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본에 대해 갖는 인식과 관념의 근저에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일본을 방문해본 한국인은 일본인의 질서의식과 예의범절을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과거의 역사를 생각하면 일본을 용서할 수 없다는 사람은 더 많다. 우리가 선진 문물을 전수한 일본이 강대국이 되어 우리를 침략했다는 사실에 우리의 자존심은 크게 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국인의 의식에는 강자의 횡포에 대한 분노가 작용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와 같은 인간의 본성을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는 철학적 용어로 설명한다. 르상티망의 개념은 ‘약자가 강자에 대해 갖는 분노, 질투, 열등감 등이 함께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니체는 인간의 권력 의지로 촉발된 강자에 대항하는 약자의 복수심과 격정을 주목해, 복합적인 심리를 ‘르상티망’이라고 했다.

니체는 기독교의 사랑도 증오나 복수심의 다른 형태라고 주장한다.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유대인들이 지배자에 대해 갖는 종교적·정신적 위안을 그렇게 본 것이다. 권력자나 부자는 하느님의 미움으로 천국에 갈 수 없지만, 가난하고 핍박 받는 유대인은 그렇지 않다는 선민의식도 ‘르상티망’의 실례가 된다. 니체는 로마보다 상위에 있는 신이라는 가공의 개념으로 유대인이 지배자에게 정신적 복수를 했다고 설명한다.

한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반감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다. 일본은 신라에 대항한 백제와의 연합, 조선시대의 임진왜란 등을 통해 한국인에게 침략자로 각인됐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역사적 갈등과 맞물려 우리의 반일 감정을 증폭시켰다. 그렇게 일본에 대한 증오는 종교적 신념과 다름없는 ‘르상티망’으로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 잡았다.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에 열광하는 우리의 감정은 그렇게 설명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중국의 한국에 대한 침략과 지배도 일본의 경우보다 덜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의 중국에 대한 생각은 달랐다. 조선시대 이후 사대주의가 뿌리내리면서 중국은 한국의 상위에 있다는 인식이 확고해졌다. 양국의 위계질서가 분명했기 때문에, 중국이 한국을 침략해도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보다 하위에 있는 일본의 침략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윗사람이 때리면 참을 수 있지만, 아랫사람이 때리면 참을 수 없다는 심리와 마찬가지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갖는 ‘르상티망’은 복잡하고 뿌리가 깊다. 이런 감정은 단기간에 바꾸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방치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어쨌든 양국관계의 회복과 정상적인 교류를 위한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창위 세계국제법협회 한국본부 회장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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