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도 법조계는 숨 가쁘게 돌아갔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을 바쁘게 한 이슈는 따로 있었다. 사내 인사다. 언론사들은 대개 일 년에 두 차례 인사를 내는데, 내가 몸담은 회사는 매년 5월 봄 인사를 낸다.

기자들의 인사는 시끌벅적한 편이다. 검찰이나 법원 인사 동향을 예민하게 들여다보다가 발표가 나기도 전에 ‘단독’을 붙여 기사를 내곤 하는 기자들의 안테나가 회사 안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철 지난 느낌이 드는 단어인 ‘복도통신’이나 ‘하마평’은, 요즘에는 SNS 단체 톡방의 ‘받은 글’로 더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인사 몇 주 전부터 업데이트를 거듭하며 자유롭게 흘러다닌다. 회사 안팎의 배경 등을 엮어 이동의 원인과 의도를 분석하는 일종의 ‘해설 기사’도 인사 전후로 접할 수 있다.

기자들이 이렇게 사내 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인사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에게 취재영역의 교체는 하루아침에 새로운 업종의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분명히 지난주까지 사건의 내용과 법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월요일부터는 한국 야구의 ‘빠던(배트 던지기)’이 미국에서 관심을 끄는 현상에 흥미를 붙여야 할 수도 있다. 새 부서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가경제의 위기를 분석하는 기사를 쓰라고 지시할 수도 있다. 기자들은 대개 1∼3년마다 이런 과정을 겪는다.

이 예시는 모두 내 경험담을 살짝 각색한 것이다. 인사 이후 가장 힘든 건, 역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신뢰를 쌓는 일이었다. 전혀 다른 취재영역의 이슈와 맥락을 새로 배워야 하고, 그 맥락 속에서 형성된 관점으로 수십년 종사해온 사람들을 이해해야 한다. 때로 그들을 비판하는 데까지 나아가려면 엉성한 논리로나마 납득시킬 정도가 돼야 한다.

기자생활 내내 이를 힘들어했던 나는 붙임성 좋은 한 후배의 말을 듣고 조금은 위안을 얻었다.

“선배, 저도 친해지지도 않은 사람한테 갑자기 전화해야 할 일이 생기면 속으로 ‘받지 말았으면’하고 빌어요. 그러다가 받으면 속으로 한숨을 쉬어요.”

흔히 떠올리는 기자의 ‘악덕’ 중 몇몇은 어쩌면 이런 압박을 이겨내려 애쓰는 과정에서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시건방, 트집잡기, 무리한 요구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행태가 용납돼서는 안 된다. 다만 이 글을 읽는 법조인들께 부탁의 말씀을 드린다. 같잖은 아는 척을 할 수도, 심기를 건드리는 표현을 쓸 수도 있지만, 사실 휴대전화 너머에서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기자의 연락에 일단은 편견 없이 응대해주시길.

 
 
/고동욱 연합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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