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문제는 이미 현실"… 청소년들 대리해 헌법소원 제기

판결 지연된 2년새 전 세계적 관심사로 ‘탄소중립’ 떠올라

해외 기후소송 대리인들과도 네트워크 구성해 자료 공유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 승소 기대… 미래세대 위한 판결을"

△이병주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 
△이병주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 

"'우리에게도 살아갈 기회를 달라'는 청소년들의 호소에 답하고 싶습니다."

기후 변화의 영향에서는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매년 폭염과 열대야가 강타하고, 산불 위험이 높아진다. 남태평양의 투발루 공화국은 이미 국토의 상당 부분이 해수면 아래 잠겼다. 다른 국가와 도시들도 안심할 수 없다.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안 해수면은 최근 30년간 평균 9.1cm 상승했다.

"우리에게 더 이상 미래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청소년들이 마침내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2020년 3월 13일 헌법재판소에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과 관련한 헌법소원을 냈다.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과 국내 법 제도가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없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소송을 맡은 이병주(사시 35회)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는 "처음에는 가능하면 도망치려고 했다"고 멋쩍게 웃으며 고백했다. 환경 전문가가 아닌데다,  환경소송을 맡아 고생하는 선후배 변호사들을 여러번 봤기 때문이다. 망설이던 그를 청소년기후행동으로 이끈 사람은 곽태선 미국변호사다. 곽 미국변호사의 권유로 조금씩 발을 담그기 시작한 그는 어느새 기후소송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진심'인 법조인이 됐다. 

"처음에는 과연 기후문제가 소송으로 갈 수 있는 법적 요건을 갖췄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청소년기후소송 캠프의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특강에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자스민 혁명'에 대해 듣고 기후문제의 현실적인 중요성을 깨닫게 됐습니다. 자스민 혁명이 기후 변화로 인한 식량 문제에서 기인했거든요. '환경이 전쟁까지 촉발할 수 있다'는 걸 이때 알았습니다. 기후 위기가 도미노처럼 빠르게 다가오는 현실이라는 사실도 말이죠."

그는 기후솔루션, 에스앤엘파트너스 변호사들과 함께 청소년기후소송의 대리인단을 구성했다. 2019년 여름부터 준비를 시작해 2020년 3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위헌 사유로는 △정부가 202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대한 이행 없이 폐지한 점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법률로 정하지 않고 정부에 백지위임한 점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실질적으로 기온상승을 방지할 수 없는 미흡한 수준으로 정한 점 등을 거론했다. 

"기후문제를 법·재판 용어로 치환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민사소송, 행정소송 등 어떤 형식과 절차를 택할 것인지도 고민했고요. 그 결과 우선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로 했습니다.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정부에게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결정을 위임하면서 법률에서 그 위임의 구체적 범위나 기준을 정하지 않은 건 헌법 제75조의 '포괄위임금지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것은 정부에 백지수표를 준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 또 정부가 2010년 제정한 2020년 감축목표를 이행하지 않고 2016년에 일방적으로 폐기한 건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와 연결돼 있습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2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 결정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오히려 낙관적이다. 지난 2년간 기후소송과 관련해 국내외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많았기 때문이다.

"소송을 시작할 때 2010년 제정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서는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방향은 제시됐지만, 목표지점이 다소 애매했습니다. 그런데 2021년 9월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된 지금은 탄소를 줄이는 ‘저탄소’ 정도가 아니라 탄소 순배출량을 아예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탄소중립’의 목표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주요 국제금융기관들의 기업평가 기준으로 탄소배출 산업 참여 여부가 들어가기도 했고요."

변화의 시작은 놀랍게도 국제 금융업계였다. 세계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전략을 요구하고, 석탄산업 비중이 25%가 넘는 기업은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후 전세계 주요기업들이 앞다퉈 '탄소중립(온실가스 배출량만큼 흡수함으로써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든 상태)'을 지지하고 나섰다. 2020년 11월에는 우리나라의 한전과 6개 발전회사들도 2050년까지 석탄발전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탈(脫)석탄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해외에서는 기후소송관련 승소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2019년 네덜란드 법원에서 최초의 승소 판결이 나왔고, 지난해에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독일 연방기후보호법의 온실가스감축목표 관련 규정이 위헌이라고 판단해 역사적인 '사법적 기후선언' 나오기도 했다. 

"해외 선진국들은 사법기관이 국회와 정부 뒤에 숨지 않고, 기후 문제를 적극 풀어내고 있습니다. 정치적 기관인 국회나 정부는 선거를 의식해 기후 문제를 다루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치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는 법원이 국민과 청소년을 살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변호사는 네덜란드, 독일 등 기후소송 사건대리인들과 긴밀히 접촉하면서 주장을 공유하고, 조언을 주고 받는다. 전 세계가 청소년 세대에 진정한 '미래'를 남겨주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2010년 제정된 '저탄소녹색성장법'을 폐지하고, 이달부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을 시행한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와 학교 등도 탄소중립 대응책을 내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올해 건물 15만 채를 저탄소건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 2월 16일 헌법재판소를 찾은 청소년기후행동과 이병주 변호사를 비롯한 변호인단 
지난 2월 16일 헌법재판소를 찾은 청소년기후행동과 이병주 변호사를 비롯한 변호인단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 변호사는 △탄소중립기본법에 규정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로는 기후위기의 방지와 세대 간에 평등한 미래세대의 기본권 보호가 불가능하고 △2031년 이후 시기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으며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집행을 보장하는 규정도 없다며 지난 2월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한 추가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년 전 제기한 기존의 헌법소원은 그대로 유지한 채 탄소중립기본법의 위헌을 구하는 청구취지와 청구이유를 추가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와 함께 전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최고의 헌법 판단기관 중 하나입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경우 기후소송 결정문에서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과잉침해한 것은 맞지만,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위배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해 다소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본권과잉침해(헌법 제37조 제2항)' 뿐만 아니라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 위배(헌법 제10조 제2문)'도 인정할 수 있는 진일보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헌법이론적인 토대가 탄탄해 지는 것이지요. 헌법재판소가 아시아 최초로 미래세대의 손을 들어주는, 선도적 결정을 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임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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