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영화인을 위한 저작권 특강’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연락한 이는 인하대 법전원 1기 장서희 변호사다.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예술대학으로 학사 편입하여 석사까지 마쳤다. 법전원이 문을 열자 얼른 방향을 바꿔 변호사가 되었다. ‘할리우드 독점전쟁’이라는 깔끔한 단행본을 냈고, 지금은 영화진흥위원회 공정거래센터 사내변호사로 활약 중이다. 법률사무실에서 몇 년 근무하다가 고향을 찾듯 영화계로 옮기며 의견을 물었다. “며칠 생각해 보자”고 하고 그 며칠이 지나도록 답을 하지 못하였다. 조직의 묵은 관습이 ‘변호사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장서희 변호사는 나름 영화계에 인맥이 든든하다. 그러나 공공기관에서 느끼는 벽은 만만찮은 듯하다. 이리저리 부딪치면서 하루하루 전투력을 연마하고 있으리라.

서울대와 베를린 국립예술대학에서 수학한 피아니스트 김민정은 서강대 법전원 3기 변호사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변호사 김정민과 가족을 이루고(부부가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린다), 정기 연주를 위해 무대에도 오르며, ‘김민정의 예술적인 법’이라는 달콤한 칼럼도 쓴다. 대학로에서 지나치듯 몇 번 만났던 그가 장난스러운 웃음기를 머금고 청첩장을 내밀었다. 신랑 이름을 확인한 순간 즐거운 폭소를 터뜨렸다. 신랑이 내 지도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예술인복지재단 사내변호사 모집 공고가 났다며 의견을 물었다. ‘불량한 조건이겠지만 버틸 수만 있다면’ 최고의 전문가가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예술인복지재단 대표에게 전화를 돌렸다. “능력이 넘친다고(overqualified) 미리 겁먹고 탈락시키지는 마시라”고 했다. 예술계에 남아서 전문가가 될 재목이라는 데 대표도 공감했다. 그런데 막상 사무국 직원들이 업무를 주지 않았다. 하루 종일 ‘영수증 붙이기’만 시키더니 재계약도 거부하였다. 허탈감을 안고 다시 송무에 종사하고 있다.

법조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인간형이 대거 법조로 진입 중이다. 금년에는 방송사에서 경력을 쌓은 아나운서 2명이 입학하였다. 코로나 난리 탓에 오리엔테이션도, 수강 안내도 없이 온라인 개강을 하였더니, 1학년 신입생 여럿이 3학년용 엔터테인먼트법을 신청하였다. 계약법, 지적재산권법을 선수강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는 과목이라고 메일을 보냈다. 전문직 출신들은, 이미 경험한 업무이고 수업도 재미있더라며 막무가내로 버틴다.

법전원 제도에 회의도 적지 않지만 장서희, 김민정 변호사나, 경력이 싱싱한 신입생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법조 선배들이 이끌어주고 사회가 지레 겁먹지 않는다면, 이들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견인해 가리라 믿는다.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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