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문재인 정부는 ‘성범죄와의 전쟁’ 중이다. 미성년자 피해자들이 다수 포함된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다.

법무부는 당장 ‘미성년자 의제강간’ 기준 연령을 기존 만 13세에서 16세로 상향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의제강간이란 일정 나이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교를 한 경우 성관계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강간으로 규정해 처벌하는 제도다. 성인보다 상대적으로 성관계의 의미나 규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부족한 일정 연령 이하의 아동·청소년을 보호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의제강간 연령 상향이 논의된 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10월 대법원은 자신보다 27살 어린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을 강간하고 임신까지 시킨 40대 연예기획사 대표에게 쌍방 ‘연인 관계’가 인정된다며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1심에서는 남성에게 12년 징역형, 2심에서는 9년 징역형이 선고됐지만 뒤집혔다. 당시 의제강간 연령을 상향하자는 주장이 들불처럼 일었지만 입법까지 이르지 못했다.

의제강간 조항은 1953년 형법에 처음 도입된 이래 67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개정된 적이 없다. 2010년 주광덕 의원이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내는 등 의제강간 연령을 상향하려는 시도는 이어졌지만, 계속해서 불발됐다. 기준 연령을 상향하는 것이 청소년의 성적 자유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단순 이성 교제마저 단속해 범죄자를 양산할 거란 우려 때문이었다.

그렇게 손을 놓고 있는 사이, 2001년 이후 성범죄 피해 사례에서 피해자율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연령대는 의제강간 연령을 막 지난 13세에서 15세가 차지했다. 여성가족부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동향분석 자료를 보면 20대와 30대, 40대 가해자가 10대 가해자보다 비율상 높아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다수가 성인 가해자에 의한 것이란 점이 증명되고 있다.

의제강간 연령 기준 설정은 정책 판단의 문제이자 의지의 문제다. 비교법적으로도 국가의 의제강간 연령 기준은 만 15~16세가 대부분으로, 한국처럼 만 13세 미만이거나 더 낮은 연령을 적용하는 나라는 일본 등 소수에 불과하다. 피해자들의 인격을 처참하게 파괴한 n번방 사건이 나온 이상, 성범죄를 ‘젊은 시절의 장난’쯤으로 치부하는 논리는 이제 설 자리가 없다.

의제강간 기준 연령은 상향될 필요가 있다. 또래 간 이성 교제는 행위자와 피해자의 연령차를 기준으로 형량을 구별하는 등 추가적인 요건으로 정교하게 보완하면 된다. 사회적 약자, 그중에서도 가장 약한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벌이는 성범죄는 강력범죄 못지 않게 피해자를 파괴하는 범죄란 인식이 공유되어야 한다. 더이상 아동·청소년을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해서는 안 된다.

 
 
/백인성 K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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