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법률구조공단 6개 광역지부에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와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 조정위원회를 잘만 이용하면, 법원까지 가지 않고 아무리 길어도 수주 내에 분쟁을 종결할 수 있다. 반려견이 훼손한 마루 원상회복 비용 산정과 같은 소소한 다툼에서부터 수억원의 보증금이나 권리금 회수, 수십억 원 상당의 목적물 반환청구에 이르기까지 주택임대차보호법,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모든 임대차 분쟁이 조정으로 해소될 수 있다. 수수료 최고액은 10만원에 불과하고 그마저 면제되는 특례가 많다. 조정으로 합의된 사항이 임의 이행되지 않을 경우 별도의 소송 없이 조정서만으로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토록 편리한 제도이지만 상대방이 동의해 주지 않으면 절차가 개시되지도 못한다.

이달 30일 만 3년이 되는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의 통계를 살펴보자. 2017년 1088건, 2018년 2515건, 2019년 2691건의 신청이 접수되었다. 그 중 처리된 총 5764건의 37.26%인 2148건이 각하 종결되었다. 10건 중 4건이 상대방의 조정개시 거부로 조정의 결실은커녕 대화의 꽃도 피지 못한 것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21조, 22조에 따라 “조정신청서를 송달받은 피신청인이 조정에 응하고자 하는 의사를 조정위원회에 통지하면 조정절차가 개시”되고, “피신청인이 조정절차에 응하지 아니한다는 의사를 통지하거나 조정신청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아무런 의사를 통지하지 아니한 경우” 조정위원회는 “신청을 각하”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본 규정은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에 준용된다).

법원조정에 관한 민사조정법은 물론 언론중재위, 소비자분쟁조정위, 환경분쟁조정위 등 대부분의 행정형 조정위원회 설치 법률은 신청인의 조정신청으로 즉시 조정절차를 개시하되 신청서 송달과 조정기일 통지가 불가능한 경우 조정신청을 각하 종결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절차적 자율성 원칙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조정신청서를 송달받은 피신청인이 적극적으로 동의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만 조정절차가 개시되는 방식, 즉 무대응(송달후 7일 도과)만으로도 조정 개시를 차단하고 대화 자체를 거부할 수 있는 ‘옵트인(Opt in)’ 방식을 취하였다. 이런 구도에서는 신청의 상대방은 분쟁 해소를 위한 대화를 분쟁당사자에게 요구되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시혜적인 것, 자신에게 손해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일단 회피하려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경향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마땅한 피신청인(소위 악덕 임대인과 악성 임차인)일수록 심해서, 대화를 통해 원만한 해결을 희망하였던 신청인(피해자 내지 채권자)의 권익 구제는 더욱 지체되고 그 정신적 고통과 갈등의 골은 심화 된다. 이러한 옵트인(Opt in) 방식의 폐해는 충분히 예상되었기에 제도 출범 초기부터 그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졸고 ‘주택임대차분쟁조정제도 고찰’ 2017년 6월 26일자 대한변협신문 참조).

혹자는 조정신청만으로 조정절차가 개시되게 하는 경우 무익한 신청사건 폭주, 조정역량의 불필요한 소모, 당사자 자율성 원칙의 훼손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본래 조정절차는 신청으로 일단 개시되는 것이 제도의 기본값(default)이다. 조정신청만으로 조정절차가 자동 개시되더라도 송달받을 권리, 조정기일 출석(상대방이나 조정인과의 협의 진행)과 최종적인 화해 합의(조정권고안의 수용)의 결정권은 분쟁당사자 모두에게 온전히 부여되어 있다. 상당성, 합리성이 결여 되거나 일방적, 가학적인 주장 사건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조정 개시되더라도 피신청인 스스로 조정기일 불출석 등으로 방어할 수 있고, 조정위원회도 민사조정법 제26조가 정한 “그 성질상 조정을 하기에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하거나 당사자가 부당한 목적으로 조정신청을 한 것임을 인정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조정을 하지 아니하는 결정’으로 조기 종결시킴으로써 조정상대방을 보호하고 조정역량의 무익한 낭비를 예방할 수 있다. 결국, 앞서 우려 사항은 기우이거나 실무적으로 충분히 차단 관리가 가능하다.

조정절차가 자동개시되면 신청인과 피신청인 공히 상대방과의 대화가 갈등과 분쟁의 해소를 위해 필요한 것, 자기 자신에게도 유익한 것이라는 인식하에 마지막까지 중립적 제3자의 도움 아래 대화의 불씨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조정의 효율성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제도의 이용도 활성화되는 선순환구조가 형성된다. 조정절차의 자동개시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2016년 9월 발의되었으나 2020년 5월 현재까지 국회 법사위에 계류되어 있다. 정부의 민생법안의 하나로서 평가받는 동 개정안 처리에는 여야 간에 이견이 없고 소관 부처인 법무부, 국토교통부와 법원행정처도 동의한 상태이다(2019년 11월 21일 국회 법사위 1소위 속기록 참조). 아무쪼록 20대 국회가 임기 내 유종의 미를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최재석 변호사

대한법률구조공단 상임조정위원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