고 몸소 실천하는 용기와 결단력을 가진 학생들이 보내는 SOS 신호다. ‘지우학’에서, 옥상에서 어른들에게 버림받은 학생들은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해내고 만다. 우리 진정인 학생들도 결국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시기, 적절한 개입을 받지 못한 학생들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고통과 희생이 따랐던 ‘지우학’과, 우리 학생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달라야 한다.

△ (왼쪽부터) 채식급식시민연대의 진정제기 기자회견에 참가한 공감 장서연, 김지림 변호사
△ (왼쪽부터) 채식급식시민연대의 진정제기 기자회견에 참가한 공감 장서연, 김지림 변호사

/김지림 변호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