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는 1997년 11월 말 느닷없이 불어 닥친 외환위기로 국가적인 경제 환란에 빠지게 됐다. 당시 IMF의 외압에 따라 ‘회계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하게 됐는데, 이것이 오히려 자본시장의 신뢰를 얻어 지금의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만들어졌다. 이제 우리 사법도 ‘사법절차의 투명성’ 확보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인권과 환경’이라는 글로벌 정의까지 실현해야 한다. 그동안 독립이라는 미명하에 우물 안의 개구리의 시각으로, 법조 양심은 부지불식 간에 오만과 편견에 빠졌고, 급기야 사법권 남용이라는 국민적 심판까지 느껴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 남용 여부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다. 모든 사법절차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보존되도록 하고, 징계시효나 공소시효와 무관하게 재평가 받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경찰, 검찰, 법원에 이르는 내사, 수사 및 재판 기록, 각종 원인 서류 등 모든 사법절차는 4차 산업혁명의 일환인 이른바 클라우딩 기술로 폐기됨이 없이 쉽게 영원히 보전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영구보전되는 사법기록을 바탕으로 일정한 시점에서 일정한 절차에 따라 헌법과 법률이 요구하는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및 전문성 등이 시의(時義)에 맞게 지켜졌는지 사회적 합의에 따라 체크하면 되는 것이다.

서양의 정의의 여신은 양 눈을 가린 채, 오른손으로 저울을 들고 왼손으로 검을 내려 잡거나 왼손으로 저울을 들고 오른손으로 검을 올려 잡고 있는 형상이다. 우리 대법원의 그것은 오른손으로 저울을 들고 왼손으로 법전을 들고 있는 형상이다. 동양에서의 현정(顯正)의 상징은 불을 먹고 사는 붉은 눈의 눈먼 해태 형상이고, 이는 오행 상 ‘화(火)’로 사물의 이치를 밝혀내는 의미다. 저스티스에는 영원성은 없고, 단지 그 시대의 법감정을 발현하는 시의(時義)일 뿐이다. 좀 더 영원한 생명의 길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천부 인권이 이 땅에 실현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알려준 것처럼 서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서로를 관용과 포용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어야만 가능하다.

사법절차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첫 발걸음, 이것은 법조 삼륜이 서로의 믿음을 바탕으로 ‘법원 내에 국가 차원의 변호사 공실’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 다음 그곳의 역할을 점차 확대하면서 궁극적으로 판사실까지 개방하여 법조 삼륜이 직접 부딪치면서 ‘설명하고 듣고 토론하는’ 열린 법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언제 어느 때라도 인권이 침해되는 사례가 발생할 때 즉시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이 확보되어야 한다. 바로 여기에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의 청사 내에 국가 차원에서의 변호사 공실을 두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 규모는 지금의 법원 대 검찰청의 외향적 모습에 대응함은 물론 검찰청사의 역할에 버금가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변호사 공실을 중심으로 확보되는 사법절차의 투명성은, 일방적인 설명이나 설득이 아니라 다양한 사법 현장에서 그 목소리 그대로 듣고 이해하는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낳게 할 것이다. 열린 법원에서의 목소리 주인공은 바로 사법의 현실적인 소비자인 변호사다. 신뢰하는 법조 양심을 대변하는 공(公)의 의미와 관련하여 영원한 진리를 앎으로써 너그러워지고, 너그러워짐으로 인하여 공이 되고, 공됨으로 인하여 왕이 된다는 취지의 ‘지상용(知常容) 용내공(容乃公) 공내왕(公乃王)’이라는 도덕경 문구가 있다.

 
 
 
/김병철 변호사

충북회, 법무법인 청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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