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일상에서도 늘 일어난다. 하지만 위기가 있고 난 뒤에 세상은 급격히 변화한다. 위기로 인한 공포와 분노 그리고 반성이 한꺼번에 작동하면서 개인과 사회를 강하게 자극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역사적으로 사회적 전환점이 되었던 대표적인 예로는 14세기 흑사병이 있다. 흑사병으로 농노의 수가 줄어들자 영주는 남아있는 농노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그들의 지위를 향상시킨다. 임금의 인상과 자유의 확대다. 높아진 농노들의 구매력은 소비와 거래를 촉진시켜 시장을 발달시켰으며, 훗날 펼쳐질 자본주의와 시민계급 출현의 씨앗이 된다.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터라 노동력 부족을 막기는 역부족이었으며, 경작할 노동력을 구하지 못한 귀족들이 몰락하고 이는 봉건제의 붕괴를 촉진한다.

한편, 흑사병의 대유행 당시 역병을 피해 교회로 간 많은 사람들 역시 사망하자 교회도 자신들을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종교에서 탈피하여 인간 그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인본주의가 싹트기 시작했으며, 이는 먼 훗날 르네상스의 기반이 된다. 코로나19 역시 많은 사람의 삶을 바꿀 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원격라이프’다. 최근 원격교육, 의료 등이 논의되기는 했으나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이해의 충돌로 진전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전염병으로 인해 선택의 여지 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유통뿐 아니라 금융을 포함하여 전체 온라인에서 비대면 거래가 더욱 활성화될 것임은 분명하다. 지폐에도 바이러스가 4일까지 생존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금사용이 급격히 줄어들고 신용카드와 전자화폐의 활용이 늘고 있어 유럽에서는 중앙은행 차원의 디지털 화폐 발행도 논의되고 있다.

종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와 탈(脫)종교화도 이어질 수 있다. 신천지를 통한 대규모 집단 감염과 함께, 감염 우려에도 불구하고 강행되었던 일부 교회의 현장예배는 사회공동체와 공감하지 못하고 유리된 종교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각자도생이 강화될 것이다. 국경을 넘는 위험의 존재를 알았고, 산업 측면에서 글로벌 공급사슬의 비정상적인 작동이 얼마나 자국의 경제에 위협이 되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특히 생산기지의 해외 진출에서 핵심 공급라인의 본국 회귀 현상도 나타날 것이다. 여기에 WHO와 같은 국제협력기구들이 독자적인 의사결정보다 강대국의 눈치를 보고, 뒷북대응한 점은 다자간 외교협력체제에 대한 실망과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폭풍은 지나갈 것이고 인류는 살아남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 것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도 언젠가 끝날 것이다. 그리고 법도 그날 이후 다른 세상을 준비해야 함은 물론이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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