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친구는 대뜸 지인 A가 B로부터 슈퍼마켓을 양수했는데 억울하게 소송을 당했다며 자문을 요청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친구에게 A가 받은 소장을 보내달라고 했다.

친구가 보내준 소장을 보니 종전 슈퍼마켓 주인인 B는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사업자금 대출을 신청했다. 지역보증재단인 C는 B의 대출채무를 보증하기 위하여 금융기관에 보증서를 발급해주었다. B가 위 대출채무를 변제하지 못하자 C는 B를 대위하여 금융기관에 대출채무를 변제했다. 이후 B는 슈퍼마켓을 A에게 양도했고, A는 B가 사용했던 슈퍼마켓 상호를 그대로 사용했다. C는 A를 상대로 상법 제42조에 의한 구상금 청구를 했다.

소장을 검토한 후 친구에게 법률관계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나름대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며 난색을 표했다. 친구는 A가 성실히 돈을 모아서 슈퍼마켓을 인수했을 뿐인데 왜 B의 채무를 대신 갚아야 하냐며 부랴부랴 따지기 시작했다. 내심으로는 외관법리에 따라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상법 제42조와 같은 규정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했다가는 성실하게 살아온 A를 탓하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이에 부득이 법에서 그렇게 규정하여 어쩔 수 없다며 입법자에게 책임을 돌려버렸다.

무거운 마음으로 친구와의 전화를 끊고, 퇴근길에 상법 제42조의 타당성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다. 예전에 채권자인 원고를 대리하여 상호속용 영업양수인인 피고를 상대로 상법 제42조에 근거한 소송을 수행해본 적이 있었다.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별다른 고민 없이 당연히 상호속용 영업양수인이 영업양도인의 채무를 변제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만연히 교과서에 적힌 내용만 암기하여 기계적으로 도출된 사고에 불과했다.

영업이란 일정한 영업목적에 의하여 조직화된 유기적 일체로서의 기능적 재산을 의미하고(대법원 2015. 12. 10. 선고 2013다84162 판결), 영업양도의 경우 영업상 적극재산뿐만 아니라 소극재산도 이전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이에 실제로 영업양수인이 영업양도인으로부터 영업을 양수하면서 채무를 이전받지 아니했더라도 채무이전을 한 것과 같은 외관을 형성한 때에는 채권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A의 사안과 같이 법인이 아닌 자연인 간에 개인사업체를 양도·양수한 경우에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조금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째, 대부분의 자연인들은 상법 제42조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체를 양도·양수할 때 영업양도인 개인의 채무까지 승계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둘째, 음식점, 카페 등 개인사업체를 양수할 때 종전 손님을 유지하기 위하여 상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법인의 경우 영업양도를 한 직후 양도인의 채무에 대하여 책임이 없음을 등기하면 상법 제42조 제1항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으나(상법 제42조 제2항 전문), 개인사업체 양수한 자연인은 법인이 아니므로 위와 같이 등기를 할 수 없다.

넷째, 개인사업체를 양수한 자연인이 상법 제42조 제1항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면 영업을 양수한 즉시 채권자 측에 채무인수의 사실이 없다는 사실을 통지하여야 하는데, 영업양도인이 영업양수인에게 채권자의 존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영업양수인은 채권자에게 이를 통지할 길이 없다.

다섯째, 상법 제42조 제1항에 의하여 상호속용 영업양수인은 영업양도인과 채권자에게 부진정연대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채권자로부터 어떠한 급부도 받지 못한 선의의 영업양수인에게 영업양도인과 동일한 채무를 부담하게 하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

여섯째, 상법 제45조에 따라 영업양도인은 영업양도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책임에서 벗어나고, 영업양수인은 단독으로 채무를 변제할 책임을 지게 된다. 이는 채무를 발생시킨 영업양도인 대신 과실이 없는 영업양수인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곱째, 상법 제42조의 규정이 없더라도, 채권자는 사해행위 취소 소송 등을 통해 영업양도인과 영업양수인 간의 영업양수도 계약을 취소할 수 있고 영업양도인의 책임재산을 영업양수도 계약 이전 상태로 회복할 수 있다. 상법 제42조 이외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다른 규정이 존재한다.

퇴근길에 상법 제42조, 제45조에 관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를 글로 정리해보았다. 심도 있는 고민을 한 것이 아니라 논거가 다소 부족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A가 억울할 만도 한 것 같다. 개인사업체를 양수한 영업양수인에게도 일괄적으로 상법 제42조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고민을 하게 된다.

 
 
/배상현 변호사

서울회·법무법인 정세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