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의 요구사항은 다양해서 종종 예측범위를 넘어가기도 한다. 때로는 공격과 방어에 필요한 사실관계조차 여러 이유로 서면에 쓰지 말라고 요구할 때는 난감하기 그지없다. 한번은 그 이유로 ‘사생활 보호’를 든 의뢰인이 있었다. 어지간하면 들어드리고 싶었지만, 그 손해가 의뢰인에게 돌아갈 것이 명백하였기에 설득을 거듭하였음에도 의뢰인은 완강하였다. 의뢰인이 마음을 돌리게 된 이유는 안타깝게도 내 설득이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이뤄진 그 ‘사생활’의 노출이었다. 의뢰인은 역시 공동 의뢰인이었던 가족들도 보게 될 서면에 자신이 그동안 밝히지 않았던 사생활을 적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었다. 다행히 가족들이 이해하여 모두가 행복한 마무리가 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설득의 묘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어떤 의뢰인은 이전 직장의 동료들과 사이에 쌓은 의리를 지켜야 한다며 회사를 상대로 협상을 진행하되 사건과 관련된 동료들의 신분은 밝히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협상이 결렬되어 소송을 진행하게 된다면 그때는 동료들의 신분을 밝히실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그때 생각하자고 한다. 의사표시 너머의 진실한 의사는 “소송까지 가기 싫으니 협상으로 마무리해 주세요”였던 것이다. 노무사와 상담 후 변호사를 찾아온 의뢰인이었기에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약 2주에 걸친 고민 끝에 양 당사자가 내세우는 명분을 모두 만족할 묘수를 겨우 찾아냈다. 양 당사자의 주장 근거와 사실관계를 꼼꼼하게 살펴본 덕분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당사자의 요구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법리를 사실관계에 적용하는 일만큼이나 큰일임을 느끼게 된다. 변호사의 업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디 앞으로 쌓일 경험만큼 묘수를 찾아내는 지혜도 비례하길 바라본다.

 

 

/이영주 변호사

서울회·법률사무소 다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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