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중 원폭투하로 핵무기의 치명적 공포를 체험한 인류는, 1950년대 초부터 원자력의 연구, 개발, 이용은 오로지 평화 목적에 한하여 가능하다는 보편적 목표를 세웠다. 우리나라도 1958년 3월 11일 원자력법 제정 이래, 60년 넘게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오늘날 가장 모범적인 원전산업국가로 성장하였고, 그 바탕으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 달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유동적인 세계정세 속에서, 갑자기 닥칠지 모를 통일한국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모든 인프라에 우선하는 것이 바로 전력(電力)이다. 그래서 우리의 원자력산업이 중요하다. 앞으로 벌어질 복잡한 외교관계에서 우리나라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지렛대도 ‘원전’이다. 그러니 원전산업의 싹을 함부로 잘라내면 안 된다.

1994년 북한과 미국은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체결하여,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에, 한국·일본·유럽·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대신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해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 추진기구로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설립되었고, 함경남도 신포지역에 경수로 2기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런 경수로 건설사업은 동북아 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외교적 성과였으나, 유감스럽게도 2002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개발의혹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당시 최종 공정률은 34.54%나 되었다. 이후 북한정권이 원자력의 평화이용을 포기하고, 선군사상과 핵무기 개발정책에 몰두한 것은 불행한 역사적 후퇴가 아닐 수 없다.

세월이 흘러서 다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북한지역이 개방된다 해도, 인프라가 없는데 누가 신규투자를 하겠는가? 만일 전력만 공급된다면 남한의 축적된 기술력으로 도로 깔고, 신도시 만드는 것은 빨리 추진할 수 있을 게다. 세계 최고 IT기술을 접목해서 급한 대로 산간벽지까지 원격진료를 실시하고, 택배시스템을 보내주는 등 다양한 개발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진짜 중요한 건 전력이다.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만으로 통일한국의 전력수요를 감당하기는 어려울 게다.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짓는다 해도 본격가동은 7년 내지 10년이 걸린다. 그때 통일 과도기라는 긴박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남한의 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을 보내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가동 중단된 원전을 재가동하고, 보류된 원전건설을 재개해 긴급 대처하는 것 이상의 대안은 없다. 아니면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임시로 전기를 사오거나 RE100과 같은 에너지 전환정책이 뿌리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원래 전력 수출이나 수입이 불가능한 고립국가였다. 그래서 일찍부터 원전 자립을 추진했고, 앞으로도 원전을 잘 가동해서 전력을 풍부하게 만들어 놓으면, 남아도는 전력을 북한에 제공할 수 있다. 조만간 북한 경제부흥과 주민 복리를 위해 전기 수요가 폭증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원전을 위축시켜 놓고, 나중에 자체 전기가 부족할 정도가 된다면, 남한 정부나 북한 주민이나 모두 난감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한반도의 미래를 둘러싼 복잡한 외교 지형 속에서, 원자력 안전과 평화이용이야말로 통일외교의 지렛대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북한지역도 인간존엄과 행복추구권이 살아 숨 쉬는 자유민주 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기존의 우리나라 원전을 바라보는 찬반론을 넘어서, 이것이 왜 중요한지를 온 국민이 함께 통찰하는 여유가 있기 바란다.

/정진섭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솔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