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0. 10. 6.자 2020도11515 결정 -

1. 공소사실 요지

피고인은 A 사찰(충북 소재)의 창건주 권리승계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시점에 B 사찰(경북 소재)의 신도인 갑 외 13명이 A 사찰에서 피고인의 권리승계에 대한 반대집회를 하였다. 피고인은 그로부터 약 2주 후 A 사찰 신도 수십 명을 상대로 법회를 하면서 위 집회에 대하여 “옛 주지 스님과 친분이 있는 분들만…. 동원된 분들이다. 거기는 완전 데모하시는 분들이 오셨다. 일당을 받고 계시는 분들이 와서 점유하는 거라서”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갑 외 13명은 A 사찰에서 자발적으로 집회를 한 것이었다. 이로써 피고인은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갑 외 13명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2. 원심 법원의 판단과 상고이유

1심 법원은 공소사실에 대하여 전부 유죄를 인정하고 약식청구된 벌금형을 그대로 선고하였고, 항소심 법원 역시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은 ①이 사건 언동이 허위 사실인지 여부 ②피해자 특정 여부 ③이른바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의 부재 ④피해자들의 집회가 정당한지 여부 ⑤이른바 피해자들을 전문 시위자들이라고 오인한 점에 대한 근거 존부 ⑥피고인의 이른바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 확인의무 부재 등을 상고이유로 삼았다.

3. 대법원의 판단과 그 이해 곤란성

가. 이에 대하여 대상 결정은 형사소송법 제383조 제4호를 거시하면서, “실질적으로 원심의 증거 선택 및 증명력에 관한 판단 또는 이에 기초한 사실인정을 다투거나 원심이 인정한 사실과 다른 사실관계를 전제로 법리 오해를 지적하는 취지의 주장은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였다.

나. 위 상고이유 중 ①은 적시된 사실의 허위 여부에 따라 적용법조가 달라지게 되므로 상고이유로 삼은 것이고 ②는 피해자가 특정되지 아니한 피해자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는 판단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 것이며 ③은 A 사찰과 B 사찰은 전혀 다른 지역에 있고 그 신도들 사이에 전혀 면식이 없어 B 사찰의 신도가 A 사찰의 신도들에게 훼손당할 명예가 있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④는 피해자들이 A 사찰에 침입하여 불법 점거 및 집회를 한 것에 대하여 언급한 것을 두고 명예훼손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물은 것이며 ⑤와 ⑥은 피고인이 언급한 내용대로 이른바 피해자들을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주장한 것이다. 위 이유 중 일부는 사실 오인에 관한 주장이거나 다른 사실관계를 전제로 한 법리 오해 주장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 모든 주장이 그러한가?

4. 헌법규정과 재판받을 권리의 범위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1조 제2항)”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제7조 제1항)”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제11조 제2항)”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제27조 제1항)”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한다(제101조 제2항)”고 각 규정한다.

헌법은 분명하게 사실문제에 관하여는 2심제, 법률문제에 관하여는 3심제를 선언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실은 그와 같이 법제화되어 있다. 그리고도 대법원은 지속적으로 상고심사제 등을 통하여 현재의 상고조차 제한하기 위한 방향으로 노력 중인 것으로 보인다.

헌법은 “법원은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한다”고 규정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고심대로만 운영될 경우 결국 사실문제에 관하여는 2심제로 운영되므로 그 문제에 관한 한 대법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상고사건이 폭주하는 마당에 웬만한 법률쟁점조차 사실 오인에 관한 주장이라고 보아 상고기각결정을 하려는 유혹이 생기지 않으리란 법도 없을 터이다.

5. 대법관의 대폭 증원을 통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실질적 보장

보도를 따르면, 2012년 50.5%를 기록했던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2020년 35.3%를 기록하여 경찰에 대한 신뢰도(49.2%)보다 낮아졌다고 한다.

법원행정처는 법학전문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가인 법정변론 경연대회를 개최한다고 하므로, 대법원은 공식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가인 김병로 선생에 대한 존경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분의 사법부에 대한 기여와는 별개로 나무위키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전한다.

“정년퇴직 후 변호사로 활동하였으며, 1960년 총선 때 고향인 순창군에서 민의원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낙선 이유는 선거 벽보만 붙이고 선거 운동을 안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거 운동을 안 한 이유가 가관인 게 “어떻게 아랫사람들한테 표를 달라고 고개를 숙이나?” 하는 이유였다고.” 저 에피소드가 사실이고 가인 선생의 국민관까지 현재의 법원에 계승되고 있는 것일까? 그리하여 상고제한에 몰두하는 대법원의 속내는 이런 것일까? “어떻게 아랫것들이 모든 사건을 존엄한 대법관한테 판단을 받으려고 하나?” 아니길 바란다.

2020년 현재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거의 땅바닥을 기다시피 하나, 법원은 여전히 어떻게 하면 적은 인원의 대법관을 유지하면서 상고사건을 줄일까에 골몰하는 듯하다. 대법원이 상고사건을 제한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법률문제든 사실문제든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려는 국민의 간절한 바람이 크고 깊기 때문일 것이다. 소수 인원을 통한 대법관의 권위 유지보다 국민의 바람이 우선되어야 함은 국민 주권국가에서는 어쩌면 당연하다. 대법관을 대폭 증원하고 모든 사건에 대한 상고를 허하라.

 

/곽용섭 변호사, 충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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