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보다는 파스퇴르.” 지금까지도 프랑스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프랑스인들은 전쟁영웅 나폴레옹보다 탄저병 백신개발로 국민의 생명을 구한 파스퇴르를 더 추앙하고 있다. 전쟁을 통한 정복보다는 과학을 통한 질병의 치료를 더욱 큰 가치로 평가하는 프랑스인들의 고양된 민족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코로나19의 습격으로 팬데믹 상황에 빠진 현 시대 인류도 나폴레옹보다는 파스퇴르의 백신을 더욱 갈망하고 있을 것이다. 좀 더 멀리 전염병의 역사를 되돌아가보면, 그리스 문명의 몰락을 가져온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벌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도 찾을 수 있다(BC 432~404). 당시 최강의 군사력을 가졌던 아테네가 맥없이 무너진 숨은 배경에는 전염병이 있었다.

투키디데스가 쓴 ‘필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당시 참상을 잘 기록하고 있다.

“아테네는 이 역병으로 무법천지가 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목숨도 재물도 덧없는 것으로 보고 가진 돈을 향락에 재빨리 써버리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신들에 대한 두려움도 인간의 법도 구속력이 없었다. 이렇듯 아테네인들은 이중고에 시달렸으니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갔고 도시 바깥의 영토는 약탈당하고 있었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 시민이 진짜 두려워한 것은 전염병 자체보다 사회적 고립과 심리적 혼돈이었다고 지적한다.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 싸우며 점차 절망감에 빠졌고 환자들을 돌본 가족과 의사도 교차 감염되어 사회격리가 진행되었다. 전쟁의 상대방이 스파르타가 아닌 전염병으로 변환된 가운데 아테네 시민들은 전염병에 걸린 이들을 죽음으로 방치했다. 전염병 감염자는 고독 속에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20년 코로나가 만들어낸 지구의 풍경은 어떤가. 코로나의 위험성을 경계하지 않은 미국은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지난 3월부터 이달 말까지 셧다운을 실시했다. 불안에 떤 미국민들은 생필품 사재기를 시작하고 주가는 추락했다. IMF는 미국발 경제위기로 촉발된 경제둔화는 세계경제대공항 이후 지구촌을 최대의 경제위기로 몰아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이 같은 외부적인 혼돈과 불안 속에서 더욱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코로나 발병자와 비발병자 간 차별과 특정 국가과 지역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로 사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가는 상황이다. 과거 아테네 시민이 가졌던 두려움과 공포가 현 시대 인류에게 재생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백신이 개발되고 코로나가 퇴치될 시점이 다가오면 바이러스 진위를 두고 국가 간 갈등이 증폭될 조짐마저 잠재해있다. 바이러스가 가져온 인간계의 갈등과 분열 그리고 혼돈을 목도하며 바이러스 극복을 위한 인류의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이 더욱 요청된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왜 나폴레옹보다 파스퇴르인가. 무력과 전쟁으로 유럽의 국가를 갈등과 분열로 이끈 나폴레옹보다 미생물 연구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해 당시 불치병을 완치시키고 프랑스를 넘어 주변국에까지 도움을 준 파스퇴르가 더욱 필요하기 때문아니겠는가.

 
 
/박상흠 변호사
부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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